추억팔이

초단편소설

by 현범

과학의 발전은 마침내 인간 정신의 가장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기억을 한 조각의 파일처럼 꺼낼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정신치료를 목적으로 개발된 기술이었으나, 인간의 욕망은 언제나 기술의 의도를 앞질렀다.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을 파일 형태로 거래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자신의 가장 빛나는 순간과 행복했던 경험을 돈을 받고 타인의 머릿속에 심어주는 것이었다. 가령 누군가에게 ‘몽골의 밤하늘 아래서 별을 봤던 기억’을 구매하면, 침대에 누워서도 쏟아지는 유성을 맞을 수 있었다. 다만 타인의 기억은 한번 뇌에 저장되면, 문신처럼 평생 지워지지 않았다. 처음엔 ‘누가 타인의 추억을 돈 주고 사겠는가?’라며 회의적이었지만, 사람들은 곧 다른 사람의 기억으로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시작했다. 한평생 골방에서 일만 했던 노인은 청년의 ‘세계일주 기억’을 구매해 생의 마지막 나날을 여행했다. 예상외로 수요가 폭발하자, 어떤 이들은 아예 ‘기억 판매’를 직업으로 삼았다. 여행을 즐기고 돌아와 그 기억을 팔고, 그 돈으로 다시 여행을 떠나는 식이었다. 그러나 타인의 행복을 사는 행위가 우울증과 자살률을 급격히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자, 정부는 기억과 관련한 모든 거래를 불법으로 규정했다. 그럼에도 늘 그렇듯, 거래는 더 깊고 어두운 곳으로 스며들었을 뿐이었다.


여기 40대 초반의 여인 또한, 자신의 기억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거래는 으슥한 골목에서 이루어졌고, 그 풍경에 어울리게 차가운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5만 원이라뇨? 하루 만에 절반을 깎는 법이 어디 있어요?” 우산도 없이 비를 맞는 여자가 애원하듯 말했다.

“물론 그런 법은 없죠. 그래서 불법 아니겠습니까.” 검은 양복에 커다란 우산을 쓴 중년의 남자는 능글맞게 웃었다. 젠틀한 옷차림과는 달리, 그의 말투에서는 비정한 냄새가 났다.

“8만 원. 더는 안 돼요.” “정 그러시다면, 다른 구매자를 알아보셔야겠군요. 과연 누가 ‘엄마의 무릎에 누웠던 기억’ 따위를 구매할지는 모르겠지만요. 뭐, 저야 일찍이 어미를 잃어, 그런 추억이 없는 사람이지만 말입니다.” 남자가 뒤돌아서자, 여자는 반사적으로 그의 팔꿈치를 붙잡았다. “좋아요! 5만 원으로 해요.” “이런, 어쩌죠? 방금 제 기분이 몹시 상해서, 4만 원으로 해야겠습니다.” 남자는 여자의 손이 닿았던 팔꿈치를 흰 손수건으로 털어냈다.


여자는 빗물에 젖어 너덜너덜해진 4만 원을 손에 쥐고 집으로 돌아왔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지하실 특유의 곰팡내가 짙어졌다. 어두운 단칸방은 눅눅한 습기로 가득했다. 여자는 누워있는 아이의 이마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렸다. 다행히 열은 내린 듯했다. 그녀는 양초에 불을 붙였다. 흔들리는 촛불 아래, 낡은 공책 한 권을 펼쳤다. 공책에는 그녀가 팔 수 있는 30개의 소중한 기억 목록이 적혀 있었다. 그중 열 개 남짓은 이미 두 줄의 선으로 그어져, 그녀의 삶에서 영원히 삭제되었음을 의미했다. 여자는 열네 번째 목록, ‘어머니의 무릎’ 위에 볼펜으로 두 줄을 그었다. 이제 절반도 남지 않은 목록을 훑던 그녀의 시선은, 가장 아래쪽에 적힌 다섯 개의 목록에 머물렀다. 아이의 탄생 순간, 아이의 첫걸음, 아이의 해맑은 웃음, 아이가 내뱉은 첫 단어, 아이의 노랫소리. 여자는 공책을 끌어안았다. 이 추억만큼은, 아이와의 기억만큼은 절대 팔지 않으리라. 이 기억들만 있으면, 함께 좋은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으리라. 그녀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여자는 쌔근쌔근 잠든 아이의 몸을 어루만지다 지쳐 잠이 들었다.


5달 후. 어둠 속에서 스마트폰 액정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불법 기억 거래 사이트의 게시판이었다.


게시물 번호 1198.

제목: 5살 아이와의 추억 묶음(A급) 저렴하게 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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