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들어 낸 것에 우리가 지배당하는 세계
나는 죽었다.
이곳은 꽤나 지낼만 하다. 이승의 기억이 남아있다면 죽은 뒤의 삶이 그리움이나 후회, 미련으로 인해 고통스러울 수 있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인간은 죽자마자 이승에 대한 최소한의 상식만 남긴 채 전생의 기억을 잊는다고 한다. 나도 지금으로써 이승을 돌이켜 보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서, 21세기 쯤을 살다가 죽었다는 것 밖에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딱히 저승에 대해서도 별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냥 이만하면 괜찮다 정도랄까. 언젠가 환생을 하게될 수도 있단걸 사람들에게 주워듣기도 했지만, 이승에 대한 특별한 간절함이나 기대도 없을 뿐더러 이곳의 생활에 나름 만족하고 있기에 큰 감흥이 있진 않다.
저승은 평화롭다. 딱히 천국과 지옥이 구분되어져 있는 것 같진 않다만, 굳이 따지자면 내가 있는 이곳은 아마 천국에 가까운 것 같다. 적어도 물질적인 것이 부족하진 않다. 원하는 형식의 집에서 먹고싶은 것을 먹으며, 생계에 구애받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조건은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 심지어는 외모까지도 본인이 결정할 수 있다. 정말, 정말 물질적으로는 상상하는 그 이상의 풍족이 보장되는 것이 바로 저승이다.
그러나 완전히 천국이라고 할 수도 없는 까닭은, 이곳에서도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야하기 때문이다. 타인을 평가하고 편먹기 좋아하는 것은 특정 몇 사람의 특징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인가보다. 이승과 달리, 개인의 능력치가 아닌 오로지 타고난 성격과 취향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이곳임에도 여전히 그런 것들은 존재한다. 좋아하는 색을 가지고 그의 이데올로기를 평가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가지고 그의 교양을 평가한다. 이승의 기억이 다 지워지고 오로지 “자신”만 남았기에 다 의미가 없는 짓일텐데 말이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이들은 또 자기들끼리 모여 사회를 비판하기 바쁘다. 죽은 후에도 끝없이 갈라지고 또 갈라진다. 그런 갈라치기를 보고있자면 원래 인간이 다 그렇지 싶으면서도, 어쩌면 이곳이 지옥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물지 않게 들곤 한다.
이러한 인간의 면모를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은 바로 CODE-7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이다. 저승의 모든 이의 목에는 7개의 숫자가 빙 둘러져있는데(타투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지워지지 않는, 피부와 같은 글씨), 숫자들에서 큰 규칙성을 찾기에는 어려웠다. 더 찾아보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첫 숫자는 4를 넘지 않는다는 것 외에는 이렇다할 규칙성은 보이지 않았다. 숨을 조르는 목줄처럼 보이기도 하고, 개성을 드러내는 목걸이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 숫자를 사람들은 CODE-7(코드세븐)이라 불렀다.
저승은 풍족하지만 어찌보면 무료하고 따분하다. 아무런 노력 없이 모든 것을 얻어낼 수 있는 세상이니까, 한 마디로 말하자면 할 짓 없는 사람들만 모여있달까. 그렇기에 사람들은 더더욱 작은 곳에도 눈을 부릅뜨고 관심을 기울인다. CODE-7은 그 먹잇감이 되기에 너무나 충분했다. 고작 숫자 일곱개 따위에 의미를 부여하는데 이곳 사람들은 혈안이 되어있었다.
여러 의견 중 가장 유력한 후보는 그것이 이승에서 살아온 삶의 점수라는 주장이었다. 오백만점이 만점이라면, 앞 숫자가 1~4로 다양한 것도 어느정도 설명이 되었다. 아무리 나쁘게 살아도 아예 죄만 짓고 살진 않았을테니, 백만정도는 디폴트값 아니겠느냐 하는 논리였다. 왜 굳이 앞자리수가 5여야만 했느냐는 물음에는, 소숫점을 만들어 실은 그 숫자가 50000.00점을 뜻하고 5만점에 도달하는 것은 인간으로써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쩌면 이승에서의 ‘오만’이라는 단어가 이 점수에서 유래한 것이 아닐까 하는 끼워맞추기식 답변을 내놓는 사람들도 꽤나 있었다. 또 다른 의견으로는 각자가 소유하고 있던 재산의 크기를 상대값으로 나타낸 것이다 라던가, 살면서 마주친 사람의 수일 것이다 라던가 하는 말들도 돌았다.
뭐가 되었든 사람들은 그 점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길 좋아했다. 아무리 낮은 점수라도 최소 1000000 이상이니 숫자의 크기가 크기인 만큼 좋은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나보다. 애초에 시험을 칠 때도 틀린 점수를 적지 않고 맞는 점수를 적지 않는가, 사람들은 그 점수를 재산이 되었든 관계가 되었든 자신이 살아온 삶의 성적표처럼 대했다.
그 시선은 남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이전의 물질적인 것은 단순히 동일한 층위의 편을 가르는 것에서 그쳤다면, 숫자는 사람을 위아래로 갈라쳤다. 애초에 첫 숫자가 1, 2인 사람의 수가 3, 4인 사람의 수보다 월등히 많았기에 그러한 현상은 더더욱 심해졌다. 그러고보니 점수가 3, 4인 사람들이 1, 2인 사람들보다 왜인지 더 교양있어 보이기도 했다. 하다못해 사람들은 서로를 1-2 인간, 3-4 인간이라 부르기까지 하며 그 계급의 경계를 더욱 명확히 쌓아나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신분의 격차는 더욱 명확해져갔다. 고유의 취향이니, 개성이니 하는 것은 이제 없었다. 3-4 인간들 사이에서는 큰 저택에 모여 자기들끼리 파티를 여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매일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며 자신의 숫자에 대해 이야기하길 좋아했다. 셋째자리 숫자가 8인 사람은 미모가 뛰어나다던가, CODE-7의 숫자 중 홀수가 많을수록 현실적이고 직관적인 사람이라던가 하는 것 말이다. 1-2 인간들도 원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다. 큰 저택을 가지고 파티를 열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신이 1 또는 2라는 숫자를 CODE-7의 첫 숫자로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눈치를 봤고, 알아서 3-4 인간들의 눈에 띄지 않게 행동했다. 조금 불편해도, 하고싶은 것이 있어도 그들은 3-4 인간들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 참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CODE-7의 의미는 아무도 모르는데, 모두가 당연히 알고있다는 듯이 행동했다.
저승의 본부, 신들은 고민중이었다.
이승에서는 탄생과 죽음이 있고 그 수가 적기에 인간들을 관리하기가 쉬웠지만, 저승은 그렇지 못했다. 새로 탄생한 생명들이 계속해서 쌓이기 때문이었다. 이승에 나갈 수 있는 영혼의 수는 유한했기에, 환승을 위해 대기하는 시간이 이승에서 살아가는 삶의 시간의 몇 곱절은 더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심각해질 이 문제 때문에 신들은 골머리를 앓고있었다. 그 때, 옆에서 시중을 들던 한 천사가 말했다.
“가끔 이승을 내려가보면, 날이 갈수록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많은 기술이 발달해서, 예전과 같이 하나하나 사람 수를 세고 그렇지 않더라구요. 주민등록번호라는 고유 식별 코드를 개개인에게 부여하던데, 그것이 행정 처리에 그렇게 도움이 되나봐요.“
이 일로 고민하는 것 조차 지긋지긋해지기 시작하던 터라, 신들은 그 말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신들의 우두머리가 말했다.
“그렇다면 그냥 그 주민등록번호를 그대로 쓰도록 하지. 생년월일은 겹치는 자가 많을테니 빼고 말이야. 어짜피 이승에서의 기억은 다 사라지지 않으냐? 그들에겐 아무 의미없는 숫자일테지, 그리 하여도 상관은 없을것이야. 어짜피 관리하는데 편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 빠르게 처리하도록 하지, 주민등록번호의 뒷자리를 저승에서도 고유코드로 쓰는 것으로 결정합시다. 지금 저승에 남아있는 자들 중 주민등록번호가 없던 시대에 살았던 자들은 지금 바로 환생 대기 시키고, 주민등록번호가 있는 이들은 일단 저승에 남겨두고 코드를 부여하도록 하라.“
인간들은 CODE-7의 의미를 알았다. 너무도 명확히 알고있었다. 다만 그 의미가 자신들이 만들어낸 것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오늘도 저승의 신분제도는 안정적으로 작동한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