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연세가 90이 되던 2023년 10월 9일 구순연을 열고 오빠와 언니, 나와 신랑, 남동생이 작품을 모아 전시를 했다.
기사가 나와서 기록의 의미로 남긴다.
2023.10.22 16:22
민화 엄마와 딸/그림=홍재윤
피렌체의 식탁으로 조심스러운 메일이 왔다. 아흔되신 노모의 생신을 축하하는 생신잔치를 궁리하다가 열게 된 가족전시회가 있다며, 따뜻한 이야기로 소개해줄 수 있겠느냐는 독자의 편지였다.
주인공은 올해로 구순이 된 이은세님. 그의 장자인 김형남 다올투자증권 상근 감사위원을 비롯한 5형제가 각자의 작품을 출품해 전시를 연 것이다.
출품작과 함께 짧은 소개서를 읽으니 가족 전시회, 열만했다. 전문이든 취미든 '취미가 예술'인 가족 이야기다.
무엇보다 주인공 이은세씨의 삶도 주목할만 하다. 그는 방송통신대학교 최고령 졸업자 기록을 세웠다. 63세에 실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방통대에 입학해 2004년 졸업했다. 그의 나이 69세 때다. 그 시절 여성 다수는 공부하기 어려웠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만학의 꿈을 이뤘다. 그가 쓴 '만학'이라는 시에는 한 세기 전 이 세상을 살았던 한국 여인들의 한이 고스란히 담겨져있다.
"석양에 시작한 나의 배움 길
낯 뜨거워 뉘 앞에 설 수 없지만
염치없이 미적미적 흘러간 세월
포기 못 해 우리 대학 대열에 섰네
여보소 벗님네들 젊은 친구여
부탁 좀 하여보세 들어 주게나
석양에 지는 저 해 서산 못 넘게
간절한 소원일세 잡아주게나(하략)"
어머니의 이런 열정은 자식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됐을 법하다. '감성'과 '감각'을 물려받은 자식들은 바쁜 일상에서도 예술적 취미를 하나씩 갖고 사는 여유있는 어른의 모습이다.
김 위원은 금융권에 오래 종사하면서도 20대부터 취미였던 사진찍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몇 차례 전시회를 열고, 언론에 소개될 정도로 솜씨를 뽐낸다.
둘째딸 김용주씨는 198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을 등단한 시인이다. 현재 뉴질랜드에서 거주한다. '집/예순, 참 좋은 나이/보이스톡/타우랑아를 위한 시' 등을 어머니를 위해 출품했다.
셋째딸 김용옥씨는 동화작가로 민화에 도전중이다. 용옥씨가 이번에 출품한 작품은 민화(배꽃, 백일홍)다.
셋째 사위 홍재윤씨도 취미로 시작한 민화(엄마와 딸, 바다로 가다/해응영일도/화접대련도)를 출품했다. 재윤씨는 화가로 등단을 꿈꾸고 정진중이다.
둘째아들 김명남씨는 방송사에 재직중이다. 직장에 다니면서 고가구 수집과 제작이 취미인데, 직접 만든 반닫이와 이층책상 등을 출품했다.
전시회를 다녀온 관계자는 "엄마가 일찍 돌아가셔서 그런지 더 부럽고 축하하고 싶었다"며 "암투병중인 친구의 어머니도 올해 아흔이신데, 그 친구는 엄마를 모시고 다시 와야겠다는 소감을 남겼다"고 전했다.
전시는 오는 20일 오후 5시까지, 여의도 포스트타워 27층.
형제자매와 사위가 구순이 된 엄마와 장모를 위해 위해 가족 전시회를 열었다. 엄마를 위해 시, 사진, 민화, 고가구제작 등 각자의 취미 활동 결과물을 '장기자랑'하듯 내놨다. 주인공 이은세도 시를 냈다. 그 시절 포기해야했던 진학의 꿈을 방송통신대학교 최고령 졸업자 기록으로 대신했다. 그의 시 '만학'은 '배움의 한을 푼 한세기쯤 전의 시대를 산 우리 여성들의 자화상이다.
제주 외돌개/ 사진=김형남
가을사랑/사진=김형남
제주 성산 일출봉/사진=김형남
배꽃/그림=김용옥
백일홍/그림=김용옥
시 '집'/김용주
화접도 대련/그림=홍재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