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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사와동화 Jan 09. 2024

천리포 수목원에서 만난
살아남은 이름들

천리포 수목원_살아남은 나무와 꽃들, 사람들에게 감사

천리포 수목원에 갔다가 은목서와 왜성실꽃풍년화가 눈에 들어왔다.     

은목서는 이름이 예뻤다. 


은목서는 꽃이 은색이라서 은목서라고 한다. 목(나무 목)서(코뿔소 서)는 물푸레나무를 한자로 쓴 것이다. 나무껍질이 코뿔소 가죽과 비슷하다고 한다.     

목서의 원산지는 중국이다. 중국에서는 목서를 계수, 계화라고 부르는데, 바로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동요의 그 계수나무가 이 목서이다. 은목서의 꽃 향기는 천 리를 간다. 금목서는 만 리를 가서 만리향이다.     

목서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살아남았다. 살아남는 데 향도 큰 몫을 했을 것이다.    

 

왜성실꽃풍년화는 왜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재배종이라니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클지 궁금했다.      

왜성실꽃풍년화에서 왜는 일본을 뜻한다고 생각했다. 풍년화를 따로 떼면 성실꽃이 남아서 꽃에게까지 성실하라고 하나?, 성실은 왜 들어갔을까 생각하다 검색을 시작했다. 왜성실꽃풍년화로는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밑에 씌여진 블루 미스트로 찾았다. 블루 미스트는 포테르길라(장미목 조록나무과 포테르길라속)의 한 종류로 포테르길라 가르데니 ‘블루 미스트’다. 포테르길라의 꽃이 풍년화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고 해서 실꽃풍년화 흰꽃풍년화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띄어쓰기를 한다면 왜성 실꽃풍년화다.      


(외래종을 부를 때 화초는 그냥 그대로 외국식 이름을 부르는데, 나무는 우리식 이름으로 붙이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무리하게 이름을 짓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은목서는 별도로 등록되어 있지 않고 단계와 금계는 금목서라고 분류한다. 그래서 은목서는 목서라고 불러야 한단다. 목서도 그렇고 풍년화도 그렇고 분류 체계와 이름을 붙이는 것에 대한 정리가 더 필요할 듯하다.)    

 

풍년화는 1930년대 일본에서 처음 들어왔다. 노란 꽃이 피는 풍년화이다. 그 후 중국, 미국 등의 풍년화들도 들어왔다. 지금은 꽃 색도 다양해졌다.      


풍년화는 봄이 오기 전 꽃을 핀다. 그런데 미국에서 들어온 버지니아 풍년화(서양 풍년화)는 가을에 꽃이 핀다. 그 이유는 이 나무의 꽃이 벌레들에게 인기가 없어서다. 거기다 미국원산 풍년화인 베르날리 풍년화에게도 경쟁에서 밀린다. 살아남기 위해 버지니아 풍년화는 가을에 꽃을 피우기로 했다.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개화를 하고 수분이 이루어진 뒤 곧 겨울이 오기 때문이다. 이제 봄에 수정하기까지 7개월을 동면 상태로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변화하고 기다렸건만 결실율이 1% 정도로 낮다는 보고서도 있다. 

그래도 살아남았다. 자존심도 버렸을 거다. 살아남은 버지니아 풍년화의 수고로움이 기특하면서도 애잔하다.  


살아 남는 건 나무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풍년화라 이름 붙인 사람들도 있다. 풍년화는 잎이 나오기 전 노란 꽃망울을 터트린다. 1년 농사가 시작되기 전 피는 꽃을 보며 사람들은 그 해 농사의 풍년을 점쳤다 한다. 꽃이 풍성하기를 간절히 바랬을 거다. 초봄에 피는 생강나무에도 꽃이 많이 피면 풍년이 든다고 했다. 풍년화든 생강나무든 자기에게 기대와 소망을 품고 꽃을 바라봤을 사람들의 마음을 알까.   

   

은목서와 왜성실꽃풍년화의 궁금증을 풀다가 갑자기 살아남은 나무와 꽃들,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향기를 천 리, 만 리 가게 하고 자신의 약점과 경쟁자를 피해 가을에 꽃을 피우고... 꽃 이름, 나무 하나에도 소망과 기대를 담았을 이름 붙인 자들에게도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나도 살아 남고 있는 중이다. 나에게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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