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다낭과 호이안
4월에 베트남을 갔다왔다. 대학 동창 모임에 슬며시 끼어 다녀온 여행이었는데, 꽤 즐거웠다.
몇 가지 주워듣고 새롭게 깨닫게 된 것이 있었다.
베트남은 1804년부터 100년 동안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 프랑스는 3S 정책을 폈다.
첫 번째가 small(스몰), 작게 해서 사람들 마음도 움츠러들게 하려는 의도였다. 배도 1.5미터로 작게 만들라고 했는데, 베트남 사람들은 동그랗게 만들었다. 그래서 바구니 배가 나왔다. (호이안에서 바구니 배를 타고 강을 돌았다.)
두 번째는 sleeping(슬리핑), 점심시간 이후 2시간을 자는 시간으로 만들었다. 게으르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세 번째는 sex(섹스)다. 여기에는 먹는 거, 술, 담배, 마약 등이 같이 엮인다.
원래 베트남은 차를 주로 먹는 나라였으나 프랑스의 지배로 커피로 변했고, 쌀이 빵으로, 국주는 증류수에서 와인으로 변했다.
침략과 전쟁을 겪으면서 베트남 사람들은 카페 등에서 마주보지 않고 나란히 앉는다. 등을 보이지 않는다, 고 한다.
반미는 바게트라는 베트남 말이다. 반미는 베트남식 부대찌개(우리나라에서 미군이 버린 거 갖다 먹음)라 한다. 프랑스 사람이 빵 꼭대기 버린 거 갖다 먹으면서 만들어졌다.
하미 마을에는 우리와는 슬프게 엮인 역사가 있다.
처음 베트남에 파병된 사람들은 전투군이 아니었다. 초기에는 의료봉사자가 갔다. 그러나 공걱수를 보내달라는 미국의 압박으로 전투군인 청룡부대원이 가게 되었다. 청룡부대가 오기 전 16명의 한국 군인들은 두 달 동안 머물며 하미 마을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돌아올 때가 되었을 때 감사 선물을 받았다. 옥수수 감자가 담긴 바구니였다. 바구니는 그들이 사랑으로 돌봐주던 6살부터 농아인 구두닦이인 아이가 전해주었다. 그 바구니가 터졌다. 수류탄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 자리에서 여러 명의 군인들이 죽었다. 다음날 한국 군인들은 수류탄을 넣은 사람이 누구냐고 말하라고 총부리를 겨누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군인들은 그 자리에 있던 마을 사람들을 모두 학살하였다. 베트남 사람들은 증오비를 세웠다. 2004년 우리 정부가 증오비를 없애달라 요청을 했지만 그들은 위령비를 세우고 증오비는 그대로 둔 채 국화 연꽃 모양을 그 위에 덮었다. 베트콩과 싸운 월남전은 23년 전에 일어났다지만 끝나지 않았다. 투본강에는 70년 전 우리 군인이 여전히 잠들어 있고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남아 있다.
베트남의 끔찍했던 악몽, 이제 깨어날 수 있을까, 한겨례, 2023.2.13
베트남전쟁 배상 판결이 일깨운 화해의 의미, 한국일보, 2023.2.16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21610510001835?did=NA
베트남이 진짜 미워해야 할 대상은 프랑스와 미국이지 않을까. 증오비를 세운다면 미국과 프랑스의 것도 세워야 하지 않을까? 베트남전쟁에서는 우리도 피해자다. 고엽제가 하늘에서 떨어질 때 곱고 하얀 눈 같다며 나와서 다같이 맞았다는 이야기는 마음이 아팠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군인이 저지른 행위는 끔찍하다. 누군가의 잘못된 판단이 가져온 무서운 결과이다. 정치적으로 얽혀 있는 매듭을 잘 풀 수 있을까...
4분의 1이 관광 사업에 매달리고 관광객의 대부분이 한국 사람인 다낭시의 특성일 수도 있겠지만 한국 사람에게 아주 잘 맞추고 있었다. 거의 식당에는 김치 비슷한 것이 있었으며 배를 타고 강을 도는데 ‘내 나이가 어때서’와 ‘돌리고돌리고’라는 우리나라 트로트를 부르며 우리의 흥을 돋구고 팁을 받아갔다. 먹고 살기 위해서이기는 하겠지만 이렇게 맞출 수 있다는 건 머리도 돌아가고 능력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속으로 이를 갈며 우리나라를 뛰어넘을 기회를 보고 있을 거다. 선량한 사람도 물론 많이 있지만 여기에 민족이라든가 의리, 애국심이 개입되면 분노는 어떻게 표출될지 모른다.
베트남에서 한국이 만든 <범죄도시 2>라는 영화가 동시 개봉된 적이 있었다. 그 영화 내용은 필리핀에서 일어난 실화인데. 베트남을 배경으로 찍었다. 베트남 사람들의 항의로 이틀만에 영화를 내려야 했다. 내국인 보호법도 있다.
미국의 갱단 중 2위가 베트남이란다.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의리로 똘똘 뭉쳤다고 했다. 베트남 사람의 특성의 결과물일 것이다. 약간의 사상교육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악바리 근성. 나쁜 짓에 대해선 복수하려는 마음이 크고 오기, 끈기. 물귀신 작전 등 근성이 있다고 한다. 돈으로도 안 되는 센 거가 있단다.
먼 미래를 보고 투자하는 현대 자동차의 접근법은 놀라웠다. 베트남에서 한국차가 49프로를 차지한단다. 베트남에 오토바이가 그렇게 많은 건(사분의 삼이 오토바이) 길도 좀 덜 만들어져 있지만, 세금이 워낙 높기 때문이란다. 외제차는 세금이 129 프로나 된단다.
하지만 점점 길이 닦이고 있고 차 욕구는 커질 거다. 현재 현대 기아차는 홍보 기간으로 잡고 이십만킬로 무상 에이에스 무상 15년의 파격적인 조건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단다. 15년 뒤 정도면 차로 많이 바뀔 거고 미래의 고객을 지금부터 확보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경제성장률은 계속 올라갈 거고 20년 뒤쯤이면 우리와 경제가 맞먹을 거라 하니 우리나라 차가 활보할 모습에 기분이 좋다가도 조금 걱정이 된다.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인 우리나라는 어찌될지 걱정이다. 대통령이 바뀌고 나서 더욱 침체기에 빠진 우리나라를 생각하니 더 속상하다. 우리나라가 활기차고 잘 되야 외국에서도 힘을 얻는다고 한다.
이번에 베트남을 여행하면서 베트남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베트남의 평균 연령이 35세란다. 자부심 있어 보이는 젊은이들, 활기가 느껴지는 베트남이었다. 적극적이고 악착같은 부분도 있다. 중국의 입국을 거부하는 당당함도 있다.
나는 베트남이 우리나라를 쫓아오는 건 그리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예전에 하노이랑 하롱베이 여행을 갔을 때는 이번에 받았던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 그만큼 나의 눈이 조금 밝아진 것도 있겠지만 몇 년 사이 베트남이 확 변한 것 같다. 예상보다 더 빨리 우리나라를 쫓아올 것 같았다.
한국에 와서 똘똘 뭉쳐다니는 베트남 사람들이 다르게 보인다. 상냥하되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 한다.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라고 함부로 대해도 안 되고 그렇다고 동정을 해서 막 주어도 안 된다.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도록 조금더 섬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