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엄마를 보면 한번씩은 불화산의 꼭지를 터트려야 하는 것 같다.
그 지점은 여러 가지겠지만
많은 부분 '누가 나를 무시해! 나 무시받게 살지 않았어.'이다.
그리고 그 분노는 아주 가끔이지만 제일 약한 우리 신랑에게 향할 때가 있다.(나보다는 우리 신랑이 더 착하다. 나는 엄마의 말에 별로 흔들리지 않는다.)
'같이 살면서 그것도 못해주냐?'이다. 뒷말이 붙는다. 부탁하려고 지지발발(엄마가 많이 쓰는 단어)하지는 않는다고 소리를 지르신다.
엄마가 신랑한테 어디를 가자고 하려면 자기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날짜를 조율하고 자기의 필요를 채우려고 상대방을 설득하는 타협은 할 수 없는 걸까? 그런 타협을 하기 싫다면 관계를 좋게 갖기 위해서 뭔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어른이니까 말을 들어, 가 어린 나이에 결혼한 것도 아닌 나이 많아 결혼한 사위가 가능할까? 알아서 하지는 못해도 성질이 드럽지는 않기에 조곤조곤 이르면 들어드릴 텐데, 부탁을 정식으로 하지도 않으신다.
직접 본인이 원하는 걸 부탁하거나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얘기하는 걸 힘들어 한다.
"커피를 드시겠어요?" 하면
"아무거나." 또는 "네 맘대로." 하신다.
그럼 먹겠다는 건지, 안 먹겠다는 건지 확실히 하시라고 한다.
노인네 대충 타 드리고 안 먹으면 말고 먹으면 좋고 해도 괜찮을 거라 생각하기도 하지만...
이렇게라도 자기의 생각을 정확히 표현하게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요즘은 커피에 대해서는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하신다.
분노의 포인트 지점에서도 느끼겠지만... 본인의 생각이 없는 게 아니다.(인지하지 못할 수는 있다.)
굳이 내 입으로 말하지 않겠다, 이다.
원하는 것을 굳이 말해야 아느냐, 일 때도 있다.(원하는 것이 고상하지 않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목표지향적이고 상대방에 대한 기대치도 높다. 본인도 생각이 많으시고 똑똑하고 개척을 잘 한다. 해결책도 잘 찾는다. 그래서 칭찬엔 인색하다. 공감하는 것도 쉽지 않아서 상대방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를 헤아리진 못하고 자기한테 한 행위만 섭섭하다. 그러다 보니 사근사근하는 사람에게 쏙 넘어갈 때도 있다. 마음이 아주 강한 사람은 아니다.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높아서 남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CEO 같은 성향이랄까. 생각은 저만치 앞서 있으면서 혹시 거절을 하거나 속뜻을 드러내서 일이 그르칠까 조심한다. 속뜻을 알아채는 비서가 있으면 딱 좋을 것 같다. CEO에게 경제적인 것이 중요하듯이 엄마에게는 돈이 아주 중요하다. 물건을 사오면 뭐든지, "얼마니?"가 첫 물음이고 어떤 일을 할 때면 "이게 돈이 되겠니?"다, 신랑이 취미 생활을 하는 것도 그리 달갑지는 않으실 거다. 꾹꾹 참다가 어느 순간 터진다. "작업하느라 시간이 안 된다."고 하면 "돈도 안 되는 일보다 내가 부탁하는 일이 더 하찮으냐!" 하고 소리를 지르신다.
하지만 성공한 CEO 가 갖고 있는 특성인 단호하거나 비정한 부분은 적다. 남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것도 귀찮아도 기꺼이 하신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사람과 일에는 편하게 협조하지만 불편한 마음이 들면 안 할 핑계를 찾게 되는데 신랑에게 엄마의 명령이 그렇다.(본인은 참았다 하시는 거라 하지만 사위와 그런 편한 관계를 만들지 못했고 그렇다면 어느 정도는 자존심을 버리고 타협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하다.) 부탁을 못하신다. 부탁은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는 것인데, 그걸 안 해줘, 같은 게 되니까.
아마도 신랑을 향한 분노는 나를 향한 것일 수도 있다. 신랑은 내 말을 잘 들으니까...왜, 너는 설득하지 않니? 하는 속뜻이 있을 것이다.
엄마가 보기에는 신랑이 내 말이라면 다 들어주는 것 같고 해서 서운하겠지만
그만큼 싫어 하는 것은 하지 않으려 애쓰고, 마음을 헤아리는 과정이 있어서인 것은 모르시는 것 같다. 지금도 자녀와의 문제에 있어 이런 걸 잘못하신다.
어떤 것은 기다려주고 싫어하는 걸 하게 하려면 설득을 하고 이런 과정이 쌓여서 서로의 부탁을 잘 들어주는 것인데, 엄마는 권력 관계로 보시는 것 같다.
자녀들이 어릴 땐 불편한 채로 끌려갔다.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우리 집 같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집에서, 무능력한 아버지 아래서, 엄마의 의지가 없었다면 5남매의 대학 졸업이 가당키나 했으랴. 그 과정에서 우리들도 고생은 많았지만 이끌어주고 다리를 만들어준 엄마 덕분에 그럭저럭 잘 살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 5남매는 서로 살갑지 않다. 추억도 별로 없다. 각개 전투로 살아남느라, 마음이 황량한 채로 유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냈다. 행복의 감정이 뭔지 모른 채로 컸다.
엄마를 존경은 하지만 사랑하기가 쉽지 않다.
엄마의 성격은 변하지 않았다. 단지 엄마가 나이를 드셔서 예전처럼 하시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불편한 채로 참고 지냈겠지만 어른이 된 자녀들은 안 볼 수 있다.
같이 사는 나는 안 볼 수가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도 마음을 읽는 능력이 성장해서 엄마가 왜 그런 행동과 말을 하는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아니까, 속상은 해도 상처를 받지는 않는다.
부작용은 속이 다 들여다 보이니까 어떤 때는 얄밉다. 나이가 많으신 분을 얄미워하는 내가 한심하기도 하다.
엄마는 외향적이라 밖에서 에너지를 얻는 분이다. 누군가와 계속 이야기를 하느라 거의 통화 중일 때가 많다. 끊임없이 뭔가를 하고 싶어 하신다. 그게 치매를 예방하고 건강의 비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엄마의 욕구는 이제 엄마 혼자의 욕구가 아니게 되었다. 혼자서 할 수 없으니 그게 나의 몫으로 오고 아무 생각없이 있던 신랑에게 참았던 '분노'라는 불똥이 튀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욕구도 같이 줄어들었으면 좋겠다.(엄마는 많이 줄었다 하시지만 워낙 가만있지 못하는 분이라 나는 버겁다.) 나이도 많으시니, 엄마가 무엇을 할 때 받는 스트레스가 몸에 반응을 바로 일으킨다. 속을 끓이시는 일이 있으면 과민성 설사가 된다. 한번 그리되니 만성이 된듯 싶다.
노년이 어렵다. 욕구가 많을 수록 외부에서 에너지를 얻을 수록 더 어려울 것 같다.
엄마의 욕구와 내 욕구가 잘 맞는다면 서로에게 좋겠지만
나는 엄마의 "얼마니?"하는 물음에 값을 기억 못할 뿐 아나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고, "이게 돈이 되겠니?" 하면 돈보다 더 큰 기쁨에 대해 얘기하고 싶고, 나 자신 돈 안 되는 글쓰기와 책읽기를 즐기는 사람이고, 신랑의 취미 생활을 적극 응원한다.
엄마도 좀더 아름다운 것에 관심을 갖고 마음의 안쪽을 바라보고 했으면 좋겠는데, 쉽지 않다.
나 자신도 엄마에게 온전히 맞출 정도로 성숙하지 않다.
엄마 덕분에 이 정도의 경제 생활을 누리는 것에 감사하면서도 엄마 없이도 충분히 살 수 있을 정도의 능력도 되니, 무조건 엄마의 말을 듣는 건 되지 않는다. 나도 점점 나이가 드니,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 수는 없겠지만,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되도록이면 하지 않고 살고 싶다. 엄마와 나의 원하는 방향이 다르니 결국 갈등을 줄이려 노력할 뿐이다. 아쉽다.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 잘 살아오셨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나도 사랑이 필요하다.(언젠가부터 이상하게 내가 두 사람에게 사랑을 분배하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 했더니 엄마는 집을 나가시겠단다.(나가실 수 없으니 절대 반대라는 뜻이다. 왜 키우고 싶은지는 물어볼 여유가 없으시다.) 그 이유가 동물을 별로 안 좋아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3순위로 밀려날 것 같아서라고 하신다.
나에게 엄마는 지금도 신랑에게 밀려 2순위인데, 고양이가 이 집에 들어오면 엄마는 3순위로 밀려나실 거라는 것이다.(고양이가 주는 행복을 같이 누리실 생각은 없다.)
고양이와의 사랑은 당분간 유보다.
엄마의 분노 이후,
신랑은 나름 소심하게 반항하고 있다. 밥상엔 같이 앉지만 말을 안 하는 거로.
엄마가 가끔 불화산의 꼭지를 터트려서라도 큰 폭발을 막을 수 있다면..., 받아들여야겠지.
엄마는 변할 수 없다 하시니... 엄마의 분노가 좀더 아름답기를, 좀더 행복한 쪽으로 가기를 바랄 수밖에...
내가 좀더 엄마를 사랑스런 마음으로 봐야 하는데...
아, 어디 가서 넘치는 사랑을 구해 올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