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우에게 추천하는 데이트 장소,
창덕궁 후원

왕들의 공간, 궁궐과 종묘

by 역사와동화

장가를 못 간다고!


“선생님, 저 장가 못 갈 거예요.”

초등학교 4학년 남자아이에게서 이게 나올 만한 말인가? 나는 속으로는 놀랐지만 태연하게 물었다.

“시우야, 왜 그런 생각을 했어?”

“우리 삼촌도 40살인데 장가를 못 갔거든요.”

시우는 시무룩한 얼굴로 말했다.

시우는 조금 통통하고 또래에 비해 조금 늦된 아이다. 인기가 많은 아이는 아니다. 그래도 처음 수업할 때부터 역사 책을 읽고 답을 열심히 말해서 너무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아마 좀 눈치 없고 이런저런 시우의 행동을 보고 주위 사람들이 예를 들어 말해 줬겠지. 그래도 이런 생각까지 하게 하다니, 너무 속상했다.

“시우야, 결혼은 사람에 따라 조금 늦게 하기도 하고 일찍 하기도 해. 삼촌은 조금 결혼이 늦은 것뿐이야. 결혼을 안 하고 사는 걸 선택할 수도 있어. 벌써부터 장가 못 갈 거라고 단정지으면 안 돼.”

“저는 매력이 없어요.”

“매력의 종류가 얼마나 많은데. 선생님이 시우를 다는 모르지만 선생님 수업 시간에 시우를 보면 시우는 이야기를 잘해.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도 매력적이야. 사람들이 재미있는 사람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시우는 역사도 잘 아니까 남들보다 더 재미있게 이야기할 수 있어. 그러니까 시우의 그런 장점을 살려서 시우만의 매력을 갖도록 해.”

시우는 가만히 내 말을 들었다.

이제 초등학교 4학년에게 이런 생각을 갖게 하다니. 정신 차리라고 이야기를 했겠지만, 이게 정말 시우를 위한 것인가? 벌써 외모와 몸매로 자기 자신에 대해 속상한 마음이 들 텐데, 그게 아니라고 하지는 못할망정 그런 생각을 갖게 하다니.


중학생이 된 시우에게서 어느 날 카톡이 왔다.

<선생님, 저 내일 역사 시험 봐요.>

<그래, 공부 많이 했어. 잘 볼 거 같아?>

<네.>

<그럼 시험 보고 점수 알려줘.>

며칠 후 시우에게 카톡이 왔다.

<선생님, 저 98점 받았어요.>

<우와, 잘했다. 잘 볼 줄 알았어.>



시우에게 추천하는 데이트 장소


창덕궁은 살아 있는 왕을 위한 공간이고 종묘는 죽은 왕들을 위한 공간이다. 종묘에서 공부를 하고 창덕궁으로 넘어간다. 두 곳을 하나의 수업으로 한다. 왕들의 공간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두 공간을 비교해서 보는 재미가 있다. 종묘에는 색이 적고 꽃이 없다. 조용하고 엄숙한 느낌이 든다. 창덕궁은 종묘보다 색이 많고 아름답게 꾸며 놓았다. 사람이 살았던 곳이니만큼 일상 생활의 흔적이 많다.

종묘.JPG 종묘
P1012431.JPG 창덕궁
창덕궁후원.JPG 창덕궁 후원

종묘에서 창덕궁으로 가다 보면 비원 슈퍼가 있다. 슈퍼에 들어가 아이들이 먹고 싶은 간식을 한 개씩 고르게 하고 먹으면서 쉬면서 온다. 가끔 아이들 중에 편의점을 원하는 아이들이 있어 그럴 때는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르기도 한다.

창덕궁에 들어가 인정전, 선정전 등을 둘러본다. 시간이 되면 대조전에서 조금 놀기도 한다.

창덕궁은 참 편안하고 예쁜 궁궐이다. 인정전에서 해를 등에 지고 사진을 찍으면 아주 멋지다.

후원도 가고 싶지만 생략한다. 시간도 안 되고 예약을 해야 해서 쉽지 않기도 하지만 일부러 안 간다. 후원은 아이들이 나중에 올 공간으로 남겨두고 싶다.

“얘들아, 후원 나중에 가 봐. 너무 좋아. 너희들을 위해 이 공간을 남겨두는 거야. 후원은 나중에 너희들이 사랑하는 사람 생기면 꼭 와야 해. 사랑이 더 깊어질 거야.”

그러면 아이들이 에이, 하면서 배시시 웃는다.


시우도 나중에 창덕궁에서 데이트를 하지 않을까. 후원으로 가는 표를 끊어 여자 친구를 데려갈 것이다. 거기서 정조의 규장각에 대해서, 연못이 왜 네모나고 가운데 동그란 섬 같은 게 만들어졌는지 말해 줄 것이다. 정약용과의 일화도, 김홍도에게 백성들의 그림을 그려오라 한 것도 이야기해 줄 것이다. 아주 재미있게.

시우와 카톡을 끝내고, 창덕궁 후원에서 데이트를 하고 있는 시우를 상상하며 슬그머니 웃었다.

그러다 조금 걱정도 되었다.

‘근데 시우야, 여자 친구가 네 이야기 들을 때 재미있어 하는지도 가끔 살펴보면서 해. 아님, 처음부터 역사 공부를 좋아하는 여자 친구를 사귀던지.’

음, 이런 얘기는 안 해도 다 알아서 하겠지,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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