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젓하고 예의바른 아이의 자해
소희는 의젓하고 예의바른 여자아이였다. 집중력도 뛰어나고 열심히 했다. 상상력을 발휘해서 하는 거에 대해서는 어려워했지만 그것도 곧 방법을 익혀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아이였다. 동생이 수업에 같이 온 적이 있는데, 소희 나이에 비해서 너무 잘 돌보았다.
이런 아이를 만나면 기특한 마음도 있지만 안쓰러운 마음도 같이 든다. 자기 나이보다 지나치게 잘하는 경우,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어느 날 소희가 손가락에 붕대를 감고 왔다.
“지우개를 자르다가 손가락도 베었어요.”
“어쩌다 그랬어?”
“졸려서 그랬어요.”
소희는 졸리면 세수해서 잠을 깨고 숙제를 해야 한다고 했다. 어떤 때는 12시까지 해도 다 못한다고 했다.
실수로 손을 베었다고 했지만 나는 자해 행위처럼 느껴졌다.
“어머님, 소희가 너무 힘든 것 같아요.”
어머님은 그러지 않아도 심리 상담을 받기로 했다고 고맙다고 했다.
나는 내심 뿌듯했다. 내가 말해서 어머님이 그런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겠지만, 이제 소희가 동생도 그렇게 열심히 안 돌보고 숙제도 하기 싫다고 그냥 자버리는, 그러면서 자기 길을 찾아가는 아이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소희는 똑똑하고 생각이 깊은 아이니까. 어머님도 아이를 사랑해서 바뀌실 테니까. 권위적인 아빠도 아이의 행복을 위해 상담받는 결정을 반대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런데 몇 년 후 소희의 소식을 들었다. 소희 어머님은 변하지 않았다고 하셨다.
“소희가 논술을 하는데 논술 선생님이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그대로 쓰라고 했대요. 그러니까 소희가 몇 번이나 '정말 마음속 이야기를 써도 돼냐?' 고 물어보더래요. 그렇다고 했더니, '부모님께는 절대 안 보여 줄 거냐?'고 또 묻더래요. 그렇다고 걱정 말라고 했더니, 고심을 하다 글을 썼대요. 근데 그 내용이 엄마에 대해서 아주 안 좋게 쓴 거라 선생님은 걱정이 되어서 엄마에게 말한 거예요. 엄마는 소희에게 그런 걸 쓰면 어떡하냐고 했고, 소희는 선생님에게 왜 안 보여준다고 마음껏 쓰라고 하더니, 거짓말했냐고 울면서 소리쳤다고 하더라구요.”
그 이야기를 듣는데 마음이 아팠다. 이제 소희는 더 마음속 이야기를 못하겠구나, 더 사람을 못 믿고 자기 안으로 들어가겠구나.
요즘은 소희 같은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부모의 기대에 자신을 맞추느라 스스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해치는 아이. 손톱을 물어뜯는 건 애교에 속한다. 머리를 뽑고 허벅지를 찌르고 머리를 쾅쾅 박고 하는 아이들. 자기 몸을 해쳐 가면서까지 아이가 뜻을 전하면 제발 돌아보면 좋겠다. 제발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 공부를 잘 해야 하고 학원을 보내야 하고 많은 것을 가르친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소희를 생각하며 스물한 살(대학교 가고 2학년 때쯤은 휴학을 하기가 쉽지 않을까 생각하며)된 소희의 전화를 받고 있는 나를 상상한다.
“선생님, 저 기억도 못하시겠죠?”
“아냐. 기억해. 초롱초롱한 눈도 생각나고, 얼마나 열심히 하던지, 그런 소희였는걸.”
“흣, 저 이제는 그렇게 열심히 안 해요. 지금은 학교도 쉬고 여행 중이에요. 제가 눈물콧물 쏟으며 말씀드렸더니 할 수 없이 허락하셨어요. 부모님께는 언제 집으로 돌아갈지 모르겠다고 말씀드렸어요. 부모님과 거리를 두어야 나를 지킬 힘이 생길 것 같아요.”
“잘했어. 네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잊으면 안 돼.”
사실 내가 이런 전화를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초등학교 때 만났으니, 소희가 나를 기억하지도 못할 테니까. 그래도 제발 나 아닌 누구라도 이런 전화를 받았으면 좋겠다. 마주앉아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