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지하철이 자존감을 키운다

책 읽기, 혼자 하기로 자존감 키우기

by 역사와동화

역사 책 읽기의 힘, 혼자 다니기의 힘


진수와의 수업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한국사는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1, 2』에 사이사이 관련 책을 읽고 쓰기를 같이 했다. 한국사를 끝내고 세계사를 했다. 『세계역사 이야기』를 같이 읽었다. 5권짜리인데 엄청 두꺼워 보이지만 재미있는 이야기체에 글씨가 큰 편이라 휙휙 한장한장 넘어가는 즐거움도 있다. 진수는 두꺼운 책도 기꺼이(?) 읽었다. 또래보다 수준이 꽤 높은 책들도 읽었다. 안 읽어온 적도 몇 번 있고 가끔 수업 시간을 잊기도 했다. 하지만 책을 안 읽어온 날은 잘못했다고 생각했는지...다른 때보다 집중을 잘했다.

진수와의 수업이 쉽지는 않았다. 혼자서 하는데다 한국사가 끝나고는 세계사 공부를 원했는데, 나로서는 세계사를 그리 잘 아는 게 아니라 따로 공부해야 하고 읽을 책도 더 살펴봐야 하고 없는 책이면 새로 사야 했다.『세계역사 이야기』를 끝내고는 공부하기 싫어서 은근히 그만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근데 더하고 싶다고 해서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 1, 2』를 기본으로 하고 관련 책을 읽었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학원을 가게 돼서 추석 연휴와 크리스마스 연휴에 수업할 때도 있었다.

“노는 날인데 수업해서 진수한테 미안하네요.”

“아니에요. 저희가 미안하죠. 진수는 좋아하는 것 같아요. 뭔가 혼자만이 즐기는 시간 같다고 할까요.”

어머니의 말씀에 조금 찔렸다. 이 재미없는 수업을 혼자서 그것도 먼 거리를 싫다 하지 않고 오는 게 고마워서, 만화책을 보아도 조금 봐주고 게임도 조금 하게 했다.

혼자 수업하는 걸 보면 안쓰러웠다. 청소년이 되었으니 친구와 티격태격 알콩달콩하는 재미로 수업해야 하는데, 혼자서 책을 읽고 혼자서 대답해야 하고 혼자서 쓰는 게 안 되어 보였다. 그래서 간식에 더 신경을 썼다. 먹는 즐거움이라도 더 느끼라고.


처음에 수업할 때는 엄마가 차로 데려다주셨다. 수업 정도는 아빠가 데려다주면 좋겠다 생각도 했지만, 우리 집에 아이를 데려다주고 아이가 수업하는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차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잠을 청하는 걸 볼 때면 이 시간이 오랜만에 갖는 어머니만의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다. 세 형제를 키우기 위해 동동거릴 수밖에 없었을 테니.

나중에는 진수 혼자 왔다. 40분~1시간 정도 걸렸는데 싫다 하지 않고 2년을 넘게 다녔다. 택시로 오다가 그 다음엔 지하철로 왔다. 그 다음엔 우리집이 이사를 해서 지하철을 타고 또 마을버스를 타고 왔다. 오는 길을 직접 진수에게 알려주었다. 집에만 있던 아이가 우리집을 왔다갔다 하면서 대중교통도 이용하고 점점 성장하고 있었다.

혼자 다니면서 아이들은 성장한다. 주의 사항을 잘 알려주고 지하철도 버스도 타게 하자. 대중교통을 처음 이용하고 성공했을 때 아이들이 꽤 뿌듯해한다. 작은 거지만 아이들의 자존감이 + + +~ 된다.



너는 잠재력 있는 아이야

진수는 원래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또래보다 수준 높은 책도 읽고 소화했다. 논리가 좀 이상할 때도 있었지만 바로 수긍하진 않았다. 따지고 스스로 생각한 뒤에 받아들였다. 설득하고나면 나도 뿌듯했다. 진수는 어떤 때는 별로인 글을 쓰기도 했지만 대부분 일반적이지 않은 독특한 글을 써냈다.


<세계 역사 이야기 5> 책을 마무리하며 그 책의 서문을 참고로 쓴 글이다.(파란색이 진수가 쓴 글)


오늘날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은 난데없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분명한 이유가 있죠.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지난날의 전쟁과 폭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충격적인 일들이기는 해도 난데없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그 어떤 사람도 처음엔 정의와 평화를 외치지만 말(末)에서는 천사의 탈을 쓴 악마처럼 되기 마련이죠. 혁명은 겨울을 끝내고 봄이 오게 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었던 차디찬 땅에 새순이 돋아나게 해줍니다.

혁명가라고 해서 자기 내면의 악과 싸워 이긴 사람들은 아닙니다. 20세기의 역사는 포악한 독재 권력에 맞서 싸워 이기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자기 내면의 악에 휘둘리고 마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혁명은 계절과도 같습니다. 봄이 오긴 하지만 쪄죽을 것 같은 여름이 오고 가을이 왔으면 추운 겨울이 오지요. 여름은 강대국의 (태양) 잔재로 국민들의 분열이 일어나 제일 힘든 때입니다. 가을은 이 잔재가 사라지고 드디어 평화라는 달콤한 열매를 맺는 때입니다. 하지만 언젠가 계절이 바뀌고 겨울이 오듯이 혁명가는 언젠가 독재자가 됩니다.


진수는 기억력이 나보다 더 좋았다. 연도 같은 것도 잘 기억했다. 어떤 거는 더 많이 알았다. 그래서 어떤 때 는 ‘다음에 논의하자, 숙제야.’ 하고 무사히 넘기기도 했다.

역사적 사실 하나를 더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할 일은 이녀석에게 보다 공부를 재미있게 느끼게 하고 방향을 잡아주고 생각할 거리를 주는 것이었다.

진수는 점점 좋아졌다. 집중하는 시간도 점점 길어지고 예전에는 얘기하기 힘들었던 관계의 즐거움도 이야기했다. 진수는 역사에 흥미를 가졌다. 역사에 흥미를 가지면 인간 관계도 솔솔 저절로 배운다.


수업 일정대로 거의 끝나가는데 코로나 때문에 마지막 수업을 못하고 말았다.

수업이 없는 동안 카톡 메시지가 왔다. 반가움에 열어보았는데...


친구가 보낸 아빠가 되었다[완결] 이용권이 도착했어요.

친구가 보낸 접경지역의 동물 병원 이용권이 도착했어요.

친구가 보낸 나 혼자만 레벨업 이용권이 도착했어요.

친구가 보낸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이용권이 도착했어요!

카카오페이지에서 함께 즐겨요.~

매일매일 쏟아지는 이용권 선물로 인기 만화, 소설을 즐겨보세요!

“메세지를 받은 후 일주일간 선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걸 보내줘서 고맙다고 해야 할지...뭐라 하면 그나마 보낼 곳이 하나 줄어들어서 힘들지 몰라서...

만화 보고 있군. 게임을 하고 있군. 하고 웃기만 했다.

음... 근데, 공부하다가 잠깐 쉬는 거겠지?


“진수 공부에 대한 걱정으로 다그치고 기다려주지 못했는데... 선생님 말을 듣고 좀 천천히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금 기다릴 힘이 생겼어요.”


진수야, 엄마가 기다릴 힘이 남아 있을 때 돌아가야 해. 너무 늦으면 안 돼.

남들보다 조금 늦은 건 알지?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 네 안에서 좋은 것이 많이 나올 거야. 너는 잠재력 있는 아이니까.


어머님이 그동안 얼마나 고생하셨을지 안다. 아들만 셋인 어머니, 어떻게 그렇게 지치지 않고 아이를 키우실까.

늦둥이인 셋째 아드님 수업을 곧 하게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1년 가까이 미루어진 수업이다. 독특한 성격의 첫째 형님을 거치고, 까칠한 둘째 형님 아래서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어떻게 컸을까? 마구 기대하고 있다. 진수 어머님의 셋째 아드님 빨리 보고 싶다.

“큰형님은 어떻게 지내십니까? 셋째 아드님으로서 살아남은 비결을 알려주십시오.”

만나면 공손하게 물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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