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의 형제의 난도 갑자기 일어난 것은 아니다.

경쟁과 비교의 악순환

by 역사와동화

형제의 난이 일어나다


아이들과 쇳대박물관 3층에서 열쇠와 자물쇠를 보고 내려왔다. 쇳대박물관은 대학로에서도 조금 안쪽에 있고 작은 데다 입장료도 있었다. 입장료가 있으면 입장 턱이 높다.(입장료도 많지 않은데...내고 가도 좋을 텐데...) 쇳대박물관은 사람들이 많이 오지는 않는다. 우리만 수업할 때가 많아서 조금 더 편하게 수업할 수가 있었다.

수업 중에 진수가 화가 난다고 동생에게 의자를 집어던지려고 했다. 형제의 난이 시작되었다. 진수는 공격성이 조금 있는 아이였다. 나도 놀래고 박물관 담당자도 놀랐다.

"걱정마세요. 집어던지진 않을 거예요."

일단 박물관 담당자를 안심시켰다.

"내려 놔. 화난 이유를 들어보자."

진수를 지켜보았다. 일단 진수의 화를 가라앉혀야 했다. 진수는 의자에서 손을 떼었다. 진수 동생도 같이 수업을 했는데, 동생이 형을 계속 자극했다. 같이 놀고 싶고 형의 사랑을 받고 싶은데 형이 받아주지 않으니 동생도 불만이었다. 감정이란 것은 확 올라왔다가 사라지기도 하기 때문에 다치지 않을 정도의 보호를 하고 조금 싸우게 했다. 할 말 다 하고 싸우고 각자의 억울한 이야기 들어주면 또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자매들은 경쟁을 해도 잘 드러나지 않는데 비해 형제들은 좀더 드러나는 것 같다.


쇳대박물관에서 무사히 수업을 마치고 짚풀생활사박물관으로 향했다. 보통 짚풀생활사박물관과 쇳대박물관을 같이 간다. 거리도 가깝고 다양한 박물관에 대한 내용의 수업이어서 그렇다.(쇳대박물관이 문을 안 열 때가 있어 그럴 때는 짚풀생활사박물관에서 다양한 박물관에 대한 공부를 더하고 '나의 박물관' 구상을 좀더 꼼꼼히 한다. 그리고 대학로를 둘러본다.)

이 수업의 핵심은 "이렇게 다양한 박물관이 있어! 신기하지." 그래서 세상의 박물관에 대한 호기심을 키우는 일이다. '나의 박물관'을 구상하고 그리게 하면 다 다르게 자기만의 박물관을 만들어낸다.


짚풀생활사박물관으로 가는 길은 즐거웠다. 대학로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낄낄대면서 갔다.

P2196149_1.jpg 깃발은 아이들이 만들어왔다. 깃발을 높이 들고 아이들은 그 뒤를 따라왔다.

짚풀생활사박물관에 도착해서 볏짚으로 뱀 만들기를 했다. 짚풀로 만든 유물을 보며 공부를 마치고 마당에서 기다란 밧줄로 꼬마야꼬마야도 하고 놀았다. 티격태격은 했지만 쇳대박물관에서 일어난 정도의 심한 형제의 난은 없었다.

P1010356.JPG 짚풀생활사박물관에서 만든 뱀


가끔 이 형제의 난을 평정하고 나면 또 다른 형제의 난이 벌어졌다. 다행히 이 형제들은 서로에게 감정적으로 무덤덤한 편이라 그리 심하지는 않았다.

수업 때마다 긴장은 했지만, 수업이 잘 되면 엄청 기뻤다. 뇌관만 잘 다루면 되는 아슬아슬함의 경계에서 갖는 새로운 기쁨이 있었다. 아이들이 창의적이고 진지하고 독특해서 특별한 기쁨을 주기도 했다. 싸우지 않을 때는 잘 어울려 놀았다.



형제의 난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지 않는다


억울할 때, 이기고 싶을 때, 차지하고 싶은 것이 클 때 난이 발생한다. 형제들은 경쟁 구도가 더 심하다. 왕자의 난도 그렇고 재벌들의 형제의 난도 차지하고 싶은 것이 클수록 피가 더 튀길 수밖에 없다. 이방원이 일으킨 제1차 왕자의 난은 권력욕은 기본이지만 억울함에서 시작되었다.


태조 이성계가 방석을 세자로 삼았을 때 방석은 10세였다. 방석이 뛰어났으면 그래도 좀 나았으련만 방석은 자질이 부족했다. 왕이 되기 위한 공부도 하기 싫어했다. 태조에겐 합당한 명분(현존 왕후의 자식)이 있었다. 이방석은 조선 왕조 첫 번째 왕비인 신덕왕후 강씨의 아들이었다. 하지만, 형을 제치고 동생이 되었기 때문에 명분에서 조금 딸렸다.

이방원을 비롯한 신의왕후 한씨에게서 태어난 왕자들은 아버지가 자기들을 버리는 것처럼 여겨졌다. 이방석이 권력을 잡으면 자신들의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일단 따를 수밖에 없었지만 분노와 실망이 꽉 차 있었다.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고 명분도 어정쩡한 채, 적만 너무 많아진 상황이었다. 그런데 명분을 제공했던 친모인 신덕왕후가 한양 천도 이후 사망해 버렸다. 고작 40세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태조와 한편이던 정도전은 뛰어난 인물이지만 정치적 경험은 부족했다. 너무 급진적으로 정책을 추진했고, 반대파를 무마시키지 못하고 너무 강경하게만 대했다. 불만이 커질 대로 커진 상황이었다. 억울해서 이를 갈던 신의왕후 한씨 소생 왕자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왕자의 난 이후 이방원은 끊임없이 명분을 만들며 자기 자리를 확고히 다져나갔다.

태조로선 억울할지 몰라도 현재 사랑하는 부인, 사랑하는 막내아들을 세자로 삼아서 이런 결과가 온 것이었다. 태조가 좀더 자녀들의 마음을 특히, 이방원을 헤아렸다면, 아님 들고 일어날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명분을 만들어 놓았다면 이 정도의 참담한 난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더 차지하고 싶어서 싸운다. 동생이, 언니가, 형이 더 사랑을 차지하는 것 같아서 싸운다. 진수의 어머니는 사랑이 많은 분이었다. 그래서 형제들은 더 싸웠다. 사랑을 더 차지하고 싶어서, 사랑의 단맛을 알기 때문에, 동생은 형도 자극했다.

부모의 사랑을 혼자 독차지하고픈 욕심, 이걸 어떻게 다스릴 수 있을까, 아이들도 쉽지 않을 것이다.

형제와 자매의 싸움은 그러니 아이들이 그토록 간절히 바라는 부모의 사랑이 기울어져 있고, 아이가 싸우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당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다.


진수 형제는 경우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형제와 자매, 남매간의 싸움은 거의 불공정과 비교에서 비롯된다. 비교하는 순간, 형제와 자매, 남매는 형제가 아니라 경쟁자가 된다. 우애는 저멀리 달아나버린다.

아이들에게는 먹을 것도 똑같이 주어야 싸우지 않는다. 그럴 수 없다면 누구라도 수긍할 수 있는 공정해 보이는 명분을 만들어야 한다. 나도 아이들에게 먹을 걸 줄 때 똑같이 주려고 애쓴다. 잘라서 주는 것보다는 낱개로 포장된 것을 준비한다. 누군가에게 더 줄 때는 이유를 말하고 동의를 구한다. 다행히 아이들이 나를 그렇게 사랑하지 않아서 나를 차지하려는 난은 일어나지 않는다. 감사하기도 하다. 난이 일어난다면 엄마들처럼 잽싸게 평정을 못할지도 모른다.



차라리 싸우는 게 조금 낫다


나는 자주 싸우는 형제보다 무덤덤한 형제들이 더 걱정이 되었다. 이 형제의 어머님은 형제의 감정을 너무 읽어주지 못했다. 엄마도 힘이 없어 보이고 지쳐 보였다. 첫째는 호기심이 없는 아이가 되어가고, 둘째는 무척 섬세한 아이였는데 엄마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감정인지를 알아주지 않으니 화를 내면서 말할 때가 많아졌다. 무덤덤한 형제들은 엄마의 사랑을 차지하려고 싸우지는 않았다. 자기 감정을 읽어주지 못하는데 사랑한다고 느끼기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무덤덤한 형제의 형은 무엇을 얻으려고 싸우는 방법을 잘 몰랐다. 그래서 자신을 해치는 쪽으로 흘러갔다. 권력 싸움도 의욕이 있어야 할 수 있다.

“어머니, 어머니가 아이들의 감정을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선생님, 저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저도 에너지가 딸려서 할 수가 없어요.”

“네, 어머님도 많이 힘드실 거예요.”

몇 번 조심스럽게 말씀드리다 그만하게 되었다.


진수 어머니는 진수를 위해 학원을 모두 끊고 심리 치료, 놀이 치료를 받게 했다. 진수는 팀 수업이 끝나고도 혼자서 역사 수업을 계속했다. 무덤덤한 형제의 형도 같이 했으면 했는데 안 한다 하였다.

3년 가까이 한국사와 세계사 책을 읽고 쓰기도 같이 했다.

그 사이 진수는 몸도 맘도 많이 컸다. 점점 인사도 잘하고 감정 조절도 잘했다. 형제의 난은 예전보다 훨씬 줄어들었다고 한다. 어머님의 엄청난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나도 옆에서 아주 조금 거들었다고 생각하니 진수가 더 예뻐보였다.

“너 예전에 쇳대박물관에서 의자 집어 던지려 했던 거 기억나. 어쩜 이렇게 잘 컸대.”

진수가 씩 웃었다.


'진수야, 잘 자라느라 고생 많았어.'

수업 시간에 공책에 열심히 쓰고 있는 진수를 보는데, 괜히 울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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