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이 화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노의 이유

by 역사와동화

분노와 친절 사이의 거리


학기 초면 아이들이 담임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우리 담임선생님은 화를 내서 무서워요. 선생님은 화를 안 내잖아요.”

나는 선생님 편을 들고 싶다. 나도 이 시간만큼은 선생의 자리에 있다. 그리고 아이들이 학교에서도 행복했으면 한다. 선생님을 조금이라도 더 좋아해야 학교가 더 행복한 곳이 되니까 오해라면 풀어주고 싶다.

“너희들이 담임선생님 화나게 했구나? 샘은 너희들이 말을 잘 들으니까 화를 안 내는 거야.”

“아니에요. 그냥 막 화내세요.”

“그럴 리가?”

“우리 담임선생님을 못 봐서 그래요.”

그리고 슬그머니 말한다.

“선생님은 친절해서 좋아요.”

이 말이 기쁘지만은 않았다. 나는 아이들을 잠깐 만난다. 담임선생님은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화를 내는 담임샘도 힘들고, 아이들도 힘들 텐데.


학기 초에는 담임선생님이 무섭다고 이야기하는 아이들이 좀 있다. 아마 아직 적응하는 기간이라 더 두려움이 많아서 그럴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선생님의 좋은 면은 이야기 안 하고 안 좋은 면만 이야기할 수도 있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기 위해서, 수업을 하기 위해서, 예의를 가르치기 위해서 그랬을 것이다. 이유 없이 화를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모가 화를 낼 때도 아이가 말을 안 듣고 말썽을 피우고 등등 이유가 많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도 마음이 짠하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작다. 어른들도 자기보다 큰 것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갖는다. 아이들이 부모님 말을 안 들을 때도 선생님 말은 듣는다. 그래서 나도 선생이라고 가끔 엄마 부탁을 전하기도 한다.

그런 존재인데, 화를 내면 얼마나 가슴이 쫄아들까.

어른들이 무심히 내는 화도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게 아이들에게 다가온다. 그런데 선생님이라니! 아이들이 얼마나 더 무섭겠는가.



친절한 어른이 되고 싶다


그날, 친절이란 단어를 오랫동안 곱씹었다. 사전에서는 친절을 ‘대하는 태도가 매우 정답고 고분고분함’이라고 되어 있다. 나는 고분고분하지는 않았으므로 사전적 의미처럼은 하지 못했다.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건 거의 화를 내지 않는다는 거였다.


내가 왜 화를 내지 않는지 생각해 보았다. 원래 화를 잘 못내기도 하지만, 상대방이 행동할 때 '그럴 수 있겠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특히 아이들에 대해서는 '아이는 움직이는 게 당연해, 놀고 싶은 게 당연해, 먹고싶은 게 당연해, 아이들은 솔직한 게 당연해.' 이렇게 생각하는 편이다. 당연한 걸 하니 화가 잘 안 난다.

내가 상대방에게 화를 낼 때 보면 '그것도 몰라?' 라던가 '나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학교 선생님들은 공부 잘하는 상위 그룹이 거의 된다. 그래서 공부 못하는 아이들을 더 이해 못하는 선생님이 많아졌다고 한다. 본인들은 공부를 잘한 사람들이고 모범적인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모범적인 사람은 아이들이 모범적인 게 당연할 거라 생각할 것이다. 그런 아이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더 많을 것 같다. 이해할 수 없으면 화가 더 날 수 있다.

교대 교수로 계신 분께 들은 이야기 중에 대학생들에게(사회과) ‘역사에 대해 더 넓게 공부해 보자.’ 했더니 ‘시험에 안 나오는데 뭐하러 하냐.’는 분위기였다며 씁쓸하셨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참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경험과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은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 무척 중요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분노는 상대방보다 자기 자신에서 비롯되는 게 많은 것 같다. 참지 못해서 화를 낸다. 상대방을 잘 알지 못해서 화가 난다. 자존심을 상하게 해서 화가 난다.

말을 듣게 하기 위해서 화를 냈다는 것은 사실 핑계다. 말보다는 감정이 먼저 전달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화를 내면 그다음 말은 잘 들어오지 않는다. 더 이상 이성적으로 판단을 할 수가 없어진다. 그러니 아이는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화를 내는 순간, 말이 마음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집에서 부모가 소리를 지르면 아이도 같이 소리 지른다. 어린 아이들은 선생님 앞에서는 같이 소리를 지를 수가 없다. 그나마 아이들이 선생님이 무섭다고 했을 때 공감하고 위로해주는 부모님이 계시면 아이는 힘을 내서 학교를 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화를 절대 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화를 참다가 불화산이 되면 더 위험하다. 적절하게 열기를 빼주는 훈련을 해야 한다.

화를 잘 못 내는 나도 문제가 있다. 내가 화를 잘 못 내는 걸 알고 함부로 하는 팀이 하나 있었다. 정말 너무너무 말을 안 들어서 화 내는 연습을 하고 가서 어렵게 화를 낸 적이 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어, 저 선생도 화를 낼 줄 아네, 하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조금 더 말을 잘 들었다.

그 이후 팀에 따라서는 ‘나도 화 낼 수 있지만 안 내는 거야.’라는 분위기를 풍긴다. 분노할 때 분노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는 어른은 권위가 없어진다.

아이의 부모가 되거나 아이의 선생이 되거나 아님, 어떤 어른이 되더라도 그 자리에 서기 전 자기 자신 화의 실체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자기 자신의 화의 실체만 알아도 화는 많이 줄어든다. 화를 낼 줄 알지만 잘 다스리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그날, 화를 잘못 내는 성격이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잘해도 심하게 화를 내면 아이들은 무서울 것이다. 아이들에게 잠깐동안이라도 친절한 선생이어서, 스스로 내 자신이 대견했다.


아이들이 나에게 우리 엄마, 아빠는 친절해요, 우리 선생님은 친절해요, 동네 어르신들이 친절하게 대해줬어요, 이런 말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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