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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사와동화 Mar 24. 2022

움직이는 삼식이는 봐줄 수 있다

남편들에게 퇴직 전부터 취미를 갖게 하자

나는 집안일을 아주 잘하지는 않는다. 오랫동안 직장 생활을 했고 결혼도 늦게 한 이유도 있겠지만, 가치 부여의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직장을 그만두고 결혼하기 전에는 작업실을 얻었다.

결혼을 하고는 주로 집에서 일을 했다. 신랑이 출근하고서는 오롯이 혼자여서 좋았다. 방 하나도 책이 많은 공부방으로 꾸며 작업실처럼 썼다. 집에서도 집안 일보다는 일에 더 신경을 쓴 것 같다.


그러다 신랑이 직장을 처음 그만두게 되었을 때, 한 집에 하루종일 같이 있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신랑을 도서관으로 보낼 수는 없으니, 도서관이 좋은 내가 출퇴근하거나 아님, 작업실을 얻어야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같이 집에 있어 보니, 첫날 하루만 조금 불편하고 이후부터는 생각보다 좋았다.

우리 둘 다 사소한 참견을 안 하는 편이고 서로에게 너그러운 편이라 부딪힐 일이 별로 없고 심리적인 거리가 적당하게 유지되었다. 나중에는 없으면 더 불편하게 느껴졌다. 

다행히 신랑이 삼식이는 삼식이되 움직이는 삼식이라서 그런가 보았다.(주부1은 완전히 직장을 그만둔 뒤에 새롭게 부여했다.) 


처음 직장을 그만두었을 때, 다음 직장을 구할 때까지 조금 여유를 가지기로 했다. 언젠가는 직장을 그만둘 테니, 이제부터라도 퇴직 후에 살 준비를 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책읽고 쓰는 것이 취미이자 일이니 시간을 쓰는 데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지만 신랑은 퇴근하고 나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액션 영화 동영상을 보거나, 무협지를 보는 게 내가 본 모습이었다. 책은 가끔 보았지만, 즐기는 수준은 아니었다. 퇴직하고 텔레비전 이나 동영상을 보고 있는 꼴은 못 보겠다 싶었다. 완전 퇴직을 하게 되면 마음의 여유가 없어 무언가를 배우는 게 더 어려울 수 있으니, 다음 직장을 구하기 전 취미를 익히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저것 같이 찾아보다 겁이 많은 신랑은 안전한 그림 쪽을 선택했다. 가까운 구민센터에서 색연필로 그리기부터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잘했다. 유명 화가들의 그림을 마구 따라 그렸다. 새로운 거에 도전하길 꺼리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어찌 그렸을까 싶게, 대가들의 그림을 제법 근사하게 그렸다. 초등학교 때 크리스마스 카드를 그려줬다고 해서, 삼촌이 영화 간판을 그리시던 분이라 해서, 혹시 재능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해서 시작했는데, 맞아 떨어지다니 기뻤다. 엄마들이 왜 애들 자랑을 하는지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열정적 자세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잘 선택했다 싶었다. 시간을 보내는 취미 정도로 생각했는데, 재능까지 있다니! 더군다나 신랑의 최대 장점은 하기 시작하면 꾸준히 하는 것이다!!


잘 하니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늦게 시작해도 할만한 그림은 무얼까 생각하다 '민화'를 골랐다. 창의력이 떨어져도 성실함만으로 어느 정도는 수준에 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구민센터에서 민화를 배우면서 나중에는 홍대 평생교육원에도 다녔다.(경제적인 것 때문에 안 가려 해서 2년 정도 설득하며 기다렸다.) 그렇게 시작한 민화를 몇 년째 그리고 있다. 지금은 선물로 주어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

신랑이 그림을 열심히 그리니, 또 욕심이 생긴다. 이걸로 제2의 직업이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신랑도 지금은 주부1의 역할을 하면서 기회를 보는 중이다.

신랑이 취미를 가지면서 덤으로 생긴 좋은 점은 우아하게 이야기할 게 무지 많아졌다는 거다.


신랑이 스스로 취미를 찾으면 지원해주고

스스로 못 찾으면 좀 도와주어 취미를 갖게 하자.(지혜로운 설득과 기다림이 필수일 수도 있다.ㅎ)


취미를 가진 움직이는 삼식이라면 집에 있어도 좋더라는 이야기.(그대신 돈은 내가 벌지 뭐, 없으면 없는 대로 살지 뭐, 이런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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