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동안 같이 있었던 노란 청소기 안녕
나는(이때는 그냥 주부+일하는 사람이었다.) 청소기의 덜덜덜 하는 소리가 조금, 아주 조금 무섭다. 그래서 아예 청소기를 사지 않으려 했다.
주부1(그때는 아직 주부가 아니었지만)이 자기가 청소를 할 테니 청소기를 사자 했다. 사기로 결정하고 중요하게 생각한 건 세 가지였다. 모터가 힘이 있을 것, 쓰레기봉지를 갈지 않을 것, 예쁠 것. 고르다가 마음에 쏙 드는 노란 청소기를 발견했다. 집으로 데려왔다.
힘도 좋고 쓰레기봉지도 안 갈고(먼지통을 비우고 가끔 닦아주어야 했지만), 청소를 하고 난 뒤에는 노란 청소기가 씩씩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기분이 좋았다. 나는 저녀석으로 청소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라보기만 해서 더 좋았는지도 모른다.ㅎ
그러던 것이 8년쯤 지나자 서서히 망가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호스를 통째로 갈았다. 다음번엔 청소기 내부에 문제가 있어 수리를 했다.
"앞으로 비용을 생각하면 다시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주부1이 말했다. (이때도 정식으로 주부1이 되기 전이다.)
주부0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녀석은 우리집 한곳에서 씩씩하게 늘 자리를 지키던 녀석이니까.
"그래도 고쳐서 좀더 써보자. 지구를 위해서도 좋고."
그런데 고쳐 오고 또 작동이 되지 않았다. 수리업체에 갔더니 호스가 또 망가졌다는 것이다. 호스를 간 지 1년 2개월 밖에 안 됐는데, 호스는 거의 새 거 같은데...
앞으로의 수리 비용을 생각하면 조금 보태면 새 청소기를 살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단호하게 호스를 갈았다. 아직은 보낼 때가 아니었다. 다음에 망가지면 그때는 보내주자 했다.
근데 또 망가졌다. 호스를 간 지 6개월 정도 지나서였다. 그래, 이번에는 보내주자. 다음에 또 망가질 거다, 점점 고장나는 주기가 짧아지고 있었다. 수리하러 가지 않았다.
주부2(엄마는 이 청소기를 본 지 얼마 안 될뿐더러 청소기를 사용해 본 적이 없다.)는 이 청소기에 애정이 없었다. 더 힘이 좋은 청소기를 사자고 했다. 그리고 추진했다. 기계를 잘 고른다고 생각하는 작은 아드님께 부탁해서, 청소기를 주문했다. LG 걸로.
그럼에도 나는 노란 청소기 버리는 것을 계속 미루고 한쪽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LG 청소기가 한달 반이 넘었는데도 배송이 되지 않았다. 코로나 때문에 부품이 안 들어와서 생산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 마지막이다. 저녀석을 살려서 보란듯이 써보자. 청소기를 들고 수리업체를 찾아갔다. 기다리는데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살아났어. 이제 집으로 같이 가는 거야!'
잠시 후, 소리가 더이상 나지 않고 수리기사분이 우리를 불렀다.
"아무래도 회로가 고장난 것 같아요. 고치기도 힘들고 여기서 잠깐 된다 해도 다시 안될 거예요. 이 정도면 새로 사는 게 낫겠어요. 청소기를 여기 놔두고 가면 한꺼번에 버릴 때 버려줄게요."
어차피 집에 가져오면 버리는 비용을 지불하고 버려야 됐다. 그래도 가져오고 싶었다. 내 옆에 10년이나 넘게 있어 주었는데..., 버려도 가져가서 집에서 버려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그런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어차피 버려질 건데. 나는 조금 망설이다 거기에 두고 오기로 했다. 발길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석이 고개를 수그리고 쭈그러져서는 슬퍼하고 있었다.
'버리고 가서 미안해. 그동안, 고마웠어.'
그랬더니 청소기가 조금 의젓해지면서 잘 가라고 하는 게 아닌가? 내 마음 편하자고 청소기에 감정을 만들어내는 건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노란 청소기를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아프다.
주부0은, 노란 청소기를 사랑했던 건가...
아무래도 자주 바라봐서 그런 것 같았다. 사랑의 기본 원칙이 청소기에도 적용된 거다.
양말을 빨아들여 당황하게 한 새 청소기, 너는 아예 헤어지기 힘들까 봐 주부0이 안 보이는 곳에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