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삶을 위한 규칙 정하기와 적절한 심리적 거리 유지 1
같이 살 때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적절한 거리는 아주 중요하다.(심리적인 거리뿐만 아니라 물리적 거리도 중요하다.)
적절한 거리를 지키려면 서로간의 합의가 필요하다.
결혼하고 친정엄마와 떨어져 살았는데, 엄마가 가까이 왔으면 했다.
이사 와서 엄마 옆에서 살다가 엄마 연세가 많아지고 식사 해결이 어려우실 것 같아 합치기로 했다.
"아주 잘할 자신은 없어요. 저희 밥 먹는데, 숟가락 하나 얹는다고 생각할게요."
아주 잘하겠다고 마음 먹지 않았고,
엄마는 또래 노인 중에서 훌륭하기가 상위 10% 안에 드시는 것 같다. (자기 관리도 열심히 하시고 건강도 스스로 챙기시고 경제적인 것도 다 해결하신다. 그리고 민주당을 찍으신다.)
그래도 같이 사는 게 쉬운 것은 아니다.
나와 엄마는 오래 전부터 같이 살았던 적이 많아서 어느 정도는 맞춰져 있는데,
엄마와 신랑이 부딪힐 가능성이 높았다.
적절한 거리 유지를 위해 각자의 영역을 설정하고 주부 셋 체제를 구성했다.
처음 한 집에서 살기 시작했을 때 엄마에게 책임지는 간단한 일을 드리고 싶었다. 엄마가 밥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시니 밥을 담당하시라 했다. 한두 번 하시더니, 젊은 것들이 밥을 나에게 하라고 하냐며 화를 내셨다. 그래서 밥은 주부1이 하기로 했다.
주부1은 “이건 주부1의 일이 아니라 주부0이 해야 하는 일이지 않냐?”고 따지기도 하면서 조율해 갔고, 주부2는 무엇을 해야 하냐고 묻지 않고, 화를 내거나 입을 꾹 다무는 걸로 의사 표시를 했다. 그럼에도 자신의 역할을 나름 잘 수행하셨다.
엄마는 자기 뜻대로 하려는 생각이 많은 편이지만 무엇을 원하는지 말하는 걸 힘들어 하는 분이고
신랑은 알아서 맞추는 건 힘든 사람이다.
그 사이에서 규칙을 만들고 계속 중재를 했다.
주부1은 냄새를 잘 맡는다. 그러나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는다.
주부2는 냄새를 잘 못 맡는다. 알뜰하다. 알뜰한 것 중의 하나는 쓰레기봉투다. 꽉꽉 채워서 버려야 한다. 그것도 터지도록 꽉꽉 채워야 한다.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으면 안된다. 쓰레기봉투를 쓰레기통에 끼웠다 빼면 밑부분에 비는 부분이 나오는데, 그걸 채우고자 까만봉지를 쓰레기통에 끼웠다 빼서 다시 꾹꾹 눌러 쓰레기봉투에 담는다. 쓰레기는 삐져 나오고, 그 쓰레기를 다시 만져야 한다. 그것도 하신다. 가끔 가다 정말 절약 때문일까? 자기 영역 지키기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든다.
처음에는 냄새가 싫은 주부1이 쓰레기봉투가 꽉 차지 않았는데도 버렸다.
주부2가 화가 나셨다. 졸지에 주부1은 경제관념도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럼 앞으로 쓰레기봉투는 엄마가 마무리하도록 하기로 해요. 베란다에 내놓고 문만 닫으면 냄새가 덜 하니 당신이 좀 참고요. 앞으로 쓰레기봉투는 엄마가 묶어놓아야 버리는 걸로."
둘이 조금은 불만인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날, 주부2가 쓰레기봉투가 꽉 차서 버리려고 한쪽을 묶다가, 더 꽉꽉 채우려고 쓰레기를 가지러 딴 곳으로 간 사이, 언제 버릴까 지켜보고 있던 주부1이 냉큼 쓰레기봉투를 버리고 왔다.
"아니, 누가 꽉 채우지도 않은 쓰레기봉투를 버렸어!"
주부0이 잠깐 그 자리를 비운 사이, 일이 벌어졌다.
쓰레기봉투를 버리고 와서 놀란 주부1.
"약속대로 쓰레기봉투가 묶여 있어서 버리고 왔는데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졸지에 주부1은 낭비가 심한 사람이 되어 있었고
쓰레기봉투가 묶여 있어서 버렸는데도 뭐라 하시니, 주부2는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럴 때, 주부0이 적절히 등장해야 한다.
"묶어서 버린 것 맞는데요."
"아니, 그래도 내가 잠깐 자리를 비웠다고, 확인도 안 하고 버려!"
주부0과 주부1이 보기엔 충분히 버릴만 했다. 그러나 주부2는 수긍하지 않으셨다. 쓰레기봉투는 두 번 묶게 되어 있다. 그러니 주부2는 다 묶은 것이 아니고 더 채우고 한번 더 묶으려 한 것이다.
잘못한 사람은 없었다. 규칙이 허술했을 뿐이다. 더 정교한 규칙이 필요했다.
"다음에는 한쪽만 묶었을 때는 버리면 안 되고, 양쪽을 다 묶어야 버리는 걸로 해요."
주부0의 제안에 둘다 조금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받아들였다.
그 날 이후, 쓰레기봉투는 두 번 묶여서 놓이기 전에는 절대 집 밖을 나갈 수 없었다.
규정과 법을 왜 촘촘하게 만들어야 하는지 새삼 더 깨달았다.
이후로, 쓰레기봉투에 대해서는 평온해졌다. 주부1은 냄새를 조금 참고, 주부2가 꾹꾹 눌러 양쪽을 묶어 내놓으면 갖다버린다. 냄새 나는 쓰레기가 베란다에 있지만, 어쩌랴. 그게 주부2의 영역이라면, 지켜드릴 수밖에...
"엄마, 너무 꽉꽉 채우면 쓰레기 치우시는 분이 힘들어요. 터져버리면 일이 얼마나 많아지겠어요."

이런 표정으로 했다고 생각하는데...

설마, 이런 표정은 아니었겠지...
요즘은 까만봉지도 안 쓰시고 아주 조금 덜 채워서 두번을 묶어 내놓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