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님과 별님이 있잖아요?

불에서 자라난 상상력_암사동 선사 유적지

by 역사와동화

역사에서 동화로 넘어가는 순간


암사동 선사 유적지에서 인류의 기원에 대해 배울 때였다. 불을 사용하기 시작한 호모 에렉투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불을 사용하기 전과 불을 사용하고 난 뒤에 무엇이 변했는지 이야기했다.

“불을 사용하면서 어두운 밤에 불을 밝힐 수 있게 되었단다.”

갑자기 소윤이가 손을 살짝 들었다.

“궁금한 것이 있구나.”

“아니에요. 불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해님이 있잖아요. 그런데 불이 왜 필요해요?”

“아하, 해님은 밤에는 없잖아.”

소윤이는 다시 또 손을 슬쩍 들었다.

“밤에는 달님이 있잖아요.”

오호, 역사에서 동화로 넘어갔다. 그렇게 말하는 소윤이는 너무 진지했고, 나는 그 표정이 너무 좋았다.

“달님도 보름달일 때는 환하지만 점점 작아지잖아. 그리고 구름에 가려서 빛을 못 내기도 하잖아.”

아하, 소윤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윤이의 상상은 거기서 끝날 줄 알았다. 근데 소윤이는 또 손을 들었다. 질문을 할 때는 손을 들고 하라고 학교에서 배웠나 보다.

“그럼 별님이 있잖아요.”

오호, 별님까지 얘기할 줄은 몰랐다. 이미 아이들은 소윤의 그런 면을 알고 있는 듯, 신기해하지는 않았다. 아직도 애기처럼 그런 이야기를 하냐는 눈빛이었다. 조금은 유아 같은 순수함이랄까.

“아, 선생님도 별님은 생각 못했네. 근데 별님은 빛이 약하잖아. 어둠을 밝혀주기에는 너무 힘들지 않을까?”

그제야 소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에 답을 들었고 이해가 됐다는 표정이었다. 나도 소윤이 표정을 보고 뿌듯했다.



역사는 상상력 놀이다

소윤이 같은 아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역사는 사실 행간에 숨은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처음 시대사를 시작할 때면 선사 시대부터 시작한다. 보통 암사동 선사유적지에서 공부한다. 아무래도 선사 유적지인 곳이니만큼 움집도 재현해 놓았고 숲과 같이 있어서 답답한 느낌이 없어서 좋다. 전시관에서 수업을 하고 나머지 시간들은 야외 의자에 앉아서 많이 한다.

“얘들아, 이곳은 원시인이 예전에 살았던 곳이야. 혹시 다니다 보면 만날 수 있을 거야. 지금부터 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올래. 네가 먼저 질문 3개를 하고 답을 듣는 거야. 원시인도 궁금한 게 있을 거야. 3개의 질문을 듣고 답을 해줘. 서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잘 기억하고 와서 기록해야 해.”

그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바로 움직인다. 처음 이 수업을 했을 때, 나도 긴장했다. 일종의 상상력 놀이인데 아이들이 어떻게 할까?

“에이, 여기 원시인이 어디 있다고.”

아이들은 투덜거리면서도 저쪽 길로 달려가고 이쪽 숲으로 숨어 들어갔다. 그리고 신기하게 적절한 시간이 되면 돌아와 공책에 적었다. 아이들은 상상 속에서 하는 거란 걸 굳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에게 상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걸 설명해주어야 한다.

요즘은 아이들이 대놓고 말한다.

“여기 어디 원시인이 있다고 그래요.”

그리고 가지 않고 휘둘러본다. 암사동 선사 유적지에는 모형으로 원시인을 만들어 놓았다. 일종의 포토존이다.























“저기 저 인형이랑 가서 말하고 오라는 거예요?”

“그 원시인 인형이 말을 한다 생각하고 이야기를 하고 와도 좋아. 하지만 그것보다는 저어기 걸어다니는 원시인이랑 이야기하는 게 더 재미있지 않을까?”

다시 묻는다.

“아, 우리 보고 만났다 치고 생각해 오라는 거예요?”

김이 조금 빠진다. 그건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되는 암묵적인 것인데.

더 창의력을 발휘해야 하고 독특한 생각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아이들은 점점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을 어려워할까? 상상은 아이들의 전유물이 아니었나? 아님, 아이들이 애늙은이가 되어가는 건가? 조금 쓸쓸하다. 상상의 즐거움을 일찌감치 아이들에게서 뺏어간 것은 무엇인가?

그래도 이렇게 한번 하고 난 뒤에는

“자, 이제 원시인이 썼던 유물을 찾아와."

하면 바로 움직인다. 땅을 살피고 숲을 뒤지며 돌멩이를 집어오고 지푸라기를 들고온다. 나무 쪼가리도, 솔방울도 한두 개씩 가져왔다.

"그 유물의 주인에 대해서 이야기를 쓰는 거야. 어디에 썼는지, 왜 썼는지,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여자인지, 남자인지, 몇 살인지,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성격은 어떤지 등등.”

고개를 몇 번 갸우뚱거리거나, 곰곰 생각하거나, 낄낄거리거나 하면서 공책에 적기 시작한다. 바로 상상의 세계로 들어갔다. 짧은 시간인데도 이야기를 잘도 만들어 낸다.

아직 상상하는 즐거움을 잊어버리지 않았구나,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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