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그동안 아이들과 역사 수업한 얘기를 써보고 싶었다. 그러다가 코로나 사태로 인해 주말이면 만나던 아이들을 못 보게 되었다. 점점 더 아이들이 생각이 났다. 그동안 참 많은 아이들을 만났었구나, 나는 그런 생각들을 했었구나. 그래서 한번 써볼까, 하고 시작하게 되었다. 쓰다 보니 하고싶은 이야기가 꽤 있었다. 내 안에 그동안 차곡차곡 쌓여 있었나 보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나의 어린 시절이 채워지고 치유받는 것 같았다. 나와 비슷한 아이도 있고 나와 전혀 다른 아이도 있지만 아이는 다 아이였다. 그리고 그 아이들 속에 내 자신이 조금씩 다 들어 있었다. 그런 다양한 아이들이 모인 팀은 또 팀마다 달랐다. 알고는 있었지만 어떻게 이렇게 아이들이 다를 수 있는지 새삼 놀라고 감탄하곤 했다.
모든 부모들은 자녀를 아주 잘 키우고 싶어 한다. 그리고 실제로 잘 키우시는 분들이 많다. 내 수업에 오는 아이들만 해도 내 성향을 알고 나를 선택하는 부모님들이라 정말 큰 무리없이 수업을 해나갔다.
그냥 나는 잘 자란 아이들에게 역사에 관한 지식을 가르쳐주는 행운아였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다 달랐고 다른 만큼 다 다른 기억과 상처를 갖고 있었다. 아무리 좋은 부모라도 아이는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한때는 부모가 세상의 전부인 때가 있으니까. 그리고 부모 외에도 상처를 주는 어른들은 많이 있으니까. 어른만이 아니라 형제자매와 친구와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하니까.
어른이나 아이나 인간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 아이나 어른을 떠나 모든 인간이 갖고 있는 기본 욕구이다. 아주 기본이지만, 실제로는 지켜지기 힘든.
아이들에겐 더 필요하다. 어린 싹은 더 조심하고 섬세하게 키워야 하는 것과 같다. 그만큼 더 적절한 물과 햇빛을, 바람과 영양분을 필요로 한다. 아직 스스로의 힘으로 그런 것들을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어린이들은 더 사랑을 받아야 하고 더 인정을 받아야 한다. 온전한 사랑은 자기 자신으로 온전히 인정받는 것이다.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공부를 하다 보면, 어린 시절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아서 추측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선조들 중에서도 행복한 사람들은 어린 시절이 행복한 사람이 많았다. 타고난 기질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어쩌면 이 세상에 사람이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된 이 사실은 역사적 진실이 아닐까, 어린 시절이 행복해야 어려움을 극복할 힘도 생기고 더 행복하게 살 거라는 너무 평범한 진리를 역사에서부터 끌어오는 건 너무 과장된 것일까?
이런 태도는 좀더 상대방을 너그럽게 보게 한다. 아주 옛날부터 원래 인간은 그랬어. 네 잘못이 아니야.
내가 아이들과 수업을 하면서 언제나 이런 태도를 지니진 못했겠지만, 어린이가 그런 건 당연한 거야, 선조도 그랬어, 그런 마음은 많이 도움이 되었다.
* 앞으로 글에 나오는 아이들 이름은 모두 실제 이름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