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아본 아이들_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에서
인천에 가면 수도국산달동네 박물관이 있다. 인천의 한 달동네를 개발하면서 실제 살았던 집과 사람들을 모델로 만들었다. 그 시대의 마을이 박물관 안에 들어간 모양새로 들어가면 달동네를 골목골목 구경하는 기분이다. 이곳의 시간은 저녁 어스름이 지기 시작하는 데서 시작한다. 입구에는 뻥튀기 장수와 구멍가게와 이발소와 솜틀집이 있다. 계단을 몇 칸 올라가면 마을이 나온다. 계단은 달동네를 올라가는 상징 같은 거다. 어둑어둑한 시간이 지나고 밤이 되면 조금더 어두워지면서 하늘의 별도 반짝거리고 지붕 위의 밤고양이도 울고 개도 컹컹 짖는다. 통금을 알리는 딱딱이 소리도 난다. 이렇게 초저녁과 한밤중이 반복된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사람이 아주 많이 오지는 않는다. 사람이 거의 없을 때도 있다. 그리고 박물관의 특징 상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방에도 들어가고 옛날 놀이인 주사위놀이도 하면서 관람한다.
“할머니, 할아버지 어릴 때 이러고 놀았어.”
손자손녀 손을 잡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이런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우와, 엄마 아빠 때 썼던 물건이 여기도 있네.”
하며 엄마, 아빠가 말하면 아이들이 신기해서 들여다 보기도 하는 그런 곳이다. 다방에 가서 앉아도 되고 그 안에서 파는 간식을 사서 먹을 수도 있는, 그만큼 관람이 자유로운 곳이다.
사람이 거의 없을 때 여기서 숨바꼭질을 한 적이 있다.
“박물관은 원래 노는 곳이 아니야.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본 예의도 갖춰야 하는 곳이고. 그러니까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돼. 지금은 사람이 없으니 살짝만 놀자. 근데 규칙이 있어.”
역시 아이들 눈이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했다.
“뛰지 않기, 소리 내지 않기. 여기 선생님이 정한 구역 안에서만 움직이기. 규칙을 꼭 지켜야 해. 규칙을 어기면 놀이는 끝이다.”
박물관 안은 골목이 있고 집이 있고 담이 있고 방이 있고 화장실도 있고 전봇대도 있고 해서 숨을 데가 꽤 많다. 방은 들어갈 수 있는 곳이어서 신발을 벗어들고 문 뒤에 숨어서 창문으로 술래가 지나가는 것을 보는 재미도 있다, 들키지만 않으면. 화장실은 판자로 되어 있고 앉아서 똥을 누는 곳인데, 어둑하고 빨간 등이 켜 있다. 아이가 거기 숨고 싶은데, 무섭다고 해서 같이 들어갔다. 전체적으로 박물관 안이 좀 어두워서 으스스한 맛도 있다.
아이들은 규칙을 잘 지켰다. 놀면서 조금 낄낄거리긴 했지만 사람이 오면 길도 비켜주고 최대한 노는 티를 안 내려고 조용하게 놀았다.
무섭다면서 무서운 곳에만 숨는 아이, 술래 눈치를 보면서 요리조리 피하는 아이, 술래가 찾아도 같은 곳에만 숨는 아이, 술래가 찾을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는 아이, 한 번만 더 숨게 해달라며 사정하는 아이, 멀리 안 숨고 술래 근처에 있다가 술래 몰래 술래벽을 치는 아이, 어디에 숨을지 계속 묻는 아이, 숨은 아이들 앞에 가서 계속 얼쩡거리는 아이.
우와, 성격 다 나온다. 흐흐.
수업 시간에는 역사와 연관된 글쓰기, 그리기, 만들기도 같이 한다. 역사 공부만 하는 것보다 아이들을 더 잘 알게 된다. 아이들을 알고 친해지는 데는 놀이만한 것이 없다. 같이 놀아보면 더 많이 알 수 있다. 놀이에서는 아이들 본래 모습이 더 잘 보인다. 모든 놀이에는 아이들의 특성이 더 잘 드러난다. 그래서 놀다 보면 아이들의 특성도 조금 빨리 알게 된다. 같은 아이가 하나도 없다.
놀기 전에 먼저 무엇을 할지 정해야 한다. 무엇을 하고 놀지 정하는 건 아이들에게 맡긴다. 그리고 나도 끼어서 꼭 같이 논다.
아이들은 주어진 짧은 시간 안에서 최대한 잘 놀아야 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선정 작업에 고심을 한다.
엄청 고민하지만 주로 얼음땡, 지옥탈출, 경찰과 도둑, 바나나, 술래잡기, 숨박꼭질 같은 것들을 한다. 장소의 제한도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
창의적으로 노는 아이들도 있다. 그렇게 놀아본 아이들이다. 잘 놀지 못하고 서로 조율이 안 되는 아이들이 있다. 놀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기도 먹어본 아이가 잘 먹는다고 노는 것도 놀아본 아이가 잘 논다. 그래서 잘 놀았던 아이들이 모인 팀은 아주 흡족하고 알뜰하게 놀이 시간을 보낸다. 잘 논 아이들은 수업의 집중도도 높다.
근데 이제는 놀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박물관에서 가끔 아이들이 편한 자세로 수업할 때도 있는데 이것도 힘들어졌다. 감시의 눈길이 더 촘촘해졌다. 더군다나 놀 수 있는 공간들도 줄어들고 있다. 공부를 1분이라도 더 했으면 하는 부모님도 늘어났다.
그리고 점점 더 아이들이 바빠진다. 노는 게 미진하면 수업 끝나고 놀기도 했었는데, 나도 다음 수업이 있을 때는 힘들고 아이들도 가기 바쁘다. 이러나저러나 아이들 놀이 시간은 수업 시간이나 보통 때나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그럼에도 어떡하든 수업 시간에 놀이 시간은 줄이지 않을 생각이다. 잘 노는 아이가 지금은 아니라도 나중에 공부를 더 잘할 확률이 높다.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한발 양보해서 놀면 공부를 못할 수도 있다고 치자. 그래도 행복할 확률은 훨씬 높다. 내 수업에 몇 분 더 논다고 그 확률이 얼마나 높아질지 알 수는 없지만, 일단 나는 같이 뛰어놀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