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 박물관은 즐거운 곳이야

훗날의 즐거운 취미 생활을 위해_국립중앙박물관에서

by 역사와동화

노는 게 자랑


한번은 수업에 처음 참가한 아이에게 먼저 수업한 애가 당당하게 대놓고 말했다.

“노는 시간도 있어.”

그 말에 처음 온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정말이냐고 나에게 묻는다.

‘얘들아, 너희 수업하러 왔잖아. 굳이 노는 것만 말해야겠니?’

부모님이 계셔서 조금 눈치가 보였다. 속으로 생각하고 상냥하게 대답한다.

“놀기만 하지는 않아. 공부하고 조금 놀 거야.”

“아싸, 논다.”

새로 온 친구는 벌써 놀 목록을 친구와 나누고 있다.

그럴 때면 뿌듯함과 민망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그토록 많은 걸 가르쳤건만 자랑할 게 노는 거라니, 하하 얘들아. 꼭 공부한 것은 아니라도 원시인이랑 만나서 대화도 나누고 신화도 만들어 보고 박물관에 내 유물도 지정해 놓고 그런 거 자랑하면 안 될까? 꼭 공부 내용 말고 다른 작업한 거라도 이야기해주면 안 될까. 꼭 찝어 노는 것만 새로 온 친구에게 알려줄 필요는 없잖아.

사실 아이들이 노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 정도로 바쁘고, 무조건 노는 게 좋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근데 생각보다 아이들이 부모님 앞인데도 수업 시간에 노는 것에 대해 당당하게 말한다. 추측해보건대 수업 시간에 포함된 공식 놀이 시간이라서 그런 것 같다. 공인된 시간, 노는 것을 자랑스러워해도 되는 시간.

처음 박물관 수업을 할 때 수업 시간에 노는 반은 거의 없었다. 우리 반이 노는 것을 부럽게 쳐다보던 아이들의 표정이 생각난다. 아이들이 노는 것을 자랑스럽게 얘기하던 우리 반 아이들 표정도 같이.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는 다른 팀들도 수업 시간에 놀이를 하였다.



기억해, 박물관은 즐거운 곳이야


박물관 수업을 하다 보면 우리 반이 제일 시끄러운 것 같다. 물론 실내에서는 기본을 지키려고 애를 쓰지만 결코 조용하지는 않다. 박물관 안에서 계속 조용히 시키기는 어려워서 집중력이 떨어지는 시간이 되면 조금 자유로워도 좋을 장소를 항상 유심히 찾는 편이다.

“얘들아, 집중하자. 여기까지만 하고 같이 놀도록 하자.”

아니면

“너희 집중하기 힘들면 놀고 나서 수업할까?” 하기도 한다.

놀고 나면 집중력도 확 올라 갈 때가 많다. 어른도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박물관을 2시간 이상 돌아볼 수 있는 어른도 흔하진 않을 거다. 아이들은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더 짧다. 하물며 반응도 하지 않는 유물들을 보며 하는 수업이라니. 아이들은 유물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아이들 하나하나도 다 이야기 보따리다. 자기 자신이 이야기 보따리인데, 집중하는 게 쉬울까.

수업 시작하고 1시간 이내면 집중력이 확 떨어진다. 팀에 따라서는 더 짧은 경우도 많다. 정해진 시간만큼만 집중할 수 있어도 성공이다.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조금 쉬거나 놀거나 간식을 먹는다. 그러면 다시 집중할 힘이 생긴다. 근데 이 집중하는 시간이란 게 아이마다 다르다. 그 다른 아이들이 모여 팀을 만들었으니 또 팀마다 다를 수밖에.

어른도 남이 시키는 것은 하기 싫다. 아이도 그렇다. 스스로 선택해야 조금 더 집중도와 호감이 올라간다. 아이들이 수업에 더 집중하게 하기 위해 아이들과 노는 시간을 가지고 협상을 할 때도 있다. 여기서도 아이들마다 팀마다 다른 결과가 나온다. 팀에 따라서 노는 시간도, 놀이의 방법도 다 달라진다.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에서 1시간 정도 수업을 하고 아이들이 편히 쉬면서 놀 곳을 찾았다.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 건물 밖으로 나오면 뒤쪽에 앉아서 쉴 수 있게 만든 장소가 있다. 자리도 넓어서 우리 말고도 수업하러 오는 팀들이 많다. 가 보니 다른 팀들도 앉아서 수업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을 의자에 앉히고 엉덩이를 들썩이는 애들을 다독이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다른 선생님 소리가 들렸다.

“너희들 때문에 힘들어 죽겠어. 좀 가만히 있을 수 없니!”

그 소리에 나는 의아해하며 그 반을 넘겨다 보았다. 우리 반보다 훨씬 조용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힘들면 저럴까, 잠시 생각했지만...한편에는 저 선생님은 아이들이 원래 가만히 있지 못한다는 걸 잊었구나 생각했다. 아이들은 놀고 싶어하고 몸을 쓰는 존재이다.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면 이 정도도 감사한걸, 그런 생각이 든다.

물론 아이들에게 집중하는 것을 가르쳐야 하고 가만히 있는 것도 익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배울 수 있고 머리 속에 들어간다. 그러나 몸이 가만히 있는다고 이야기를 더 잘 듣는 것도 아니다. 몸은 가만히 있어도 머리 속은 다른 곳을 가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움직이느라 들었을까 싶은데 다 듣고 대답하는 경우도 있다.

처음에는 아이들과 4시간을 수업했다. 과자도 먹고 노는 시간이 반 이상이었다. 상황이 변하니 수업 시간이 3시간으로 줄었고 다시 2시간 반으로 줄었다. 그래도 내 수업 안에서 최소한 30분 이상은 놀게 하려고 한다.

나는 나 나름대로 큰 그림을 그린다. 우리가 시간을 좀더 고급지게 보내기에 박물관만큼 좋은 장소는 없다. 그 유물 하나하나가 품고 있는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물관이 즐거운 곳,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이란 기억을 심어주고 싶다. 즐겁게 찾아와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 재미있게 놀기도 하고, 맛있는 간식도 먹고,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만들기도 하면 조금 더 그런 기분이 들지 않을까.

지금은 아주 조금만 알아도 좋으니 즐거웠던 곳이란 기억을 가지고 평생 박물관을 찾았으면 좋겠다. 훗날 너희들의 즐거운 취미 생활에 기여를 하고 싶어서, 조금 더 친절하게 상냥하게 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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