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역사와동화 Jun 10. 2022

오늘 제목은 "원시인을 만나다."

암사동 선사유적지에서_구석기와 신석기

수업을 처음 하면 아무래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할 거예요. 특히 남자아이들로만 이루어진 팀일 경우 궁금증은 더한 것 같아요. 여자아이들은 수업을 어떻게 했는지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편인데...남자아이들은 이야기를 잘 안 하는 편이라...남자아이들 부모님들이 더 궁금해하시긴 해요.

수업을 처음 시작한 팀은 축구를 같이 하는 남자아이 5명이 한 팀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이죠. 

재밌었다는 얘기만 하고, 아~~~무 얘기도 없었대요.ㅋㅋ

왜 이야기를 안 하는지ㅎㅎ     

부모님들께서 궁금해하셔서 덕분에 저도 시대별 첫 수업을 정리해 보았어요.     


시대별 첫 수업은 암사동 선사 유적지예요. 그 앞에서 아이들을 만나서 표를 끊고 선사 시대의 개념과 암사동 유적지가 홍수로 인해 드러나서 집터인 걸 알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안으로 들어가요. 들어가면서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지금 여기는 아주 옛날 원시인들이 살았던 곳이야. 우리도 지금부터 원시인이라 생각해 보자.”

그러면서 앉아서 공부할 의자를 재빠르게 눈으로 찾습니다.

의자에 앉으면 <선사 시대> 책을 보며 인류의 변화를 살펴보아요. 책을 같이 보면서 질문(불을 발견하고 나서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등등)을 하고 답을 들었어요. 다행히 “원시인이 이걸 어떻게 알아요?” 하지는 않아요. 아직 원시인이 안 된 거지요.

쿠크다스 2개와 엄마손 파이 1개를 간식으로 주며 말하지요.

“원시인들이 처음 이 과자를 보았어. 너희는 원시인이야. 쿠크다스 어떻게 먹을래?”

가위바위보를 하고 순서를 정합니다.

첫 번째 원시인이 된 아이가 비닐째 먹으면서 맛이 없다고 얼굴을 찡그려요. 원시인이 된 두 번째 아이가 그걸 보고 고개를 갸웃갸웃하더니 아주 조금 비닐 껍질을 까요. 아직 과자를 먹진 않았어요. 원시인이 된 세 번째 아이가 포장지를 완전히 까고는 과자를 먹을까말까 망설입니다. 원시인이 된 네 번째 아이는 포장지를 다 벗기고 먹으며 맛있다는 표정을 지어요.

“우와, 엄청 똑똑한 원시인들인걸. 네 번째에 먹는 방법을 알다니!” 

원시인이 된 다섯 번째 아이는 엄마손 파이를 바로 껍질을 벗겨서 과자를 먹습니다. 응용력도 뛰어난 원시인이군요. 

그리고 움집을 보러 가요. 움집 크기와 모양이 조금씩 달라요. 

“가장 마음에 드는 살 집을 골라 볼까? 집 산 기념으로 사진도 찍고.”

남자아이들만 다섯인 이 팀은 집에도 별로 관심을 안 기울여요. 

“이 집에서 같이 놀면 좋겠다!”

한 집 앞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놀 궁리만 합니다. 

들어갈 수 있는 움집이 있어요. 들어가서 원시인 아빠, 엄마, 아들, 딸도 만나고 까치구멍도 보고 도토리 창고도 보고 나와요. 그 뒤 전시관에 들어가서 전시관에 있는 것을 토대로 설명을 해요. 신석기 시대 살았을 동물과 식물도 전시되어 있고 유물이 쌓인 땅도 볼 수 있어요. 토기를 보면서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게 신석기 후반부터인 것도 알고 복제와 복원 등에 대해서도 배워요. 전시관 옆으로 옮겨 불을 피워보고 곡물을 갈고 하는 등의 체험을 하고 나와요. 불 피우기는 조금더 정교하게 만들어서 아이들이 한 만큼만 불이 피워졌으면 좋겠어요. 불 피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할 수 있게요. 


이제 아이들이 슬슬 딴 마음이 들기 시작합니다.


오늘은 활 만들기를 하러 갈 거예요. 시간의 길을 지나 선사 시대로 꾸며진 곳으로 갔어요. 거기에 활 만들기 체험 장소도 있어요. 활 만드는 방법을 아주 친절히 설명해 주시더라구요. 사포질 10번, 걸레로 깨끗이 닦고, 대나무로 된 활은 배에 대고 7번 구부리기, 활줄은 3번 묶기. 상세한 데는 나름 이유가 있겠지요.~ 

다 만들고 난 활을 가지고 나와 활쏘기를 했어요. 잘 쏘는 아이도 있고 서툰 아이도 있습니다. 잘 쏘는 아이에게 “(서툰) 누구 좀 지도해줄래.” 하고 부탁했더니 흔쾌히 가르쳐주고 서툰 아이는 친구의 말을 따라 열심히 배워요. 이런 풍경 너무 좋아요. 자만심과 열등감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도 꽤 많거든요. 축구로 어울려 노는 아이들이고, 그것을 허락한 부모님들의 특성이 있어서 아이들도 편안한 거라 추측해봅니다. 음, 이 팀은 쓸데없는 감정이 끼어들지 않아서 큰 문제는 없겠군, 하고 생각합니다.   

   

아, 문제는 활 쏘기 놀이가 너무 길어진 겁니다. 화살 하나가 그만 나무 위에 걸렸는데, 그걸 떨어뜨려 보겠다고 또 화살이 하나 더 올라가고, 또 그걸 떨어뜨리겠다고 활을 던져서 2개나 나무 위에 올라가고...결국 이러다 수업을 못할 것 같은 위기감에 활 2개 꺼내는 것은 전문가(?)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분들이 하나는 나무에서 꺼내주시고 하나는 새로 만들어주셨어요. 저도 그 활 떨어질 때까지 끝까지 해보고 싶었으나, 다행히 선생인 걸 잊지 않고 수업을 위해 아이들을 그 근처에 있는 의자로 몰고 갔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활쏘기를 하고 싶어합니다.

"활 이리 줘. 이제부터 활에 대해서는 잊어줘."

조금 흥분해 있어서 집중하기가 힘들더라구요. 소리도 한 번 질러보고 겨우겨우 공부할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근데 도중에 또 자기네 반의 여자아이 이름을 대면서 서로 "너, 걔랑 사귀지?" 합니다.

"이제 그 아이도 잊어줘."

수업 끝나고 같이 축구할 생각에 온 신경이 집중된 아이들이라

“집중 안 하면 수업 늦게 끝난다.”

했더니 리더십이 있는(?) 한 명이 빨리 끝나고 축구해야 한다며 아이들을 재촉했습니다.

구석기, 신석기 프린트물을 같이 읽었어요.


그리고 원시인이 썼을 것 같은 유물을 찾아오라 했습니다. 나무 1, 돌멩이 3, 솔방울 1을 가져왔습니다.

땅을 파고 있길래 가서 보니 돌도 아니고 플리스틱이었어요.


공책을 나누어주고 글쓰기를 시작했어요.  오늘 제목은 “원시인을 만나다” 입니다.  


어떻게 쓰냐고 물어봅니다.

"먼저 주인공 이름을 지어줘. 그리고 그 아이가 몇 살인지, 엄마, 아버지는 어떤 사람인지. 돌멩이로 사냥했다고 쓴 사람들은 어떤 동물을 잡았는지, 처음부터 돌을 잘 던졌는지, 아님 열심히 연습을 했는지, 누구한테 배웠는지, 그날 사냥 나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부모가 없는 주인공은 부모님이 어떻게 되셨는지 등등."


형이 10명 있다고 썼다가

"형이 10명이나 있으려면 사연이 있을 것 같은데 그 사연도 써." 했더니 형 1명 있다로 고칩니다. 형이 10살 많다고 썼길래, 그것도 사연이 있겠다 했더니, 얼른 '3살 더 많아요.'로 고칩니다.


돌을 맞고 정신이 나가서 1년 뒤에 깨어났다고 썼길래, 

"선사 시대에 1년 뒤에  깨어날려면 뭔가 특별한 일이 있었을 것 같은데, 그 이야기를 써볼래?" 했더니

얼른 지우고 2일 뒤에 깨어났다로 바꿉니다. 


어찌저찌 내용을 추가하고 고치고 하면서 마무리합니다. 내 마음에 썩 들지는 않지만...첫 시간이고 한 줄 한 줄 힘겹게 이어간 아이들이라 더 하라 하기가 미안합니다. 


원래 원시인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질문과 답을 적는 게 있었는데 건너띄고 유물 찾고 이야기 쓰기만 했어요.

선사 시대 사람을 만나서 물어보기(1. 선사 시대 사람에게 무엇을 물어보았어요? 선사 시대 사람이 무엇이라 답했나요? 2. 선사 시대 사람은 여러분에게 무엇을 물어보았어요? 여러분은 무엇이라 답했나요?)를 안 한 거죠.

이것을 하면 다시 산만해질 것 같아 선사 시대 사람이 썼던 유물 찾아보고 이야기 만들기만 했습니다.  


보통 수업할 때 책을 3~4권 가져가서 같이 보는데 가져간 책을 다 못 볼 때도 있어요. 선사 시대를 공부할 때는 <선사 시대> 외에 <석기 시대 사람들> 과 <석기시대에는 어떻게 살았을까> 를 같이 봐요.   

 


<석기시대에는 어떻게 살았을까> 책 속에는 이런 문장이 있어요.


수사슴처럼 힘차게 발을 굴러 보세요.

새처럼 우아하게 걸어 보세요.

곰처럼 무섭게 으르렁 소리를 내어 보세요.


석기 시대! 뼈의 시대!

늑대처럼 소리 내어 울어 보세요.

석기 시대! 뼈의 시대!

정말 지혜로운 시대!


저는 석기 시대를 정말 지혜로운 시대라고 특별히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이 부분은 빼고 읽어요.


석기 시대! 뼈의 시대!

수사슴처럼 힘차게 발을 굴러 보세요.

새처럼 우아하게 걸어 보세요.

곰처럼 무섭게 으르렁 소리를 내어 보세요.

늑대처럼 소리 내어 울어 보세요.

석기 시대! 뼈의 시대!


이렇게 합니다. 이 글대로 아이들과 움직여보면 재미있어요.


근데 이번에는 책 2권을 볼 시간이 없었어요. 책 읽는 것은 아이들 상황에 맞추는 편이에요. 이번에는 보려고 했던 <석기 시대 사람들> 책은 프린트물과 내용이 겹치기도 해서 넘기고, <석기시대에는 어떻게 살았을까> 책은 다음 수업 시간에 복습하는 차원에서 보여주어야겠어요. 


음, 첫 수업이라 어떨지는 모르겠는데...아직 깊이 있게 생각하고 글로 풀어내는 건 부족한 것 같아요. 비교하고 싶지는 않지만...몇 년 전 또래 여자아이들이 한 것이 조금더 나은 것 같아요.

또래 여자아이가 몇 년 전에 한 것

그날은 오로지 축구 생각에 그럴 수도 있지만, 흥미가 없는 상태에서 박물관을 가는 건 시간 낭비일 수 있어요. 그 오래된 움직이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은 것들을 사랑스럽고 호기심어린 눈으로 보지 않으면 재미있기가 쉽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래서 책읽기를 추가했으면 좋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어요. 아이들은 싫어하겠지만, 그래도 이 수업을 하고나서 '역사가 재미있어지고 생각할 힘도 기르고 글도 조금 나아졌다.'만 되면 저로서는 만족입니다. 부모님은 더 많은 걸 배우기를 원하시겠지만.   


제가 수업하는 방식은 책을 3~4권 정도를 같이 보고(수업 사이사이) 제가 준비한 프린트물(책을 보고 박물관에 맞춰 만든 거예요.)을 같이 읽고 전시관 유물에 대해 설명하고 관련 만들기를 하거나 글쓰기나 그림 그리기를 같이 해요. 보통 아이들이 처음 한 시간 집중하면 흐트러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초반에 공부할 것을 집중적으로 하고 그 다음 조금 같이 놀고 같이 간식 먹고 그 뒤에 다른 공부(전시관 미처 못 본 것 있으면 마저 보기, 만들기, 글쓰기, 그리기 등)로 이어져서 마무리해요. 박물관 상황이나 아이들의 상황에 따라 순서는 조금씩 변해요.      

아이들에 따라 집중도도 다르고 진지함도 다르고, 노는 시간이 조금 길어져 늦기도 하고, 열심히 쓰느라 시간이 더 걸리기도 하고 저로서는 그날 하기로 한 것을 마무리할 때까지는 기다려요. 시간이 모자랄 때가 많은 편이라, 아이들 상황에 따라 끝나는 시간을 조금씩 조율하기도 해요.       


“수업 어땠어?”

“재미있었어.”

가 끝인 아이들.

아무래도 이 팀은 부모님들의 궁금증이 풀릴 때까지 조금 자세한 브리핑을 해야 될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아이들이 사진 찍기를 싫어하지는 않아서(좋아하지는 않지만) 다행이에요. 

고학년 되면 사진 찍기 싫어하는 아이들도 많고...남자아이들은 조금 늦지만...빠른 애들은 4학년 때부터 슬슬 사춘기 시작이라.ㅎㅎ 사춘기가 빨리 오는 순서 대로 사진 찍기를 싫어하는 현상이..., 이건 뭘까요?

저로서는 수업에 가기 싫다 안 하고 재미있다고 답했다 해서 그걸로 감지덕지입니다.       


‘축구로 똘똘 뭉친 남자아이 다섯 명’ 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지요. 이 팀은 그만큼 활기차고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있어요. 선생이 끼어들 틈이 없어요. 조금 서운할라고 그럽니다.

이상하게 같은 성별로만 팀이 이루어졌을 때 그 성별의 특성이 더 강화되는 것 같아요. 여자아이랑 같이 하면 여자아이들의 잔소리도 있고 눈치도 좀 보느라 덜 활동적인데, 남자아이들만 있으면 얌전한 남자아이조차도 "나도 남자야!" 하는 느낌적인 느낌.     

아마 그래서 남녀가 만나서 같이 조율해가면서 사는 게 인생의 진리인가 봅니다.

어쨌든 남자아이들만 모인 팀을 보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미래의 어른 남자들을 보는 것 같습니다. 세상이 많이 변했으니 이 아이들은 다르겠지요.~~

매거진의 이전글 욕망을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