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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사와동화 May 05. 2023

치타 소녀와 좀비 소년

김영리/ 215쪽/ 라임/ 2016-01-27(라임 청소년 문학 18)


줄거리(출판사 제공 책 소개에서 많이 가져옴)


태범의 아빠가 뺑소니 사고를 냈다. 이 사고로 수리는 오른쪽 다리를 영영 잃게 되었고, 수리 아빠는 복수를 하러 ‘파란 집’을 찾아간다. 그 일로 태범은 아빠와 동생을 잃고, 정신을 놓아버린 엄마는 태범도 기억 속에서 지워 버린다. 폭력을 일삼던 아빠를 떠올리게 하는 행위를 절대 하지 않겠다는 세 가지 원칙을 세운 태범은 결국 가출을 한다. 가출팸을 기웃거리다가 쫓겨난 뒤 아르바이트를 시도해 보지만 악덕 점주에게 뒤통수를 맞는 등 녹록지 않은 나날을 보내다가 결국 서울역에서 노숙을 하게 된다.     

노숙자에게 돈을 받고 매를 맞는 태범, 엉망이 된 자신을 내보이고 정체를 밝히는 것으로 복수를 하려던 태범은 집안을 결딴낸 사내의 딸, 수리를 찾아간다. 그러나 자해로 몸과 마음이 죄다 망가져 버린 수리를 만나게 된다. 수리는 자신의 주변을 서성이는 태범을 끈질기게 쫓던 중, 태범이 ‘파란 집 사건’의 생존자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휩싸인다.

     

수리는 태범과 만난 뒤 ‘그 사건’ 이후 처음으로 아빠를 찾아가지만 접견을 거부당한다. 아빠에게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한 수리는 자신이 멀쩡해졌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복지관으로부터 치타 풋을 후원받아 마라톤에 도전한다.

한편, 노숙 생활을 계속하던 태범은 복권 할아버지의 죽음과 수리의 충고에 자극을 받아 집으로 돌아가지만, 쓰레기를 주워 와 집 안을 채우는 엄마의 모습에 고민이 깊어진다. 태범과 수리는 서로의 상처에 동질감을 느끼며 조금씩 가까워지고, 그럴수록 태범은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파란 집 사건’의 진실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파란 집에서 태범의 엄마에게 붙들려 한바탕 곤욕을 치른 수리는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로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가 결국 쓰러져 버린다. 태범은 자포자기 상태의 수리를 찾아가 ‘파란 집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법정에 나가 그날 일을 증언한다. (태범의 아버지는 싸우다 실수로 죽었고, 태범의 동생은 태범 아버지가 수리 아버지가 오기 전 끊어 놓은 가스 때문에 죽었다. 태범은 알고 있었다.)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두 아이는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해 나가며 세상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딛는다. 두 아이는 과거를 똑바로 마주하고, 평범한 오늘을 되찾기 위해 함께 달리기 시작한다.     


아이의 마음을 알 수 있는 문장   

  

하긴 다음에 어떤 공격이 들어올지 안다고 해도 특별히 나아질 건 없다. 그저 이어질 공격의 방향과 강도를 알면 그 짧은 사이에 내 몸 안에 에어백을 채우듯 숨을 들이마시는 걸로 대비 아닌 대비를 한다는 건데, 그래 봤자 아픈 건 똑같다. 간단한 산수다. 놀람 더하기 아픔에서 놀람을 뺀다고 해도 아픔은 그대로 남는다.

뭐, 생각해 보면 인생이라는 것도 바로 다음에 어떤 공격이 들어올지, 또 어떤 거지 같은 사건이 날 자빠뜨릴지 모르는 거다. 온갖 방어 방법을 열나게 연구해도 인생이란 놈은 언제나 나보다 세 수는 더 앞서 있다. 그러니까 이 치는 지금 나에게 인생을 맛보게 해 주는 셈이다. (8~9쪽)     


몇 주간의 맹연습 끝에 나는 혼자 의족을 차고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처음으로 낯선 다리와 함께 혼자 걸은 것이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래서 바람에 눈물을 날리려고 조금씩 빨리 걸었다. 보폭이 점점 넓어졌다. 걷는 걸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뛰고 싶었다. 다칠 거라는 생각? 물론 들었다. 근데 여기서 다쳐 봤자 뭐. 그래 봤자 뭐! 화가 났다.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나무다리로는 달릴 수가 없었다. 의족이 달릴 때의 충격을 흡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평생 달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달릴 수 있게 되었다.(75~76쪽)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날 봐. 알아봤더니 쟤는 살인자의 딸이래. 그런데 그 아빠가 딸의 다리를 자르게 만든 뺑소니범을 죽였다나 봐. 그럼 손가락질할 수만은 없지. 그런데 뺑소니범뿐만 아니라 어린 딸까지 죽게 만들었다고? 세상에. 거미가 줄을 타고 올라간다는 동요처럼 계속 두 손가락이 맞물려 올라가다가 어느 순간 딱 멈추는 거야. 그러고는 돌아서지.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면서. 전염병 바이러스 취급이야. 그런데 누가 나 같은 애랑…….”(135~136쪽)     


가족을 보호하는 건 부모의 의무라고들 말한다. 아빠는 강해야 하고 엄마는 자식을 사랑으로 지켜 줘야 한다고. 하지만 그럴 수 없을 때도 있다. 때로는 자식이 부모보다 더 강해져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나는 결심이 흐트러질까 봐 무릎 위에 놓은 손을 마주 잡아 꽉 쥐고 말했다.

“아저씨한테 제가 할 말이 있어요. 그날 사건에 대해서요. 그때 경찰한테는 기억이 안 난다고 했지만, 사실 저 다 봤어요.” (204~205쪽)   

       

극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살아남기를 잘 쓰는 작가


이 작가가 쓴 《나는 랄라랜드로 간다》도 재미있게 읽었다. ‘기면증’ 환자 안용하와 그의 가족이 게스트하우스를 사수하려고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상황은 아주 안 좋지만 글은 유쾌하게 읽힌다.

《치타 소녀와 좀비 소년》은 교통사고와 그로 인한 보복 살인이라는 사건으로 얽힌 두 아이라는 독특한 설정에 노숙, 가정폭력, 살인 등 무거운 소재들을 다루고 있다. 소재의 특성도 있지만 《나는 랄라랜드로 간다》보다 정교하고 훨씬 속도감이 있다. ‘어른들이 하는 말은 문장 부호조차 믿지 않는’ 고지식한 원칙주의자 태범과 자기 연민을 경계하는 고독한 투사 같은 수리의 캐릭터도 세밀하고 매력적이다. 또 부모의 사랑을 당연히 여기지 않고, 부모를 이해하고 지키려고 애쓰는 성숙함이 있는 것도 좋다. 

김영리 작가는 극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살아남기를 처절하지 않게 경쾌하게 그려내는 재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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