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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사와동화 Jul 29. 2023

보통의 노을

이희영 | 자음과모음 | 220쪽 | 2021년 2월


열일곱 살에 노을을 낳은 엄마. 악세서리 가게와 공방을 야무지게 운영한다. 아르바이트하는 짜장짬뽕집의 성하와는 절친. 그런데 엄마가 성하의 오빠에게 마음을 열었다. 엄마는 처음에는 성빈을 완강히 밀어내지만 성빈의 기다림은 5년 동안 계속되었다. 그리고 결혼을 한단다. 학교에서 친해진 단 한 명의 친구 동우는 성하를 좋아하는 줄 알았더니 노을을 좋아한단다.     


아무리 아니라 해도 소용없었다. 남녀 사이에 우정이 존재할 수 없다니. 왜 자신들의 생각을 멋대로 진실이라 믿는 걸까? 성하가 학원에서 좋아하는 아이가 생겼다 했을 때? 나는 신을 향해 당당히 맹세할 수 있었다. 양파 표피 속 세포 하나만큼도 동요하지 않았다고. 아니, 오히려 반가웠다. 이제 툭하면 나와라, 심심하다, 하고 칭얼거리는 녀석의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될 테니까. 그건 성하 저 녀석도 100퍼센트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 아침부터 모닝 쾌변을 봤더니 아주 기분 좋아. 3일 만에 드디어 나와 주셨어. 역시 청국장 환이 직방인데.”

전혀 궁금하지도 않은 일상까지 속속들이 말해 주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누나나 여동생이 있는 녀석들은 어느 정도 여자에 대한 환상이 없다고 하던데, 외동인 나는 왜 이토록 그 말에 격하게 공감되는지 모를 일이다.(24쪽)     


나는 정확한 시급 외에 모든 돈을 다시 금고에 넣어 두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일한 만큼만 받고 싶었다. 남에게 괜한 호의를 받는 게 싫었다. 타인에게 어떠한 피해도 입히기 싫었다. 그저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살고 싶었다. 똑같이 잘못을 해도 사람들은 내게 다른 시선을 던지니까. 그 누구도 나를 보며 혹은 엄마를 향해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말은 해서는 안 되었다.

나는 가급적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려 했다. 크게 모나지 않도록, 딱히 문제 될 리 없도록 하루하루 성실하게만 지내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사회가 바뀌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차별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이가 미혼모와 한 부모 가정에 뭔가 문제가 있지 않을까 싶은 곱지 않은 눈초리를 보낸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다름과 틀림을 똑같이 여기곤 한다.(59쪽)     


“보통의 삶 따위 애초부터 없었던 것 같아.”

성하의 입가에 쓴웃음이 지나갔다.

“각자의 삶에 만족하고 행복하면 그게 전부 아닐까? 얼마 남지 않은 고속도로 위에 올라서려 분투하는 대신 뭐, 좀 울퉁불퉁하더라도 각자 길을 만들어 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144쪽)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눈치가 없어서.”

형의 씁쓸한 웃음이 바람에 섞여 날아들었다.

“뭔가 마음이 이상하다 싶었을 때는 이미 늦어 버렸어.”

늦었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한 번도 경험한 적 없으니까. 그러나 한 가지만은 눈치챌 수 있었다. 그 늦음이 후회가 아닌 시작이라는 사실을. 형이 최지혜란 여자를 사랑하게 될 줄 몰랐듯, 엄마 역시 열일곱에 아기를 만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겠지. 뭔가 이상하다 싶었을 때는 이미 내가 찾아온 뒤였다. 그렇게 엄마의 새 삶도 시작되었다.(156쪽)      


세상은 이리저리 뒤엉켜 있다. 사람들의 서로 다른 모습들처럼 말이다. 삶에 정말 고속도로가 존재할까. 남들 눈에는 잘 닦인 길로 보여도 정작 그 위에 선 사람에게는 미로로 느껴질 수도 있을 테니까.(195쪽)     

“물론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지만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싶었어. 지금은 아무래도 공부겠지? 언젠가는 식구들도 다 알게 될 텐데, 내가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것이 내 삶에 커다란 문제를 일으켰다는 오해는 받고 싶지 않거든.”

시를 읽듯 동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조심스러운 말 한마디마다 얼마나 많은 의미가 들어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처음 동우에게 시선이 머문 건 괜한 싸움에 휘말려서도, 녀석의 눈빛이 기묘해서도 아니었다. 동우와 나에게는 비슷한 교집합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 모두 다름이 혹여 틀림이 될까 조심했으니까. 하지만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 동우가 벽장 속에서 스스로 걸어 나왔듯,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에서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자신과 다르다 생각한 타인과도 미묘한 교집합을 만들며 살아가는 게 인간이니까.(197쪽)     


세상에 기준이 어디 있고 표준이 어디 있을까? 엄마가 나를 고등학생 때 나은 게 어때서. 덕분에 친구처럼 세대 차이가 나질 않는데. 살다 보면 나보다 열 살 많은 아버지를 만나게 되는 날도 오지 않겠어? 나를 좋아하는 남자 녀석과 친구가 될 수도 있잖아. 나에게는 이 모든 것이 평법하고 보통인 일상이다.(213쪽)


보통이란 단어, 보통의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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