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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사와동화 Jul 29. 2023

페인트

이희영 | 창비 | 204쪽 | 2019년 4월 | 12회 청소년문학수상


아이를 낳지 않는 미래 사회, 나라가 아이를 키운다. 그렇게 국가에서 설립한 NC 센터에서 자란 아이들은 부모를 면접하는 페인트를 한다. ‘페인트’란 부모 면접(parent’s interview)을 뜻하는 아이들의 은어이다. 

섬세하고 생각이 많은 제누는 열일곱 살 소년이다. 

제누는 열세 살 때부터 지금까지 4년 동안 페인트를 치러 왔다. 하지만 진심으로 자녀를 원하지는 않으면서 입양을 통해 정부로부터 각종 복지 혜택을 받는 데에만 관심이 쏠려 있는 예비 부모들에게 번번이 실망을 해 왔다.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부모를 선택하지 못하면 홀로 센터를 떠나야 하는데, 그럴 경우 사회에서 NC 센터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많은 차별과 어려움을 겪는다.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면? 이 전제부터 흥미를 일으킨다. 누구나 마음속에 부모가 이러지 않았으면 하는 한 가지 지점은 있게 마련이다. 많으냐, 적으냐의 차이이지. 하나도 없다면 그는 분명 신의 자녀다.   

부모를 잘 만난다는 것, 선택할 수 없지만, 그에 따라 아이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진다. 나는 유전이 50%, 초등학교 때까지는 형성되는 후천적 영향이 30%, 그리고 나머지 20%가 자신이 어쩔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20%의 힘으로 80%를 뒤집으려면 의식적인 노력을 꾸준히 해야 한다. 단호한 결심으로 부모와 연결고리를 끊어야 할 때도 있다. 연결고리를 끊지 않으면 대를 이어 불행하다. 나를 만들었을 신에게 제발 80%를 조금이라도 바뀌게 해달라고 매달려야 한다.      

  

제누가 끌리는 것은 자기의 부족함을 말할 줄 아는 솔직한 부모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만나 3차 면접까지 보는데 결국 선택하지 않는다.      

뭔가 아쉽다. 센터장인 박의 상처 해결도 그렇고, 제누의 선택도 그렇고(굳이 3차 면접까지 보고 같이 생활하는 걸 선택 안 한 것도 그렇고(생각이 많은 아이라고 계속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그 과정까지는 하고 부모로 선택 안 해야 맞지 않을까?), 온전히 공감가지 않는다. 기대가 컸던 것일까? 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앞에 나선 느낌. 아키도 노아도 너무 성숙하다고 느껴진다.     


아, 이 작가는 주제에 강한 작가구나. 아이디어를 이야기 속에 잘 버무리면서도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은 꽤 철학에 가깝다. 그리고 사람 자체가 선해서 더 나쁘고 독하게 쓰기는 쉽지 않을 거 같다.      

작가의 말이 겸손하다. 가족에 대해서 꼭 애정을 표현한다.  괜히 작가의 말을 보니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안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페인트의 작가의 말

_나는 좋은 부모일까? 반성에서 시작한 소설이었는데, 정작 글을 쓰는 동안에 아이에게 소홀한 엄마가 되어 있었다. 아이가 이 글을 읽으면 뭐라고 할지 걱정이다. 나를 각각 아내, 엄마로 둔 우리 집의 두 사람은 애초에 나에게 살림과 육아를 기대하지 않는다. 외조와 내조를 병행하는 남편과 자기 할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는 아이가 아니었다면, 매일 방에 틀어박혀 몇 시간이고 키보드만 두드리는 호사(?)는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미안하고, 많이 고맙다.

언젠가 선생님은 “이야기는 찾아온다고.”라고 말씀하셨다. 나의 경우 “나는 참 부모 자격이 없구나.” 하는 푸념 속에서 제누와 아키, 노아가 찾아왔다. 나보다 더 능력 있는 사람에게 갔다면 훨씬 근사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었을 텐데, 안타깝고 미안하다. 이것은 내가 아이에게 느끼는 미안함과 같은 것이다. 더 좋은 부모 밑에서 자랐다면 더 행복했을 텐데.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다. 나를 찾아온 이 생명들을 나는 세상 누구보다 사랑한다.    

 

소금 아이의 작가의 말

_늘 골방에 틀어박혀 있는 아내와 엄마를 내버려 두는 가족, 미안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테스터의 작가의 말

_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에게는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가지고 있는 미안함을 전한다.

나나 내 안의 가장 어두운 영혼이 봉인 해제될 때마다 곁을 지켜준, 남편과 아이에게도 고맙다.  

    

보통의 노을 작가의 말

_글쟁이 아내와 엄마 때문에 많은 것을 희생하는 우리 집 두 남자에게도 늘 고맙고 미안하다.     


나는 작가의 말에 가족에게 고마움을 표현할까?

주말에 아이들 수업을 하고 세 끼를 신경 쓰고 나이 드신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지만... 매 끼니 새로운 반찬을 내놓는 것도 아니고 어머니께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다. 돌봐야 할 아이도 없고 남편은 조금 손이 갈 뿐이고. 나에게 뭐라 하는 가족도 없는데... 

나는 매일 방에 틀어박혀 있어도 몇 시간이고 키보드만 두드리는 호사(?)를 누리지 못한다. 고마움을 아는 사람이 글을 더 잘 쓰는 걸가? 그런 엉뚱한 생각마저 한다. 

괜히 나 자신에게 미안해져서 그것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 하여 가슴이 찌르르하다.

그리고 페인트를 읽고는 괜히 유전자를 물려준 부모 탓을 하고는 스스로 더 한심하게 느껴졌다.

한심해도 어쩌랴. 나도 제누처럼 부족한 채로 나에게 가장 적절한 길로 가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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