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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사와동화 Jul 05. 2023

테스터

이희영/ 허블/ 272쪽/ 2022년 11월



오래 전에 멸종된 오방새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살아난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모두 죽었는데, 백색 소년 마오만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마오는 햇빛 알레르기가 있어 평생 숲속 집에 갇혀 메이드 로봇과 함께 외롭게 바이러스 치료를 하며 고통스럽게 살아간다. 그런 마오에게 어느 날 한 사람이 찾아온다. 바로 RB 바이러스의 또 다른 생존자인 하라.      


유전자 디자인, 화성 테라포밍, 인공장기, 인공피부, 멸종동물 복원, 기후 위기 등 과학기술의 맹점과 문명의 발전이 가져올 수 있는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꽤 촘촘하게 그려내었다.   

  

무엇보다 반전이 놀랍다.


그리고 자꾸 질문을 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잘 쓰여진 책이다.    

 

문명과 과학기술, 의학의 발전은 꼭 있어야 할까?

발전을 했다면 누가 누리나?

그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은 누구인가?

나는 어느 지점에 놓여 있나?

혈육에 대한 이기심을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나?

(힘이 있다면) 어디까지 탐욕을 부릴 수 있을까? 

참혹한 현실을 아는 것이 나은가, 착각하고 사는 게 나은가?

내가 옳다고 한 생각도 갇혀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 상황이 달라지면 변하는 생각들...

로봇보다 인간이 더 선하다고 할 수 있나?


더 이기적일 것 같은 하라는 분노하고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마오를 만나러 왔다.

마오는 누군가의 희생을 당연시하고 때로는 옹호하기까지 했다. 어쩌면 세상을 움직이는 건 첨단 과학 기술도, 의학의 발전도 아닐 것이다. 작은 희생조차 막아서려는 누군가의 연약한 두 팔인지도.(256쪽)     


마오는 많은 걸 깨닫는다.     


어느 질병이 더 고통스러운지보다,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앓고 있는지가 몇 배는 더 중요했다. 그것이 세상임을, 결국 마지막 다섯 번째 아이도 알아차렸다.(259쪽)     


수많은 존재가 자신이 테스터인지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 더 높은, 그리고 더 많은 이들을 위해 사라져 가는 생명들이 있다. 다음 차례가 누가 될지는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벌써 순번이 왔다. 눈치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언젠가 수업시간에 AI 선생님이 말했다. 기나긴 지구의 생을 생각하면, 인간의 등장은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고, 어쩌면 이 세계는 우주와 자연이 잠시 시험을 하는 중인 게 아닐까? 인간의 등장이 어떤 결과를 보여주는지 말이다. 그 테스트의 결과값은 이미 나왔다.

구름 사이로 붉은 해가 떠올랐다. 어둠이 빛으로 지워진다. 눈처럼 투명한 두 발이 난간 위로 올라섰다. 서서히 밀려드는 햇빛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 빛이 닿자 새하얀 얼굴과 목을 지나 팔과 발등까지 빨갛게 변해갔다.

몸이 조금씩 타오르기 시작했다.

“여명이구나.”

마오가 웃으며 태양과 마주했다.(262~263쪽)     


내가 마오라도 이런 선택을 할 것 같다. 어쩌면 나도 마오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렇다 해도 나는 끝까지 살아남을 거다. 마음 아프게 마오를 보낸다. 


* 테스터가 맘에 들어 이희영 작가의 작품을 계속 읽었다.     

개인적으로 테스터가 제일 잘 쓴 것 같다. 반전을 보여주기 위해 적절히 드러내고 적절히 숨기는 센스가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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