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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사와동화 Jul 29. 2023

소금 아이

이희영 | 돌베개 | 232쪽 | 2023년 6월


자기 아들을 죽게 만든 아들의 재혼한 부인의 아이를 ‘자기 같아서 사랑했다’는 그 사랑의 깊이를 가늠하기가 힘들다. 어찌 보면 그렇게 망나니 같은 부모를 만난 수오지만 할머니의 사랑 안에서 아주 엇나가지는 않고 살 것 같다. 그냥 착한 사람이 있는 걸까...수오도 할머니도 그렇게 착하고 심지 곧은 사람으로 타고났거나 운명적인 만남에 의해 서로에게 꼭 돌봐줘야 할 사람이 된 걸까? 소설이지만 어딘가에 이런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수오 같은 아이들이 할머니 같은 사람을 만나 인생이 조금은 따뜻해지길 바래본다.     

마음을 건드리는 문장이 많다.

  

소금에 절여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는 건, 비단 젓갈뿐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소문도 마찬가지였다. 삭힌 젓갈처럼 그저 익어 갈 뿐이었다. 절대 사라지지 않았다.(17쪽)     


이수는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환경이 바뀌었다고 인생이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32쪽)   

  

섬에 갇히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추억이 되겠지만, 또 다른이들에게는 생존의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그것이 바다에 사는 사람과 바다를 즐기는 사람의 차이라고 이수는 생각했다.(34쪽)     


곧게 뻗은 나무일수록 태풍에 약한 법이다. 가늘어 쉽게 휘어지는 꽃들이 비바람에 강하다.(45쪽)   

  

진짜 섬에 갇혔으면 나무 베어다 배나 만들지. 헤엄쳐서 도망갈 시늉이라도 하지. 마음에 갇힌 사람은 벗어날 방법이 없다. 네 할머니 속에 수인도가 있어. 알아, 이녀석아?(106쪽)     


넝쿨처럼 이리저리 얽히고설켜 사는 게 인간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쩌면 사람들은 저마다의 섬에서 사는지도 몰랐다. 누군가 배를 타거나, 헤엄쳐서 가보지 않으면 결코 그 속을 알 수 없는 섬들.(146쪽)    

 

이수는 문득 인간을 떠올렸다.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이들을 아프게 하고, 다른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이들을 도울 수 있는지를.(192쪽)     


진실이란 잡초와 같았다. 언젠가는 어떻게든 세상에 드러나기 마련이다. 결국 시간 문제다.(210쪽)     


아줌마와 할머니, 그리고 이수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다. 하지만 유일하게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존재였다. 가족은 그런 사람들이라고 이수는 생각했다.(214쪽)     


그 한마디가 이수의 가슴에 묵직한 울림을 남겼다. 진실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건, 역시 시간문제다. 이수(離水)는 물에서 떠 올라간다는 뜻이라 했다.

“그래, 언젠가는 다 밝혀지겠지.”

완전한 밤이 찾아왔다. 하늘과 바다, 그 위에 떠 있는 섬까지 검게 변했다. 그러나 내일이면 다시 날이 밝는다. 영원히 밤만 지속되는 세계는 없으니까. 언젠가 사람들도 세아가 어떤 아이인지 아침처럼 환히 알게 될 것이다.(220쪽)     


섬은 가장 밝고 화창할 때 사람들이 찾는다. 그러나 오래 머무는 이는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잠시 만났다가도 머지않아 등을 보인다. 상대가 눈 덮인 추운 겨울을 지나고 있다면 더더욱 빨리. …… 하지만 때로는, 무채색인 겨울의 섬을 찾듯, 헐벗은 사람 곁에 머무는 이도 있었다. 이수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반으로 접힌 편지를 쓰다듬었다.(221쪽)     


눈송이가 바다에 떨어져 소금이 되었다. 세상에 소금이 내렸다. 차갑게 언 마음을 녹이려. 소중한 추억을 잊지 않도록 그렇게 짭조름한 눈을 퍼부었다. 그것은 어쩌면 누군가의 마음인지도 몰랐다. 무르지 않도록, 상하지 않도록, 꼭꼭 감싸서 지켜 주고 싶은 간절함. 하늘도 바다도 파랗기만 하던 세상이 거짓말처럼 새하얗게 물들어갔다. 그 속에 검은 한 점으로 소년이 있었다.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하얀 소금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227쪽)     


인간에게 받은 상처가 가장 아프고, 인간에게서 받은 위로가 가장 따뜻하다. 누군가의 한마디가 칼날이 되는가 하면, 누군가의 손길은 생명이 된다. 소름 끼치는 악행을 저지르는 것도 인간이요, 숭고한 희생을 감당하는 존재도 인간이다.(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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