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실 지음 | 변영미 그림 | 푸른숲 | 2008년 11월 25일
『멀쩡한 이유정』에는 아주 특별하거나 큰 사건이 나오지 않는다. 누구나 할 법한 생각, 누구나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것 같은 ‘문제’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그럼에도 몰입도가 높다. 문장을 비롯해 심리 묘사도 뛰어나다. 작가의 따뜻한 시선에 문학적 우수함이 더해져 빛을 발하는 작품들이 되었다.
5편의 단편을 읽으며 ‘정말 이런 아이가 있겠구나!’ 하게 된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고 짠하다. 응원하고 싶고 잘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마치 내가 그 아이와 같은 상황에 놓인 것처럼 여겨진다. 다 다른 5편인데, 어린 시절 내 안에서 다 조금씩 일어난 일 같다. 한 편씩 읽을 때마다 깊은 여운이 남고 그다음이 궁금하고 또 새로운 질문을 하게 된다.
「할아버지 숙제」는 할아버지 이야기를 적는 숙제를 하는 경수의 이야기이다. 숙제를 하는 과정에서 경수는 돌아가신 친할아버지가 술주정뱅이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더군다나 외할아버지는 노름을 하셨다. 엄마의 제안으로 경수는 할아버지가 좋아했던 것, 잘했던 것을 쓰는 것으로 할아버지 숙제를 해나간다. 별로 자랑할 건 없지만, 부끄럽지 않은 할아버지 숙제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_‘아이들에게 부끄러운 과거를 알려주어야 할까? 숨겨야 할까? 아니면 어디까지 알려주어야 할까?’ 생각해 보고 싶어졌다.
「그냥」은 초등학교 2학년이지만 평일에 거의 놀지 못하는 진이의 이야기이다. 진이는 엄마가 짜 놓은 시간표대로 학원에 가고, 숙제를 하고, 학습지 과외를 하느라 너무 바쁘다. 엄마가 동생을 낳으러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열흘 간 고모 집에 가게 된 진이. 진이는 고모네 집에서 낯설고 신기한 기분을 처음 느끼게 된다. 엄마는 어른한테 ‘그냥’이라고 대답하면 버릇없는 거라고 했는데, 고모에게 ‘그냥’이라고 했는데 고모는 기분이 좋다. 진이는 그 뒤로 마음이 가는 대로 ‘그냥’ 한다. 진이 마음속 고모네 집은 그냥 그렇게 컸다.
_‘어디까지 그냥을 해도 될까? 엄마와 진이는 기질이 다른 걸까, 엄마가 지나친 걸까? 그냥을 안 진이가 엄마랑 어떻게 될까?‘ 같은 질문이 떠올랐다.
「멀쩡한 이유정」은 길을 잘 못 찾는 길치, 이유정의 이야기이다. 유정은 사 학년이나 되었지만, 이 학년짜리 동생을 따라 학교에 다닌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과 다투는 바람에 유정이는 혼자 집을 찾아가야 한다. 학습지 선생님 올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유정은 몇 번을 헤매다 집 근처까지 찾아갔다. 그러나 아파트 단지 내에서 사는 동을 찾기도 쉽지 않다. 그때 유정이 앞에 구세주처럼 학습지 선생님이 나타난다. 하지만 선생님도 길치. 선생님이 길을 알려달라고 유정의 손을 잡는다.
_‘어른이라고 다 길을 잘 찾는 건 아니다를 알았을 때, 어른도 나처럼 쩔쩔맬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아이들은 어떤 생각이 들까?’ 아이에게 묻고 싶어졌다.
「새우가 없는 마을」은 생활 보호 대상자인 할아버지 이용수랑 손자 이기철의 이야기다. 할아버지는 병을 줍지만 벌이가 신통치 않다. 벼르고 별러 진짜 자장면을 먹는다. 그리고 진짜 자장면보다 맛있는 왕새우를 먹으러 읍내까지 간다. 하지만 마트가 읍내만큼 크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철 수레도 빌려야 한다는 말에 할아버지는 돌아선다. 그리고 손자에게 왕새우가 있는 마을에서 살라고 말한다.
_‘할아버지의 마음은 어땠을까? 경험이 적은 부모 밑에서도 아이들은 행복할 수 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눈」은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영지의 이야기다. 영지는 아빠를 살려달라고 여러 번 기도했는데 이루어지지 않았다. 엄마는 영지가 세상을 공평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엄마는 모든 걸 덮어주는 눈은 공평하다고 말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온통 흰빛인 세상을 보고 영지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장갑이 없어 눈사람을 만들고 싶어도 만들지 못하는 옆집 옥탑에 사는 여자아이를 보니 눈도 공평하지 않다. 영지는 아이에게 장갑을 주어야만 할 거 같아서 갈등을 한다. 영지는 집에 있는 새 장갑을 생각하며, 장갑을 벗어 옆집 옥상으로 장갑을 던졌다.
_‘영지의 이 경험은 어떻게 영지의 생각에 영향을 미칠까?’ 책을 덮고 궁금했다.
유은실 작가도 이유정 같았단다. 구구단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오른손 왼손은 5학년 때, 좌향좌 우향우는 고등학교 때 깨쳤단다. “자신은 문제투성이인 집에서 멀쩡해 보이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고, 그래서 지금도 멀쩡해 보이려고 무진장 애쓰는 어린이가 있다면 이 책을 읽고 조금이라도 편해졌으면 좋겠다.”고 한다.
5편의 단편을 읽으며 내 안의 아이도 위로를 받았다. 이 책에 나온 주인공들과 똑같지는 않았겠지만 어떤 형태로든 나도 멀쩡해 보이려고 무진장 애썼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