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손님'의 정석과 안마의자의 무릉도원
대한민국에서 사위란 보통 '백년손님'으로 불린다. 처가에 가면 왠지 모르게 각 잡힌 자세로 앉아 장인어른이 주시는 술잔을 두 손으로 공손히 받거나, 식사 때가 되면 무거운 상을 솔선수범해서 펴고, 주방을 기웃거리며 "장모님, 제가 뭐 도울 거 없을까요?" 하고 예의상 빈말이라도 건네며 점수를 따려는 것이 일반적인 K-사위들의 생존 공식이다.
그런데 우리 집 양반은 '백년손님'이라는 단어에서 오로지 '손님'이라는 두 글자에만 아주 지독하게 꽂힌 모양이다.
그의 처가 방문기를 가만히 관찰해 보면, 이것은 처가살이의 고충이나 눈치 보기가 아니라 흡사 5성급 호텔에 '호캉스'를 온 VIP 고객의 태도에 가깝다. 그리고 그 VIP 고객의 진면목을 제대로 목격한 대망의 사건이 있었다.
친정 식구들과 다 같이 한바탕 마트 장을 보고 돌아온 날이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온 가족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일흔이 다 되어가는 장인어른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고기를 굽기 시작하셨고, 장모님은 잰걸음으로 야채를 씻으셨다. 나는 두 아이를 화장실로 밀어 넣으며 릴레이로 손발을 닦이느라 혼이 쏙 빠져있었다.
그렇게 우당탕탕 1차전이 끝나고, 이마의 땀을 닦으며 거실로 나왔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위이잉- 덜컹, 위이잉- 덜컹.'
거실 한가운데 놓인 안마의자에 남편이 깊숙이 파묻혀 있었다. 그는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세상을 다 가진 표정으로 무중력 상태의 극락을 맛보는 중이었다.
아무리 처가가 편하다지만, 장인 장모가 주방에서 불과 물과 사투를 벌이며 사위 먹일 고기를 굽고 있는데 건장한 사위가 안마의자라니! 등짝을 시원하게 스매싱하고 싶은 충동이 목끝까지 차올랐지만, 나는 헛웃음을 뱉으며 솟아오르는 분노를 꾹 눌러 담았다.
'그래, 기대감을 지하 1층까지 낮췄다고 생각했는데, 이 남자는 안마의자를 타고 지하 3층을 파고 들어가는구나. 인정하자, 이 뻔뻔함은 거의 예술의 경지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처가에서 안마의자와 혼연일체가 된 남편을 보며 분노 대신 실소를 머금는다. 이 어이없는 남자를 주인공으로 한 시트콤은, 5성급 처가 호텔에서 오늘도 절찬리에 방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