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쇼윈도 육아 만렙' 아빠의 기적

시댁 한정 1등 아빠와 우리 막냉이의 이중생활

by 환불포기

​우리 집에는 아주 기가 막힌 '선택적 에너지 보존 법칙'이 존재한다. 아이들 둘다 모두 기저귀를 차고 내 손으로 직접 밥을 떠먹여야 했던 그 험난한 꼬꼬마 시절, 남편의 기본 모드는 절대적인 '게으름'이었다.
​그의 일관성 있는 게으름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집에서도 소파와 물아일체였고, 친정(처가)에 가도 사위의 체면 따위는 가볍게 던져버린 채 방바닥에 대자로 누워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거나 깊은 동면에 빠지기 일쑤였다.


맞벌이하면서 애 둘을 독박 육아하듯 키워내는 내 짠한 몰골을 보며, 친정엄마는 늘 애가 타서 어쩔 줄을 몰라 하셨다.


​그런데, 이 남자의 에너지가 폭발하는 유일한 런웨이가 있었으니, 바로 시댁이었다.
​시댁 현관문 문지방만 넘으면 그는 마법에 걸린 것처럼 180도 돌변했다. 평소 집에서는 기저귀의 앞뒤도 헷갈려 하던 인간이, 시부모님 앞에서는 마치 집에서 본인이 모든 육아를 전담하는 양 척척 기저귀를 갈아치웠다.
​어디 그뿐인가? 밥때가 되면 앞장서서 아이들 밥을 떠먹이고, 거실 바닥을 뒹굴며 온몸으로 놀아주기까지 했다. 심지어 아이들이 최근에 익힌 개인기나 율동을 시부모님 앞에서 보란 듯이 뽐내게 하려고 "자,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그거 보여드려!"라며 조련사 역할까지 자처했다.
​그 눈물겨운 부성애와 '육아 만렙' 퍼포먼스의 절정은 시어머니의 감탄사에서 완성되었다.
흐뭇하게 아들의 재롱(?)을 지켜보시던 어머님이 박수를 치며 말씀하셨다.
​"아이고~ 우리 막냉이가 이제 아빠 다 됐네!"
​순간, 싱크대 앞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나는 들고 있던 과도와 함께 이성의 끈을 놓을 뻔했다.
'어머님, 아빠가 다 되다니요? 저 인간은 집에서 아빠가 아니라 그냥 덩치 큰 셋째 아들인데요? 친정에서는 숨만 쉬고 누워있어서 우리 엄마 복장을 터지게 만들어 놓고, 여기서는 무슨 육아 예능 프로그램 주인공 행세를 한단 말입니까!'
​집에서는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면서, 시댁 무대(?)에만 오르면 카메라가 돌아가는 것처럼 완벽한 1등 아빠 연기를 펼치는 저 뻔뻔함.


속을 모르는 시부모님 보기에는 '세상에 둘도 없는 다정한 아빠'였겠지만, 그 쇼윈도 육아의 실체를 아는 나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만 푹푹 내쉬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뒷좌석의 두 아이는 고단했는지 새근새근 꿀잠에 빠져들었다. 묵묵히 운전대를 잡은 남편의 뒷모습에서는 이미 영혼이 반쯤 로그아웃된 것이 느껴졌다.


​마침내 우리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기적 같은 생태계의 역전이 일어났다. 차에서 잠깐 눈을 붙였던 아이들은 그 짧은 낮잠으로 에너지를 200% 풀충전 완료! 눈을 번쩍 뜨더니 다시 비글처럼 온 집안을 휘젓고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반면, 시댁이라는 특설 무대에서 평소 안 하던 짓을 하느라 1년 치 육아 에너지를 몽땅 쏟아부은 '우리 막냉이'는 어땠을까? 그는 현관에 신발을 벗어 던지기가 무섭게 거실 한복판에 대자로 뻗어 완벽하게 기절해 버렸다. 시댁에서는 날아다니더니 집에 오자마자 방전된 배터리처럼 바닥과 한 몸이 된 그 몰골을 보고 있자니,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래, 당신은 다 계획이 있었구나. 평소에 에너지를 0%로 비축해 두었다가, 시댁에 갈 때만 100% 급속 충전해서 쓰는 저 놀라운 배터리 관리 능력. 인정한다, 인정해.
​아빠가 방전되어 널브러져 있든 말든 그 위를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또다시 분노 대신 어금니깨물고 실소를 머금었다. 이 기막힌 '선택적 육아 만렙'의 최후 덕분에 내 시트콤 대본이 한 장 더 완벽해졌으니, 그걸로 위안을 삼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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