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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가 회사에게 내 징계를 요구하다.

아니뗀 굴뚝에 연기나더라.

by 비뭉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는 돈을 잘 써야 하는 회사다.

돈을 잘 벌기보다는 잘 쓰는 것에 더 점수를 매기는 곳이다.

올바른 예산 집행을 통해서 우리가 관여하는 산업을 발전시키는데 기여해야 한다.

뭐 다소 거창한 이유로 들릴 수 있겠지마는 우리 기관의 설립 목적이 애초에 그런 것이니 뜻대로 굴러갈 뿐이다.

하나의 목표 안에서 누군가는 관행대로, 누군가는 저항하며, 누군가는 창조해 나가며 하루하루를 꾸역 살아간다.


돈을 쓰는 것보다 돈을 버는 것이 훨씬 어렵지마는 돈을 써야하는 자들에게도 제 나름의 고충과 난관이 있다.

살다보면 인간사회가 그리 깨끗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특히 돈과 이권이 걸린 문제에서는 더욱 그렇다.

누군가 부자라고 한번 소문이 나면 여기저기서 사기꾼들이 꼬이기 시작한다. 만고불변의 진리다.

기업도 다르지 않다. 특히 공공기관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 회사가 예산이 꽤나 많다는 사실이 각 계에 퍼지기 시작하면 너나할 것없이 면담요청이 쇄도한다. 십중팔구는 자신들에게 돈을 지원해달라 한다.

우리 회사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과 조직들 역시 비슷한 의도를 갖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최대한 그들의 요구사항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들이 어떤 행사를 준비함에 있어 우리 예산이 필요하다고 하면, 그 행사로 인해 산업계 전체가 누릴 파급효과와 이점을 따져본다. 분명한 편익이 발생한다면 나는 요청사항을 전향적으로 검토한다. 그리하여 실제 꽤 많은 건들이 나를 매개삼아 성사되기도 했다.

다만 그런 곳이 너무 많은게 문제다. 산업계뿐만 아니라 학회, 언론 등등 여러 곳에서 매년 비슷한 요구가 지속된다.

가끔은 우리 회사를 단순 지갑으로 치부하는건 아닌지 의심이 들때가 있다.

그러다 작년에 아주 소란스러운 사건이 발생하고야 말았다.

불행하게도 내가 시민단체로부터 크게 당한 것이다.


재작년부터 시민단체는 우리에게 거액의 사업권을 요구했다.

때로는 공격적이고 노골적으로, 때로는 매우 우회적으로 나를 압박하였다.

수용할 수 없었다. 공정하지 않은 절차로서 특정 단체를 지원하는 것은 직업적 양심에도 맞지 않았거니와 제도적으로도 위법하였다. 잘 달래면서 완곡하게 거절하였고 이 스탠스는 끝까지 변하지 않았다.

시민단체 대표의 자존심에 금이 갔던 것일까. 본인은 이미 시민사회 유명인사로서 활동하고 있는데 감히 새파랗게 어린 놈이 알량한 권한을 놓지않고 유세 떤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여러 루트를 통해 날 공격했다. 전 청와대 비서관이라는 어떤 사람, 어느 회사의 기관장이라는 사람, 권익위원회 진정서 제출, 법원에 집행금지 가처분신청 등등 온갖 다양한 인맥과 수단으로 괴롭히고 협박했다.

아이러니했다. 시민단체야말로 누구보다 공정 사회를 지향해야 하는 조직 아닌가. 그런 곳이 왜 자신들에게 이권을 몰아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를 공격하는 것인가? 만날때마다 그럴듯한 논리를 들이대지만 왜 나는 그 검은 속에서 나는 악취에 얼굴을 찡그리고 마는가.

불필요한 소란을 일으킨 죄로 인사조치를 당하는 한이 있어도 그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다.

나는 잘 버텨냈고 그들의 강도는 여전히 거셌다.

가끔 불안하고 초조함을 느끼긴 했으나 소신을 저버릴 정도는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며 이제는 더 이상 먹힐만한 카드가 없다고 판단한걸까.

최후의 상자를 열었다. 경찰서에서 나에게 연락이 왔다. 우리 회사 앞에서 규탄 집회가 열릴 예정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나 하나를 위해서 축제까지 열겠다니... '참 악질이구나.' 실소가 흘러나왔다.

여기저기서 동원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온갖 수많은 시민단체 명의를 빌려와 거창한 연합체라는 이름을 내건 채 그들의 요구사항을 목청껏 외쳤다.

요지는 간단했다. 내가 다른 업체로부터 뒷돈을 먹은 것 같으니 징계조치하라는 내용이었다.


인생을 살다보면 예기치 못한 고난을 맞닥뜨리게 된다.

나는 지난 일련의 시간들을 버텨오며 때로는 외로움을 느꼈다.

상사로부터 위로와 격려를 받았지만, 정작 회사가 나를 지켜준다는 느낌은 없었다.

처음에는 회사가 나를 결단코 지켜줄 것이라 믿었던 듯 하다.

하지만 이내 그 마음을 접었고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회사는 회사를 위해 행동할 뿐이고, 나 또한 날 지키기 위해 행동해야 함을 일찍이 인지했던 덕분이다.

날 크게 보호해주지 않았다 하여 회사를 미워하진 않는다.

가족이 아닌데 가족처럼 대해주기를 원하는 것은 균형이 안맞지 않은가.

당당하게 내가 한 것은 인정하고, 안한 것은 부정하되,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것 그 뿐이다.

물론 과도하게 책임을 묻는 것 같아 한번 크게 불같이 화를 냈지만 말이다.

다소 쓸쓸하고 씁쓸한 시간이었지만 그럼에도 잘 버틸 수 있었다.

'짜를테면 짤라봐라. 내가 붕어빵 장사라도 하지. 회사 나간다고 굶어죽냐 이새끼들아?'

허세를 가득 담아 불안한 순간들을 그때그때 튕겨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줘야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하지만 홀로서는 법은 알고 있어야 한다.

누군가 쉽게 도와줄수도, 손을 내밀수도 없는 상황이 분명 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간을 헤쳐나가면 분명 사람은 성장한다.

나 또한 그렇다. 억울했지만 많은 것을 배웠고 더 담대해졌다.

주눅들고 싶지 않았다. 따지고보면 이 모든 과정이 찰나의 역할극 같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다소 과도하게 사고를 비약하는 것 같지만 말이다. 이것이 나를 지탱해주던 생존 전략이었다.

누구든지 다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시민단체 대표도, 회사 임원도, 나도 모두 죽는다.

죽음의 관점에서, 우주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모든 것이 별 것 아닌 해프닝이다.

다 지나가고 잊혀지는 것들 투성인데 거기에 내 마음을 쏟아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결국 지금을 보자. 2025년의 나란 놈 과거보다 더 잘살고 있다.

별 보잘 것 없는 인생, 괜히 무거울 필요 없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과거 부와 명예와 권력을 모두 가졌던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이 인생 말년에 내뱉은 말이다.

최근들어 나는 인생이라는 것이 어쩌면 그리 대단치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종종 생각한다.

고로 웬만하면 가볍게 즐겁게 사는 것이 좋다고 느낀다.

이것이 해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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