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가을 줍기
새벽녘, 아직 잠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 전화벨이 울렸다. 이른 아침부터 일하는 친구다.
“밤 주우러 와라. 남들이 다 주워가기 전에.”
백로가 지나고 풀잎에 찬이슬이 맺히는 때, 가을의 성급한 전령은 다름 아닌 알밤이다.
작년 이맘때도 그 친구의 부름을 받고 달려가 호두알만 한 밤을 포대자루 가득 주웠다.
마침 그날 저녁은 고향 친구들 모임이 있어 넉넉히 나누었더니 모두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어릴 적 밤나무 아래에서 놀던 추억 때문이었을까.
후에 부모님에게도 갖다 드렸더니 역시 평생 밤을 먹어왔지만 그렇게 크고 맛있는 밤은 처음이라며 놀라워하셨다. 우리 시골밤과는 너무 차이가 있다며
올해도 그 집 뒤 마당에 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친구가 창고로 쓰는 대장동 마을 집 뒷마당. 그곳 밤나무 몇 그루가 이른 가을에 이런 선물을 내놓는다.
전날의 피곤이 채 가시지 않았지만 서둘러 아침을 대충 먹고 한 시간 남짓 운전해 도착했다.
뒷마당에 들어서니 우수수 성급히 떨어진 밤들이 작년처럼 굵직한 밤이 아니라 조금 자잘했다. 순간 아쉬움이 스쳤지만 토실토실한 알밤을 이내 줍기 시작했다. 나무 밑 수풀에 검은 모기떼들이 수없이 달려들어 방해했지만 자루가 묵직해질수록 마음도 함께 채워졌다.
큰 밤이 있는 나무의 여전히 푸른 밤송이들은 가지에 매달려 있었다. 이놈들을 주워야 하는데 아직도 며칠 더 기다려야 완전히 익을 듯했다.
그래도 좋다. 올가을도 이렇게 좋은 선물을 받았으니 충분하다. 추석 전에 다시 와서 부모님께 드릴 그 굵은 단밤을 주워야지.
다만 아쉬운 건 친구의 임차 기간이 올해 까지라는데, 내년에도 이 가을 풍경을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