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야기

35. 아버지의 작은 소망

by 큰나무


친척의 부고를 받고 급히 지방에 내려가는 길, 본가에 잠시 들렀다. 추석을 앞두고 아버지는 “이번이 내겐 마지막 추석일지도 모른다. 차례를 정성껏 모셔야 한다” 하시며 거듭 당부하셨다.


어머니는 누님과 함께 약관에 나가 생선과 과일을 미리 사고, 김치거리를 사 와 다듬고 계셨다.


“대추도 따야 하고, 알밤도 주워야 하는데 언제 올 거냐?” 하시는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집안일에 대한 염려가 배어있다.


동생이 가져온 커다란 배 한 상자에 “참 좋다” 하시며 기뻐하시고, 내가 가져간 알밤에는 “어디서 났냐? 차례상에 올려야겠다” 하시며 소중히 여기는 모습에서, 아버지가 지켜온 삶의 가치와 소망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버지의 사고와 기억은 이제 종종 과거에 머무르는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중심에는 늘 한결같은 철학이 있다.


예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관혼상제를 중히 여기며, 차례만큼은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믿음. 시대가 바뀌고 많은 집안에서 제례를 번거롭다며 간소화하거나 아예 없애고 있지만,

아버지는 당신의 방식대로 성실히 지켜왔다.


그 고집이 때론 불편하게 여겨지기도 했지만, 지금은 알겠다. 그것은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당신 삶의 뿌리이자, 우리 가족을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끈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지방도 내가 써야 할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오늘의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