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툭' 떨어지는 소리
'툭', 떨어지는 소리
아침부터 휴대폰은 영하 10도, 체감온도 영하 15도를 알렸다. 갑작스러운 한파는 반갑기는커녕 거실 창문에 하얗게 서리를 그리며, 창문을 입 꾹 다문 사람처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문득 작년 오늘이 떠올랐다. 12·3 불법계엄 발표—그날의 서늘한 기운은 온 국민의 살갗을 파고드는 찬바람 같았고, 아직도 살얼음처럼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오늘은 그냥 집안에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몸은 어느새 수영장을 향하고 있었다. 샤워를 마치고 굳은 몸을 풀기 위해 준비운동을 열심히 하고, 곧 물속으로 들어갈 생각에 수경을 눈에 맞춰 올리려는 순간이었다.
‘툭.’
도토리가 떨어지는 듯한 작은 소리. 동시에 수경이 내 얼굴 위로 힘없이 내려앉았다. 콧날을 잇는 이음새가 끊어진 것이다. 오래된 수경이니 낡아 있었겠지만, 이렇게 갑자기 배신할 줄이야.
어이가 없다.
물맛도 보지 못했는데 수경을 쓸 수 없으니 입수조차 할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샤워실로 들어가 따뜻한 물에 몸을 맡겼다. 물속을 헤엄치지 못해 아쉬웠지만, 이렇게 편안히 몸을 씻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점심이나 외식할까?”
외식이라 해봤자 시장 골목의 따끈한 순댓국 한 그릇이지만, 이런 날엔 그 소박한 온기가 더 크게 느껴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