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호박과 호박죽
밭 가장자리에 심은 호박은 여름 내내 무성하게 자라 언덕을 덮고, 밭 안으로도 줄기를 뻗으며 넓은 잎을 자랑한다.
노란 호박꽃 속에는 호박벌이 윙윙거리고, 커다란 잎들 사이로 주먹만 한 초록빛 호박들이 야무지게 달려 있다.
연한 호박잎은 쌈장에 찍어 먹으면 향긋하고, 어린 초록호박은 된장찌개에 넣어 깊은 맛을 더한다.
한여름 따가운 햇볕 아래에서도 무럭무럭 자란 호박들은 어느새 세숫대야만큼 커지고, 가을 햇살 아래 강아지풀과 함께 노랗게 익어간다.
몇 개는 차 트렁크에 싣고 돌아와 이웃과 나누기도 하고, 거실 한쪽에 감과 함께 두면 가을의 정취가 더욱 깊어진다.
겨울이 오면 호박을 손질해 호박죽을 끓인다. 예전에는 한 덩이를 자르는 데도 한참 걸렸지만, 이제는 손에 익어 제법 능숙해졌다.
곱게 썬 호박을 푹 끓이고, 아내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더해지면 팥과 삶아둔 밤도 들어가고, 여유가 되면 쫄깃한 새알도 동동 띄운다.
호호 불어가며 뜨끈하게 먹어도 좋고, 냉장고에 넣어 차갑게 먹어도 별미다. 늦은 밤 출출할 때 한 그릇 떠먹으면 속이 든든해지고, 마음마저 따뜻해진다.
오늘도 가스레인지 위에서는 호박죽이 보글보글 익어간다.
언젠가 아버지는 어머니께 "호박죽을 끓인 게 혹시 양식이 없어서 그러느냐"라고 물으신 적이 있다. 때때로 기억이 흐릿해질 때면, 어린 시절의 배고팠던 기억이 문득 떠오르시는 모양이다.
설이 지나고 난방을 하지 않은 본가의 작은 방에 두었던 호박들은 겨우내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며 물기를 흘리고, 시골집 마당 풀숲에서는 미처 거두지 못한 커다란 호박 두 덩이나 썩어가고 있었다.
올가을에 거둘 늙은 호박들은 본가 지하실에 잘 보관해야겠다. 그래야 봄까지도 무사히 남아, 가족들과 함께 따뜻한 호박죽 한 그릇을 나눌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