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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이야기

22. 꼬부랑 할아버지.

by 큰나무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근육은 힘을 잃고, 뼈마저 곧지 않아 자연스레 허리가 굽어집니다. 그 굽은 허리를 바라보며 아버지는 안타까움을 넘어서, 어느새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내십니다.


“꽃이 만발했대요, 벚꽃 구경 가요.”

말을 꺼내도 “TV에 다 나와.” 하시며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젓습니다.


면사무소에 일이 있어 함께 가자 하면 “네가 좀 다녀와.” 하시고, 꼭 직접 가셔야 한다고 말씀드리면 마지못해 따라나서십니다.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주차된 골목 끝까지 걸어 나오시는 것도 버거우신 아버지. 면사무소까지 함께 가는 길, 그 굽은 허리를 타인에게 보여주기 싫으신 건 아닐까… 괜한 마음이 짠해집니다.


기다리기 지루하신 듯, 의자에 앉아 계시다가 “다 됐냐?”라고 재촉하십니다. 급한 성격은 여전하시니, 내 마음도 덩달아 바빠집니다.


돌아오는 길, 일부러 벚꽃길로 우회했습니다.

하얗게 흐드러진 꽃잎들이 머리 위로 흐르듯 피어 있고,

하늘인지 벚꽃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은 마치 하늘에서 내리는 팝콘 같았고,

아버지의 눈빛이 그 꽃잎들 속에서 반짝였습니다.


잠시나마, 아버지 마음에도 벚꽃이 피었나 봅니다.

굽은 허리 너머로도 세상이 꽃밭 같았습니다.

오늘, 아버지 마음도 분명 꽃밭이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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