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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일상

26. 삿포로 여행(3)

by 큰나무

홋카이도의 봄과 눈

2시간 반 정도 걸린 비행 끝에 삿포로 신치토세 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곧장 오타루로 향하기 위해 열차표를 구매하려 했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딸의 엔화 카드가 결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유를 알 수 없어 당황스러웠지만, 딸은 침착하게 3층 은행으로 올라가 다른 통장으로 이체하고 현금을 인출해 티켓을 살 수 있었다. 딸이 차분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며, 해외여행의 경험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출발까지 30분 정도 여유가 있었지만 다행히 그 안에 해결되어 서둘러 열차에 오를 수 있었다.


오타루까지는 약 1시간 반, 해안을 따라 달리는 기차는 조금 전의 당혹스러움을 달래주는 듯, 바다와 함께 창밖으로 펼쳐진 멀리 보이는 만년설 풍경은 마음을 차분하게 해 주었다.


오타루는 만화 ‘미스터 초밥왕’의 배경으로도 유명하다. 골든위크를 맞아 거리마다 사람들로 붐볐고, 발걸음을 옮기기조차 쉽지 않을 정도였다.


과거 청어잡이로 번창했던 오타루는 많은 돈이 오가며 자연스레 은행이 밀집했던 곳이다. 시간이 흘러 청어는 사라지고, 그 은행 건물들은 지금은 카페나 상점으로 변했지만 당시의 번영은 곳곳에서 여전히 느껴진다.


오타루의 별미는 단연 해산물이다. 특히 '카이센동'이라 불리는 해산물 덮밥이 유명하다. 오타루 관광 거리 끝자락, 현지인들만 안다는 작은 식당에 들어섰다. 의자 열 개 남짓한 좁은 공간이지만, 신선한 해산물을 보는 앞에서 정성껏 담아내는 주방장의 손놀림은 눈을 뗄 수 없게 했다.


5,600엔, 한화로 약 6만 원에 달하는 가격이지만, 입속에서 살살 녹는 대게살과 연어, 성게알, 다양한 생선회를 맛보는 순간 다른 생각은 사라졌다. 여행 전 띄운 '부모여행 10 계명'이 떠올라, 말없이 그저 맛에만 집중했다.


식사 후에는 유리공예와 오르골 샵들을 둘러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혹시나 했던 급한 화장실 문제가 역시나 닥쳤고, 하필 그 순간 화장실 안에서 나오지 않는 사람이 있어 애가 탔다. 다행히 별 탈 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고,

오타루 운하의 야경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다시 삿포로로 돌아와 예약해 둔 생선구이 저녁을 먹은 뒤, 온천에 몸을 맡겼다. 나의 최애 온천물속에서 하루의 피로가 사르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다음 날 아침도 온천으로 시작했다. 조식 뷔페를 간단히 마친 후, 예약한 버스 투어에 올랐다. 창밖으로는 만년설 덮인 산들이 스쳐 지나갔다. 봄과 겨울이 공존하는 풍경 속에서 우리는 후라노와 비에이로 향했다.


후라노는 라벤더로 유명하지만, 우리가 방문한 시기는 꽃이 피지 않은 시기였다. 대신 Farm Tomita에서 온실 속 라벤더와 벚꽃, 정원을 감상했다. 만년설 산맥을 배경으로 피어난 꽃들은 인증샷을 남기기에 더없이 아름다웠다.


비에이는 조용하고 소박한 마을이었다. 마치 우리나라의 읍내 같은 분위기였지만, 깔끔하고 절제된 풍경에서 일본인의 삶의 방식이 느껴졌다. 사진작가 마에다 신조가 정착해 사진관을 연 '탁신관'에서는 비에이의 사계절 풍경을 담은 사진들을 감상했다. 근처 자작나무 숲길은 우리나라 인제의 그것처럼 그림 같은 풍경을 자아냈다.


청의 호수는 화산물과 만년설 녹은 눈물이 섞여 독특한 물빛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그 속에 우뚝 선 고사목들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하며, 호수와 하늘의 색이 대비되어 유명 관광지가 되었다고 한다.


흰 수염폭포는 설산 바로 아래까지 다가갈 수 있는 장소로, 바위 절벽에서 쏟아지는 흰 물줄기가 이름 그대로 흰 수염처럼 보인다. 크지는 않았지만, 눈앞에 펼쳐진 설산의 위엄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버스투어의 마지막 코스는 ‘패치워크 로드’. 농촌의 구릉지에 사방이 뻥 뚫려 펼쳐진 다양한 색의 밭들이 마치 도화지에 색색의 네모 조각들을 붙여 놓은 듯한 풍경을 그려낸다. 동양적이면서도 약간의 유럽풍이 가미된 듯 한 이곳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른 계절에 꼭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함께했던 만년설은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도 계속 창밖을 지켰다. 설산과 바다, 꽃과 자연, 그리고 예상치 못한 변수 속에서 더 깊어진 여행. 홋카이도는 그렇게, 봄과 겨울 사이에서 나에게 잊지 못할 하루를 선물했다.


저녁식사로는 와규세트 메뉴를 골라 구워 먹었는데 질감이 너무 연해 우리 한우의 쫄깃 함과 비교되었다. 그리고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일본 식당들은 하나같이 비좁고 식단이 간소하다. 우리와 문화차이인 듯싶다.


다음날 아침 역시나 온천물에 씻고 호텔조식뷔페는 아주 여유롭게 음미하면서 천천히 이곳 생선 위주로 음식들을 즐겼다.

식사 후 호텔 바로 앞에 있는 홋가이도 도청건물과 정원을 일본인들의 바쁜 출근길 속에 우린 산책하며 여행의 마지막 여운을 깊이 간직하고자 힘껏 눌러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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