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빈집의 하루
시골 빈집에 갈 때마다, 나는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냥 둘러보러 간다"라고 말은 하지만, 막상 도착하면 이것저것 손볼 것들이 눈에 띄고,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버린다. 그런데도 매번 다 끝내지 못한 채 돌아오곤 해서, 빈집은 늘 나에게 숙제를 안겨준다.
이번에는 큰맘 먹고 그 숙제 중 하나를 해결하기로 했다. 옆집 아저씨가 살아 계실 때 쓰시던 벼씨 건조기. 그것에서 날리는 먼지가 우리 집 허청으로 향해 있어, 먼지를 막기 위해 둘러놓은 비닐이 해마다 쌓인 겨 위에 또 덧씌워지기를 반복하며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더는 그대로 둘 수 없어 비닐을 걷어내기로 했다.
장갑을 끼고 모자를 눌러쓰고
비닐을 잡아당기니 곧바로 먼지가 일기 시작했다. 마침 바람까지 불어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바람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당기기를 반복하며 비닐을 하나하나 걷어, 둘둘 말아 처마 밑에 정리했다.
그 모습을 보시던 어머니께서 “언젠가는 내가 하려고 했는데, 아들이 다 하네” 하시며 웃으셨다.
어머니는 이제 할 힘도 없지만~!
기울어가는 빈집에는 버릴 것도, 치울 것도 참 많다. 하지만 무작정 버릴 수만은 없다. 예전 어르신들이 쓰시던 물건들에는 손때와 정이 묻어 있어 함부로 내치기 어렵다. 시간이 멈춘 듯한 그 공간 안에는 추억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화단의 목련나무는 너무 자라 가지가 무성했다.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톱으로 가지를 쳐내고, 다른 꽃나무들도 전지해 아담하게 다듬었다.
그리고 처마 밑에 있던 벌통도 꺼내 깨끗이 청소한 뒤, 양지바른 장독대 옆에 놓아두었다. 올여름엔 꿀벌이 들어와 자연산 꿀을 맛보게 되기를 은근히 기대해 본다.
창고에서 사다리를 꺼낼 땐 몰랐지만, 사용 후 제자리에 놓으려다 바닥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새끼 고양이였다. 길고양이가 창고 밑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아 기르고 있었던 것이다.
혼자 있는 것도 이상했지만, 일단 포근한 자리를 만들어주고 조용히 물러났다. 잘 살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뒤뜰에선 이름 모를 작은 새들이 먹이를 물고 날아다녔다. 어디선가 새끼들을 키우는지 쉼 없이 들락거린다.
사람의 기척이 뜸해진 빈집은 이제 고양이와 새들의 낙원이 된 것 같다. 그곳에서 일하는 나는 오히려 잠시 들른 손님 같았다. 그렇게 조심스럽고 송골송골 땀 맺히고 오히려 힘이 나는 빈집에서 하루가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