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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암 4기 극복기

20. 지인의 소망 ' 나이스 샷'

by 큰나무


오랜만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한때 같은 회사에서 일하던 선배이자 동료였던 사람이다. 작년 가을에 만나자던 약속이 여러 사정으로 미뤄지다 결국 "죽기 전에 점심이나 같이 하자"는 그의 연락을 받고, 그의 집에서 조심스레 마주 앉게 되었다.


그가 간암을 앓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고, 가끔씩 안부 전화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격려하곤 했다. 그는 나보다 약 1년 먼저 간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았다. 당시 의사로부터 ‘죽어 있는 암’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깨끗하게 제거되었고, 항암치료조차 필요 없다는 말에 일상으로 금세 돌아가 활기찬 모습을 보이던 그였다.


하지만 일 년쯤 지난 어느 날,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대퇴부 골절 사고를 당했고, 철심을 박는 수술 과정에서 뼈에 전이된 암세포가 발견되었다. 검사를 통해 그것이 간암과 같은 종류의 세포임을 알게 되었고, 이후 6개월 간격으로 어깨뼈, 갈비뼈, 그리고 이번에는 엉치뼈까지 전이되어 현재는 방사선과 항암치료를 병행하고 있다고 한다.


그의 체중은 이제 45kg 남짓. 지팡이에 의지해 선 그의 모습은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듯 서있는 허수아비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직접 운전하며 외출을 한다는 말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의 긍정적인 태도와 평온한 얼굴은 오히려 나에게 위안을 안겨주었다. 그간의 치료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나 역시 요즘 피부에 핀 붉은 반점과 극심한 가려움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두 달 반 이상 이어진 증상에 잠을 이루기 힘든 날들이 많았는데, 그는 “항암 후유증으로 1년 가까이 그런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며 나를 다독여 주었다. 그의 말은 묘하게 힘이 되었고, 근무 시절 늘 명쾌한 해답으로 내 답답함을 풀어주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여전히 그는 내 마음을 녹여주는 사람이다.


대화 말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한 번만이라도 필드에 나가 공을 쳐봤으면 원이 없겠어.”

30년 넘게 낚시 다음으로 즐겨온 취미였던 골프. 그는 그저 한 번쯤 '나이스 샷!'을 외쳐볼 수 있기를 소망하고 있었다.


그의 소박하고 간절한 바람이 꼭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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