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야기

26. 아버지는 벤자민 버튼

by 큰나무

항상 누나가 대신해 오던 아버지의 병원 동행을 이번에는 나와 아내가 함께했다. 본가에서 병원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 비가 오는 날이라 우리는 우산을 들고 휠체어를 밀고 나섰다.


아버지는 승용차를 타고 가는 줄 알고 나오셨기에, 휠체어를 보시곤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이셨다. 하지만 병원 주차장 앞이 늘 혼잡하고, 주차를 하고 돌아오는 시간을 감안하면, 처음부터 휠체어를 밀고 가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고 판단했다.


아버지는 휠체어로 가는 걸 더 힘들다고 여기시는 듯했지만, 결국 설명을 드리고는 휠체어에 타셨다.

아내는 아버지에게 우산을 씌워드리고, 나는 내 우산을 어깨에 기대어 잡은 채 휠체어를 밀기 시작했다.


비 내리는 골목길.

휠체어에 앉은 아버지는 “이 골목으로 가자, 저 길이 더 빠르다”라고 말씀하시지만, 나는 그냥 묵묵히 힘껏 밀고 간다.


아버지는 나보다 체중이 20kg쯤 더 나가시는 데다, 병원 앞 오르막길은 생각보다 경사가 심하다. 숨을 고르며 힘껏 휠체어를 밀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아버지, 살 좀 빼셔야겠습니다…”


병원에 도착해 비뇨기과에 접수하고 기다리는 동안 아버지는 “언제 진료야? 얼마나 더 기다려야 돼? 지금 몇 번째야?” 하고 연신 물으신다.

작게 말하면 안 들리시고, 조금 크게 말하면 대기실 사람들이 다 우리를 쳐다보는 것 같다. 민망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


진료 후 소변 검사를 해야 했지만, 긴장해서인지 소변이 나오지 않는다고 하셨다. 결국 소변줄을 이용해 방광에 남은 소변을 뽑아내고 다시 진료를 받았다.

간호사가 제대로 못 한 건지, 원래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아버지는 “많이 아프다”라고 하신다.

내 경험으로는 크게 아프지 않았던 기억이 떠오르지만,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시니 간호사의 실력이 의심스러워지기도 한다.


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휠체어에 앉아 계신 아버지를 보니 문득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떠올랐다.


주름진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나 시간이 갈수록 젊어지다, 결국 아이로 돌아가는 인생을 그린 영화.

시간의 흐름, 돌이킬 수 없는 세월, 그리고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보여주던 그 장면들이, 지금 아버지의 모습과 겹쳐졌다.


예전엔 세상을 호령하던 분이셨다. 결단력 있고, 패기 넘치던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요즘 아버지는 몸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다며 “이제 얼마 못 살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신다.


아버지, 지금도 이 정도면 참 건강하신 편입니다.

부디 화장실만이라도 스스로 다니실 수 있도록 조금씩이라도 자주 움직여 주세요.

그것이 지금 아버지에게 가장 필요한 운동이고, 자립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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