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는 도구에 대하여
“초등학교 시절의 일이다.”
패기 좋게 적었지만 그다음이 망설여진다. 손이 선뜻 움직이지 않는다. 습관적으로 학교시절을 떠올리고 말았다는 사실에 아연실색한다. 하지만 학교시절에 관해 지금까지 많이 말하고 써 왔기에 비로소 멈춰 설 수 있는 순간이라고 생각하니, 이 자각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각각의 리얼리티가 존중받는 쪽으로 세계는 변화하고 있다. 최근 들어 불미스러운 일이 잇따르고 있긴 하지만, 나이브한 믿음으로 더 나은 세상을 바라본다. 흑백의 세계에서 벗어난 지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흐른 것은 아니다. 총천연색의 세상이 있고, 더 섬세하게 표현하려는 노력도 비교적 새로운 것이다. 나 역시, 어느 한쪽으로 환원하는 순간 손상되는 리얼리티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깨달은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 사실에 깨닫고 난 후, 세계의 많은 부분이 다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뻔뻔하게 글을 쓰고 있는 것도, 남을 의식하기보다 다만 보고 들은 것을 더 절실하게 표현하려 애쓰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종종 나의 발목을 잡는다. 흰 화면 위에 온갖 기억과 감상과 가치관을 토해놓으면, 그것에 무슨 의미가 있지?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문학도 아니고 예술도 아닌 것 같은데, 언제까지 이 짓을 하고 있을까? 말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리얼리티도 존재하지만, 일단 말로 해 놓으면 왜곡밖에는 일어나지 않는다. 모든 게 왜곡이고 의무부여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원망이나 억하심정 혹은 부조리의 감정이 먼저 있고, 그 상태에서 과거와 마주하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재구성하고자 하는 것이 ‘학교‘로 구체화되었음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유년을 제도화된 시간으로 읽어내려 할 때 나는 무엇을 바라는가.
순수한 기억의 덩어리는 소중히 대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나로 있기 위해 불가결해 보이는 어떤 시절이, 더 나은 표현에의 욕망이나, 저열한 인정의 욕구 때문에 왜곡되는 것은 아닐까 두렵다. 펜이 나아가지 않는다. 내 글을 접한 독자가, 유약했던 소년의 마음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욕심이 있다. 그러한 욕심과 대조되는 빈약한 표현력을 원망하며, 쓸데없는 미사여구를 하나 둘 붙여나갔다. 그러나 유년이든 제도화된 시공간이든 재구성되는 시점에서 의심스러운 것은 매한가지 아닌가. 순수성에 대한 공포가 재현의 구조적 문제가 된다. 기억은 나에게 돌아오지 않으며 언제나 다른 손에 건져질 뿐이다. 과거와 마주하는 용기란 잃어버린 것을 찾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지금의 방향을 숨지기 않겠다는 마음 위에서 가능해진다. 앞으로의 변화에 대한 은근한 예감 없이는 불가능하다. 떠올리는 시점은 언제나 지금. 현재의 시점에서 미래에 대한 방향성을 保持한 채 과거를 길어 올리는 일임을 잊지 말자. 그물에 걸린 부산물을 보며 실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설명하는지 안다면,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태도의 유효함에 깨닫는다면…
과거로의 시간여행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우리는 과거와 선형적으로 연결된 땅에 발 딛고 있지 않다. 우리는 얇은 단편집 같은 존재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관습의 힘으로 살아낸다.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올 때, 마지막에 쑥 하고 미끄러진 관성으로 여기까지 밀려왔을 가능성이 크다. 최초에 쏘아 올려진 힘으로 살아가다가 우연하고 돌발적인 계기에 처해서 멍해지는 것. 설명을 덧붙이다 어느 시점에서 다시 출발하는 것.
인생, 그러니까 스스로를 서사로 인식할 때란 언제나 뒷수습이지 않나. 나는 나의 뒤치다꺼리, 밀린 설거지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에 완전히 몰입하는 순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살아버린 것과 계속해서 협상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다. 우연히 떨어진 사진과 손 편지가, 몹쓸 마음이 버리지 못한 과거가, 우연하고 돌발적인 방식으로 이미 한 선택을 어디에 어떻게 위치시킬 것인지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것이 곧 ‘나’이다. 진지한 글쓰기든 어찌 되든 좋은 수다거리든 ’나’가 대상이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어떠한 파란만장한 인생도 마찬가지. 무언가를 찾고 있는 마음은 언제나 은근하게 존재해서, 불쑥 튀어나와 나를 당황케 하는 것에도 이내 익숙해질 수 있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