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대화에서 생긴 일 - 1편

나쁜 사람은 누구야?

by 이응사

「問い出し」


직역하자면 ‘질문내기’ 정도가 되겠다. 이 날의 퍼실리테이터는 ‘질문내기’에 공을 들이는 타입이라 참가자의 다양한 질문—내밀한 것, 일상적인 것, 철학적인 것—을 충분히 경청할 수 있었다. 밴드의 라이브 공연 도중에 진행된 철학대화이기 때문일까? 표현의 욕구가 강한 사람들이 여럿 있었는지 대화의 주제는 「伝わるとは何か?」(전해짐이란 무엇인가?)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나의 흥미관심은 영원히 후보군에 머물게 된 문장에 박혀 빠지질 않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입을 떼던 그녀와 닮은 누군가를 떠올리곤, 그녀에게 특별한 인상과 기대를 부여하고 말았던 스스로가 신경이 쓰였다. 그녀는 갑자기 울기 시작했기 때문에 짧은 순간이지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나쁜 사람은 누구야?“


질문은 그녀의 아이로부터 나왔다고 한다. 그녀는 무어라 대답을 하지 못했다. 대답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여러 상념이 몹시 서러웠는지 미뤄두었던 울음을 터뜨렸다. 수정 같은 눈물이 완만한 뺨을 스치고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힘겹게 말을 끝 마치고 가라앉은 분위기를 머쓱한 웃음으로 구원하는 얼굴에서 서글픔이 느껴졌다. 무언가 제쳐두고 웃어 보이는 이들은 하나같은 공통점을 보이는 것인가. 단지 그 사실이 서글퍼져 망연자실하게 되었다.


내부 깊은 곳서 내밀하고 사적인 슬픔에 덜컥 덜미를 붙잡혀서 갑자기 울기 시작하는 예민한 감수성의 소유자들 앞에서 더 이상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된 사실 또한 철학대화를 하며 얻은 하나의 자기변용이라 생각한다. 동기화 될 수 없는 채로 함께 울고 웃는 세상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외롭고, 또 어떤 때는 그런 세상이기에 힘을 얻기도 한다.


다시 그녀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뭉툭한 답만이 있다.


좋고 나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가령 전쟁을 어떻게 알려주면 좋을까, 생각해 보았지만 잘 모르겠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죽고 죽이는 일. 근엄한 표정을 하고 있지만서도 실은 아주 우스꽝스러운 일. 비집고 나오는 실소를 억누르고 잠자코 있는 일. 무의미하고 불가해한, 엽기적인 사실의 어디까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자신의 아이에게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어떤 심정일까. 두렵다. 아이의 질문엔 힘이 있다. 아이에 대해 가지는 나이브한 인식 때문일까, 아니면 질문 자체에, 그 구조와 문맥에 힘이 실려있는 걸까. 아이의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대답을 종용하기도 하지만, 단지 그것 때문에 이토록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은 아닌 듯하다.


쉽사리 지나치기 힘든 절경처럼. 박스 사이로 보이는 노숙자의 맨발처럼 나를 멈춰 세우곤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다. 반쪽짜리 질문은 발화와 동시에 많은 사실들을 죽인다. 원령공주에 등장하는 사슴신이 떠오른다. 웃고 있는 듯도 하고, 호기심 어린 눈빛인 듯도 하며, 아무 감정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미묘한 표정.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생명을 피우고 동시에 거두어들인다. 생성과 소멸, 삶과 죽음이 한 얼굴 안에서 아무 갈등 없이 양립한다. 그 표정이 이제는 아이의 것임을 안다. 열심히 쌓아 올려온 것들, 쌓느라 보았으되 보지 않은 척 지나쳐온 것들을 직시하게 하곤, 이내 다른 것에 정신을 홀랑 빼앗긴 채 훌쩍 떠나버리는 아이의 얼굴. 불현듯 막다른 길에 마주하는 일. 시선을 거둘 수 없는 표면… 아이의 얼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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