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입맛에 맞는 음식이란 매우 중요한 생존 요소 중 하나이다. 튜브 고추장과 깻잎캔이 많은 이들의 해외여행 동반자가 되는 것도 이에 대한 하나의 방증일 것이다.
오래전에 터키와 미얀마를 여행한 적이 있었다. 두 곳 모두에서 지역의 맛과 향이 강한 음식을 많이 접했고 꽤나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특히 터키에서의 마지막 날 점심식사가 아직도 제법 생생하다.
여행의 종막에서 그곳의 풍경을 하나라도 더 눈에 담아두려 부지런히 거닐던 우리 일행은, 우연찮게 매우 익숙하고 친근한 빨간색 지붕 그림 간판을 발견하게 되었다. 피자헛이었다. 그 순간 우리는 일제히 외쳤다.
- 피자헛이다!!!!!
마치 환희와도 같았던 외침에 얼마나 많은 설렘이 서려 있었는지, 술렁이는 자들의 등 뒤로 쏟아지던 오후 햇살은 또 얼마나 강렬했었는지. 딱 20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의 풍경이 잊히지 않는 하나의 컷처럼 무의식 어딘가에 살아있는 듯하다.
그렇게 구성원 간의 암묵적 동의에 힘입어 그날의 마지막 만찬 메뉴가 정해졌다. 이제 곧 고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을 터였지만 피자헛으로 향하는 모두의 발걸음에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다.
이 글로벌 기업의 메뉴판에서 가장 주요해 보이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양고기 피자'였다. 우리가 여행 내내 피하고 싶었던 양고기였다. 이미 양고기를 베이스로 한 피자가 몇 가지 있었고 때마침 새로운 메뉴가 더 출시된 듯 보였다.
- 아. 피자에도 (양고기가)...
말끝이 맥없이 흐려졌다. 샐러드바에도 이제까지의 여느 로컬 식당 어디에서나 맛보았던 강하고 센 향신료를 잔뜩 덧입은 음식들이 가득했다. 실망감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이는 실망을 넘어 흡사 절망과도 유사한 감정이었다. 그렇지만 한국 패스트푸드점에서도 김치불고기버거를 팔고 우리는 그것을 좋아하니, 양고기 피자는 당연한 이치였다.
그리고 이러한 연유로 우리는, 한국을 벗어나 미지의 세계로 향할 때 캐리어 한 켠을 기꺼이 라면과 김과 꼬마김치의 자리로 마련하곤 하는 것이었다.
콜롬비아는 예외였다. 이토록 먼 지구 반대편이었지만, 콜롬비아 음식에는 미각과 후각을 곤란하게 하는 강한 향신료가 거의 없었다. 콜롬비아식 백반이라 함은 보통 소금을 뿌려 구운 소고기/닭고기/돼지고기/생선, 감자구이, 날리는 쌀밥, 레몬과 소금을 뿌린 샐러드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유일한 '외국 향(香)'이라 할만한 것이 고수(cilantro 실란트로)였는데, 이는 나로 하여금 이 땅에의 정착 속도를 기하급수적으로 앞당기는 필요충분조건이 되는 데에 손색이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고수를 사랑하는 자였기 때문이다.
하하하.
콜롬비아 정착 초기에는 새로운 현지식을 접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그 음식이 한국의 어떤 음식과 무엇이 비슷한지를 끊임없이 분석했던 것 같다.
- 이건 꼭 두부 같다.
- 그러니까 한 마디로 이게 김치인 거네.
양국 음식의 맛뿐만 아니라 각각의 문화적 기능까지도 나름의 시각으로 살펴보며 그 유사점과 차이점을 알아내려 애썼다. 정보에 대한 분류와 규정을 통해 이방인으로서 나의 위치와 경계를 분명히 해 보려는 시도였을까.
콜롬비아에 사는 동안, 현지인들의 집에 식사 초대를 받아 간 적이 여러 차례 있었다. 초대한 집에서 내어 준 음식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은 'Ajiaco (이하 '아히아꼬')'라는 콜롬비아식 닭고기 수프 요리이다.
아히아꼬는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와 쿤디나마르카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 음식으로, 닭에 감자, 옥수수 등을 곁들여 오랜 시간 푹 고아 끓이는 영양식이다. 분이 많이 나는 감자가 으깨져 걸쭉해진 수프 안에 백숙이 들어가 있는 모양새인데, 거기에 생크림과 아보카도, 케이퍼를 함께 넣어 먹는다. 이 재료들의 합이 부조화처럼 보이지만 막상 접해 보면 '아으, 잘 먹었다.'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속이 든든해지는 음식이었다.
아히아꼬를 처음 접하던 날에도 이 새로운 메뉴의 역할과 기능을 발견하기 위한 여러 면에서의 분석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어떠한 결론에 도달했다.
"아~ 이거 삼계탕이네!"
삼계탕이니까 몸보신용 음식이었다. 단순하게 닭이 들어가 있는 탕이라서 삼계탕인 것은 아니고, 체온 유지가 중요한 해발 2,600m의 냉랭한 고산 기후에서 오랜 세월 동안 보고타 사람들의 몸을 따뜻하게 하며 에너지를 보충해 주고 있는 음식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몸속 순환을 돕고 체내 항상성을 유지하게 해 준다는 영양학적 측면에서 우리네의 중복 삼계탕과 매우 흡사한 의미를 갖는다.
인간의 몸을 좋게 하라는 음식 본연의 기능도 훌륭한데 맛도 좋으니, 아히아꼬는 이후로 서늘한 바람이 스쳐 한기가 돌 때면 나도 모르게 한 번씩 찾는 음식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 아.. 아히아꼬나 한 그릇 먹고 싶네.
그렇게 한 그릇씩 사 먹으면 그 뜨끈함에 몸과 마음이 이내 훈훈해지는 듯한 힘을 얻곤 했던 것이다. 기분 탓만은 아니었으리라.
태생이 전통 가정식인 아히아꼬는 콜롬비아인들에게는 단연 '엄마의 사랑'으로 치환되는 음식이다. 그런 면에서 이것은 가정 내에서 흡사 된장찌개나 김치찌개의 역할도 할 것이다.
객지 밥에 지쳐있던 입맛이 한순간에 평온을 되찾으며 '아, 집이구나' 생각이 들게 하는 향수ㅡ 화려함이나 멋들어진 꾸밈은 없으나 오랜 시간 푹 고아 끓이는 동안 정성과 애정을 담뿍 머금은 콜롬비아인들의 소울푸드가 바로 아히아꼬인 것이다.
<Fanny할머니가 3시간을 끓여 내어 주신 Ajiaco>
나의 첫 번째 콜롬비아 친구였던 루스(Luz Esperanza)의 집에 초대받았던 날을 기억한다. 집과 학교 근처만 다니며 활동반경이 좁았던 당시, 도시 중심을 벗어나 처음으로 산 중턱에 있는 마을에 들어서며 매섭고 날 선 공기에 마음이 움츠러들었던 그날.
루스가 정류장으로 나를 데리러 나와 주어 함께 걷다가 잠시 꽃집에 들러 루스의 어머니께 드릴 꽃다발을 샀다. 꽃을 사고 받은 잔돈을 그대로 손에 쥐고 나와 길에서 주섬주섬 챙겨 넣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던 루스가 마음에 조바심이 났는지 빨리 집어넣으라고 재촉을 해왔다.
여기에서는 조심해야 한다는 코멘트도 이어졌다. 보고타에 온 이후로 나는 늘 전에 없던 경계심을 품고 조심해오고 있었는데 '여기'에서는 '그냥 보고타'에서보다 더 조심해야 한다고 하니, 안 그래도 낯선 공기가 더 소스라치는 불안감으로 다가왔다.
루스는 나보다 10살 가까이나 어린 친구였지만 그 순간의 유일한 보호자였고 기댈 안식처였다. 그렇게 15분여 동안 열심히 계단을 올라 그녀의 집에 도착했고, 환한 미소의 루스 어머니가 나를 힘껏 안아주며 'Bienvenida!(환영해요)'로 인사해 주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의 첫 아히아꼬를 만났던 것이다.
'맛있다. 어머, 너무 맛있다!'를 연발했던 것 같다. 몸속에 뜨끈하고 담백한 것이 들어가니, 오는 동안 잠시 동요했던 마음이 이제야 비로소 한결 누그러지며 평안해지는 것 같았다.
함께 둘러앉아 식사를 하며 우리는 콜롬비아 음식과 한국 음식에 대해 꽤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마음을 담아 정성껏 끓여진 아히아꼬는 당시 내 인생에서의 첫 독립생활, 그것도 이역만리 남미 땅에 발붙이려 애쓰며 씩씩한 척했지만 실은 쪼그라들어 있었던 내 마음에 수많은 위로의 말보다 더 큰 울림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낯선 땅에서의 외로움과 두려움, 설렘과 부담의 공존을 한 그릇의 음식에 다 풀어버린 것만 같은 날이었다.
그리고, 수년이 지난 후에 아이들의 학교에서 만난 학부모 Sandra의 초대로 또다시 융숭한 아히아꼬 대접을 받게 되었다. Sandra의 친정어머니인 콜롬비아 할머니 Fanny는 우리에게 보글보글 끓고 있는 큰 솥을 보여 주며, 오전 내 몇 시간 동안이나 이 아히아꼬를 끓이고 있었다고 이야기하셨다.
이 음식을 어떻게 만드는지, 오늘 왜 이 음식을 우리가 나누고 싶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특유의 유쾌하고 친근한 콜롬비아식 화법으로 전해졌다. 단순한 음식 그 이상- 그것은 그들의 전통이었고 사람 사이의 온기였다. 때로 현지인들에게 한국의 김치를 맛 보여 주려 했던 나의 행위도 이와 일맥상통할 것이다. 대단한 멋들어짐은 없지만 우리의 식탁에 빠지지 않고 주연급 조연으로서 언제나 등장하는, 매우 일상적이고도 변화무쌍한 김치를 선보이는 그 마음도 감히 전통이며 정감이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입맛은 단순히 맛에 대한 호불호를 가리키지 않는다. 한 사람의 입맛은 그가 자라 온 환경, 배경, 문화가 총체적으로 반영된 일종의 세계관이기도 하다. 감사했던 호의를 통해 그들의 음식을 기꺼이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며 나는 어쩌면, 그곳의 생활인으로서 살아가지만 여전히 겉도는 이방인이기만 했던 그 존재의 경계를 조금은 허물 수 있지 않았을까.
몸보신용 영양식이면서 동시에 엄마의 사랑인 아히아꼬.
나에게는 그것이 "먼저 내밀어 준 그들의 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