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일 년에 두 차례 우기가 되면 오후 몇 시간 동안 세찬 비가 쏟아진다. 그리고 다음 날 오전이면 해가 쨍쨍 나서 전날 축축해진 땅을 바짝 말려 주곤 했다.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또 비가 쏟아졌지만 아침엔 다시 해가 쨍쨍이니 우기여도 내내 우중충한 공기는 아니었다.
그런데 요즘은 보기 드물게 매우 축축한 날씨의 연속이다. 매일같이 시도 때도 없이 비가 온다. 그러기를 벌써 3-4개월이고 덕분에 아이들은 오랫동안 콧물감기를 면치 못하는 중이다.
지난 일요일 오후,
오랜만에 맑은 듯 보이던 하늘이 영락없이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미 외출해 있었고, 남편이 드라이브를 가자고 제안해 보고타 시내에서 1시간 반 가량 떨어진 교외로 나갔다. 굵은 비가 곧 쏟아질 듯 말 듯, 먹구름이 몰려오는 사이로 햇빛이 비치는 알 수 없는 하늘이었다. 운이 좋으면 저 검은 구름들이 곧 사라지고 상쾌한 드라이브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허름한 외관에 어울리지 않게 그 맛이 손에 꼽히는 고깃집이었는데, 가는 길과 같은 방향에 아이들이 놀만한 체험농장이 있다고 들었던 것이 생각나 먼저 그곳에 들러보기로 했다. 점심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고깃집은 저녁으로 미루어 두었다.
신나게 몇 시간을 놀고 나오니 해질 무렵이 되어 기분 좋게 처음 목적지로 향했다. 이제 배가 허기졌는데 도로가 막혀 있어 다른 루트를 찾아보았다. 우리가 이곳에서 주로 사용하는 웨이즈(waze)가 안 막히는 무료 도로를 알려 주어 (아무 의심 없이) 그 길을 선택하고 출발해 얼마 동안 기분 좋게 달렸다. 이런저런 수다를 떨며 가던 중 마지막 좌회전 길로 접어드니 갑자기 눈앞에 훤한 산 길이 펼쳐졌다. 수년 전 구글맵을 따라갔다가 굽이굽이 산중에서 애를 쓴 기억이 순간적으로 소환되었지만 별 일이야 있을까 생각하며 그 길로 들어섰고, 그때까지만 해도 잠시 후 닥칠 고난을 예상하지 못했다. 오는 내내 남편은 차가 움직일 때마다 전에 없던 소리가 난다며 신경을 쓰고 있었는데, 그것은 몇 분 후 마주할 일에 비하면 신경 쓸 거리도 되지 않는 것이었다.
한 5분쯤이나 올라갔을까. 눈앞에 꽤 경사진 언덕길이 나타났다. 요즘 우기보다 더 잦은 비가 온 탓인지 길이 매우 엉망이었다. 브레이크를 밟고 있어도 차가 뒤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이러한 상황에 아주 잘 어울리는 불길함이 차 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차체가 낮은 차라 작정하고 세게 밟지 않으면 그 언덕을 오르기가 녹록지 않아 보였으므로 남편은 풀파워를 가동하여 단번에 지나가기 위해 일단 몇 보 후퇴를 작전하였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을 몰라주는 야속한 미끄럼 산길을 상대로 세운 작전은 통하지 않았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쓸수록 차는 뒤로 미끄러져 내렸고 결국 오른쪽 앞바퀴와 뒷바퀴가 깊이 패인 도랑으로 빠지고 말았다. 시간은 오후 여섯 시를 향해 가고 있는 일몰 직전, 인적 없는 산 속이었다. 일정한 간격의 가로등이 옅은 빛을 뿜어 주고 있었지만 별로 위로가 되지 않는 기분이었다.
남편이 상황을 살피기 위해 차에서 내렸다. 나도 같이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심란해진 얼굴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우리가 오르려 했던 반대편 언덕에서부터 내려오고 있는 차량이 보였다. 나는 창문을 내리고 남편에게 소리쳤다.
- 저 앞에 차!!
남편은 언덕으로 올라갔고 곧 그 차량 운전자일 것으로 예상되는 한 남자와 함께 우리 차 쪽으로 내려왔다. 두 사람은 차 전후방을 살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는 동안한 명 더, 그리고 또 한 명 더, 언덕으로부터 마치 구세주 같이 느껴지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저들이 차를 살펴보다가 가망이 없겠다는 표정으로 씁쓸히 고개를 가로젓기라도 하면 어쩌나 내심 불안해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매우 빠르게 해결책이 던져졌다. 빛의 속도로 방법이 고안된 것은 비단 여러 사람이 모였기 때문은 아닌 듯 보였다. 마치 이런 상황이 어쩌면 종종 일어나는 것인 듯, 그렇게 자연스러웠다-
모두가 제 일처럼팔을 걷어붙이고 크고 작은 돌들을 날라 바퀴 앞을 채우기 시작했다. 도랑 높낮이의 차를 줄여 차량을 빼내는 계획이었다. 업무를 분장하지 않았지만 맨 처음 내려온 사람이 마치 리더인 듯 운전대를 잡고, 몇 명은 뒤에서 차를 밀고, 남편은 보닛에 무게를 실어 들려 있는 왼쪽 바퀴가 헛돌지 않도록 했다.
쌔애애애앵~!!! 부우우우웅~!!!!
바퀴가 세차게 돌며 완벽한 진흙이던 땅에 마른 가루를 날렸고 이내 타이어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돌의 위치를 옮겨가며 수차례 이 작업을 반복하는 동안 때깔 좋던 모두의 행색은 점점 남루해져 갔다. 이미 검은 땅거미가 몰려와서서히 온 산을 뒤덮는 중이었고, 파리한 가로등에게서는 존재의 가치를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과연 오늘 저녁에 이 산을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 것인가 의문이 드는 꽤나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아이들은 마치 다른 세상 속에 있는 듯 연신 깔깔거리며 그저 좋은 기색이었다. 험한 산지든 마른 광야든 아이들은 엄마, 아빠만 함께 있다면 모든 것이 안심되고 그저 좋은 것이었다. 신나게 웃고 있는 꼬맹이들의 얼굴이 찬 공기에 떨리기에 차에서 점퍼를 더 꺼내 두 개씩 입혀 주었다.
작전은 몇 차례 실패했고돌 자리를 재차 고르는 작업이 반복되었다. 그러던 중 '리더 아저씨'가 나에게 어디로 가는 길이었냐고 물었다. 나는 'Rosal'이라고 대답했다. Rosal은 우리가 가려던 고깃집이 있는 동네 이름이었다. 중간중간 그들은 우리의 목적지에 대해 이야기했고, 이미 그 방향에서부터 오고 있던 사람들은 이 언덕을 넘어가는 길이 쉽지 않다, 여기보다 저쪽 길이 더 엉망이다 등등의 말들을 주고받았다.
Uno, dos, tres!!!
마지막 외침에 이번이 반드시 마지막이어야만 한다는 암묵의 메시지가 실려 있는 듯했다. 거대한굉음 끝에 마침내 차가 도랑에서 빠져나왔다. 우리는 다 같이 환호를 질렀다.
치열했던 사투의 결과로 오른쪽 타이어는 장렬히 전사했다. 풀액셀을 밟을 때 밑에 있던 돌에 닿아 터져 버린 듯했다. 7시 무렵이었지만 이제 산속은 너무나 캄캄한 밤이었다. 남편은 트렁크에서 스페어타이어를 꺼내 갈았고, 이 작업은 신이 나는 기분마저 들게 했다. 이제 집에 갈 수 있다ㅡ
사람들은우리가 갈 길에 대해 걱정해 주었다.
- Rosal로 가려면 이 언덕을 지나야 하는데 그 길이 정말 쉽지가 않을 거예요.
- 아니요, 아니요~ Rosal에 안 가도 돼요.저희는 보고타에 살아요!
우리가 그 언덕을 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다들 짧은 탄성을 뱉으며 다행이라 여기는 듯했다. 왔던 길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후진으로 산길을 내려가야만 했다. 리더 아저씨는 끝까지 리더답게 손수 운전해 우리 차를 넓은 공간까지 이동시켜 주었다.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
그들은 은인이었고, 밀려오는 고마움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었지만 작은 성의를 끝끝내 고사한 우리의 영웅들은 그렇게 유유히 자신들의 차로 돌아갔다.
우리는 산길을 내려와 고깃집과 점점 더 멀어지는 방향을 향해 속력을 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남편과 나는 연신 같은 말을 반복했다.
- 어떻게 이렇게 친절하지?
- 어떻게 이렇게 친절할 수가 있지?
- 진짜.
너무 고맙고 그저 고마운 날이었다.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가 만약 한국에서 이런 일을 겪었어도 이 정도로 친절했을까?'
그리고 그 물음에 그와 나는 몇 초간 각자 생각을 하는 듯했지만 이내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 근데 한국에서는 일단 이런 일이 일어나지를 않겠지.
- 아무리 산길이어도 잘 닦여 있어서 도랑에 빠질 일 자체가 거의 없겠지.
- 그리고 설령 도랑에 빠진다 해도 지나가는 사람에게 도움 요청을 할 일이 없겠지.
- 그러게, 그냥 애니카를 부르면 되니까.
집으로 가는 길에 허기진 배를 양꼬치로 달랬다. 남편은 진흙탕에서 구르기라도 한 듯 온통 엉망이었고, 나는 마음을 쓰느라 애를 먹었으므로(실은 그냥 너무 배가 고파서) 이제까지 중 가장 많은 꼬치를 시켰다.
우리는 이제 그 어떠한 경우에라도 다시는 무료 도로를 이용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그 어떠한 경우에라도 산길로는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