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도 병원에 안 가는 이유

by dia soleado

사실 외국살이는 생각보다 해볼 만한 생활이다.


말이 다르고 사는 방식이 다른 것은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적응하게 된다. 사람 사는 모양이야 어디든 비슷하지 않은가. 치안에 대해서는, 이곳도 아이와 여자와 노인들이 즐겁게 살아가는 곳이니 외국인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마음이 흔들릴 때면 이성을 출동시켜 그 동요를 잠재우곤 했다.

어쩌면 그런 것보다 더 큰 고충 중의 하나는 버젓한 한인마트 한 개가 없다는 것이다. 라면과 두부와 배추를 사러 가기 위해 3시간 정도를 확보해야 하는 일상. 사실 실제적인 어려움은 그런 것이다. 라면도 두부도 김치도,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 그것들을 포기하지 못했다.


그리고 또 하나 난감할 때는 병원이 필요한 때인데, 더 정확히 말하면 '확 아프지 않아서' 고민이 드는 애매한 상황이다. 아파서 찾아간 병원에서 오히려 온갖 몸과 마음의 병을 더 얻어오게 되는 그 의료서비스를 참기 어려운 것은 과연 나의 성정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인 것일까?


나는 어느 순간부터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과 교제를 하면서 내 주변의 다른 또래 한국 엄마들도 나와 같은 종류의 화병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조금은 안심했다. 우리는 이따금 실컷 떠든 후에 자조한다.

- 우리만 화나는 거야?




여기에서 병원 진료를 받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미리부터 날짜와 의사를 지정하는 특진(cita particular), 그리고 응급실(urgencia)이다. 이곳의 응급실은 정말 응급 상황이어서 가는 곳이 아니고, 보통 아프면 병원에 가듯이 일단 가서 순서를 기다려 진료를 받는 옵션이다.


때는 바야흐로 2021년 크리스마스이브 당일. 아이들이 감기에 걸린 것으로 의심되어 응급실을 찾았다. 이미 직접 겪어 아는 바가 있으므로 '심한 감기' 따위로 병원까지 갈까 말까를 정말 망설였다. 그러고는 오르락내리락거리는 고열에 만약에, 혹시나 하는 부모 마음이 발동해 끝내 응급실을 찾게 되었다. 가볍게 진료하고 항생제 정도 처방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역시나 그날도 담당 의사는 '혈액검사+소변검사+엑스레이+코로나 검사' 4종 세트를 우리에게 내밀었다.

해가 중천일 때 병원에 들어가 한참 동안 순서를 기다리고, 주문받은 4종 검사를 수행하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몇 시간을 더 기다렸다. 그리고 그 온갖 진격의 검사들이 무색하게도, 아니 실은 감사하게도 그냥 단순 감기라는 진단에 해열제와 시럽을 처방받아 병원을 빠져나왔다. 병원 밖에는 이미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고, 그날의 크리스마스이브는 그렇게 다음 해를 기약하며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한 번은 낮 12시쯤에 유치원에서 긴급한 연락을 해 온 적이 있었다. 아이가 힘이 없고 열이 39도까지 오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서둘러 유치원으로 가 아이를 데려왔고, 그날 저녁식사 시간에 아이의 양쪽 혓날에 큰 궤양 두 개가 생긴 것을 발견했다. 말로만 듣던 수족구를 의심했다. 소아과에 가야 했다. 그리고 나는 또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병원에 가는 게 맞나...?'


첫째 날 밤이 지나고 새벽 무렵, 아이의 몸에 발진이 생기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더 미룰 수가 없을 것 같아 바로 소아응급실을 찾았다. 또 피검사를 하라고 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그런데 매우 다행히도 담당 의사는 아이의 상태를 살펴본 후 별도의 검사 없이 수족구라 진단했고, 연고와 내복약을 처방해 주었다. 병원에 도착한 지 2시간쯤 만에 나오게 되는 날도 있다니, 이게 왠일인가 싶었다. 이런 일은 참으로 드문 일이었다.

아이들을 몇 해 키우는 동안 엄마들은 으레 반은 (야매)의사가 된다지만 나는 실로 의사가 되어가고 있는 기분이다. 기침이 날 땐 이 약, 콧물이 날 땐 저 약, 장염이 의심되면 그 약. 증상과 치료약을 카테고리화하고, 약의 효능과 용법을 몇 번씩 찾아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아이가 과연 약을 먹고 낫는 것인지 아니면 시간이 지나서 낫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만큼 꽤 오랫동안 처방약을 먹었어도 낫지 않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의 병원 경험은 늘 어질어질하지만, 정말로 어리둥절 저리둥절했던 일이 작년에 있었다. 우리는 지난해에, 둘째 아이를 다니던 동네 유치원에서 첫째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프리킨더 과정으로 옮기게 되었다. 입학서류 중 하나였던 건강검진확인서 발급을 위해 병원에 방문을 했는데 검진 예약과정이 여간 복잡한 것이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복잡한 것이 아니라 왜 소통이 잘 되지 않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해야 할까.


Certificado Médico Escolar.


너무나 흔한 서류이기 때문에 저 말 외에 다른 설명을 하지 않아도 예약이 착착 되어야 하는데, 병원 리셉션에서 내가 지금 하려는 진료 예약이 어디가 아파서 하는 것인지, 학교 제출용 서류를 발급하기 위한 것인지를 잘 이해하지 못했고, 나는 같은 말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그렇게 한참 이야기를 하고 나면, 그 검사가 여기에서는 안 되니 어디에 있는 지점에 가서 물어봐라, 그리로 가면 또다시 어디로 가서 물어봐라 등등의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한 끝에 마침내 검진예약에 성공했던 것이다.


검진 당일, 담당의사는 여느 때처럼 기초질문을 시작했다. 먼저, 아이의 출산방법이 자연분만이었는지 아니면 제왕절개였는지, 출생 시 체중은 어떠했는지, 특정 알레르기나 가족 병력이 있는지 등등을 고지했다. 매뉴얼에 대한 답을 다 하고 나면 의사는 우리를 앞에 앉혀 놓은 채로 또 한참 동안 키보드를 두드려 정보를 전산에 입력한다. 보통 여기까지 끝나면 무엇 때문에 병원에 왔는지를 묻는 것이다. 학교제출용 건강검진서류를 떼러 왔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의 진료가 그 건으로 예약되지 않아서 검진을 해 줄 수가 없다고 한다?!!


의사가 직접 리셉션에 확인 전화를 했다. 그리고 나도 리셉션에 재차 확인을 했다. 이미 몇 차례나 방문해 필요를 설명하고 검진예약을 한 것이었는데 왜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이토록 지독한 불통의 문제가 결코 나의 스페인어 탓은 아니라는 것만 확신할 뿐이었다.


결국 그날은 확인서를 뗄 수 없었다. 검사가 가능하다는 다른 지점을 다시 소개받아 다음 날 아침 일찍 아이들을 데리고 방문했다(검진 예약과정에서 이미 찾아갔던 곳이라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첫 번째 의사 진료실에서 위의 매뉴얼을 반복했다. 건강검진확인서 발급을 위한 진료인 만큼, 기존 매뉴얼에 더해 아이의 키, 체중, 시력, 청력 등의 여러 검사를 수행했다. 시력은 숟가락으로 눈을 가리로 측정했고, 청력은 의사가 손으로 소리를 내어 확인했다. 보고타의 의료시설이 이 정도는 아닌데 싶어 의아했다. 그러고는 잠시 대기실에서 기다리라고 해서 기다렸는데, 리셉션에서 우리를 불러 이번에는 다른 의사의 진료실로 또 가라고 한다. 아까 그 의사가 아니고요....?


두 번째 의사의 진료실에서 다시 매뉴얼을 반복했다. 자연분만/제왕절개, 출생 시 체중과 알레르기 상태, 가족 병력 등에 대해 기계적으로 읊었다. 모든 병원에서 환자를 앞에 앉혀 놓고 컴퓨터에 열심히 입력하는 내용은 통합전산에 기록되지 않고 의사 개개인이 본인 PC에 워드 파일로 간직하는 자료임이 분명했다.


내가 의사에게 물었다.


- 오늘 여기에서 건강검진 확인서를 발급할 수 있나요...?


60대 정도로 보이는 여의사는 나에게, 내가 필요한 모든 것을 도와줄 수 있다고 했다. 본인이 서류를 떼어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목소리에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매뉴얼에 있는 기초질문이 끝난 이후 나에게 아이가 왜 병원에 왔느냐고 물었기 때문에 우리가 앞서 첫 번째 의사에게 받은 검진 내용이 전달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학교에 제출해야 하는 건강검진 확인서를 떼러 왔고, 시력과 청력 검사 내용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했더니 뭐든 문제가 없다며 그 자리에서 바로 아이의 모든 부분이 건강하다는 확인서를 쓰고 사인을 해 줬다. 마침내 원하는 서류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며칠 간의 몸고생 마음고생 끝에 서류를 받았는데, 그 긴 여정이 무색하게도 결국 마지막에 나에게 확인서를 발급해 준 의사는 정작 아이를 제대로 검진하진 않았다. 뭐가 뭔지... 어쨌든 이제 입학서류를 완료할 수 있었고, 그렇게 나의 개고생은 막을 내렸다.




큰 인내를 요구하는 의료시스템에 비해 그들의 친절함은 독보적이다. 반복되는 질문에도 친절한 미소와 나긋나긋 상냥한 음성이 흐트러지는 법이 거의 없다.


아이들이 무럭무럭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쑥쑥 자라서 병원에 갈 일이 없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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