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직업이 된다는 것

덕업 일치가 이렇게 어렵습니다

by 장작
dd931d8c6e67449b168928130868c0d2578afa69c7981fbe8a01edebd54191ea0e9b07cb2f631bef1ccd34ca2debd107c61f1d17c989b0b3b172f7f3762f286bc0860e1925fa8865915a59298cc663ca5738a7ddf78450d57259c2fdaa417a3d.jpg NBA 레전드 선수 중 하나인 'Dr.J' 줄리어스 어빙


"프로가 된다는 것은 당신이 하고 싶은 모든 일을 당신이 하고 싶지 않은 날에 하는 것을 말한다."

- 줄리어스 어빙


1.

언제부터였을까. 그렇게나 책벌레였던 내가, 비는 시간마다 이런저런 소설이나 글을 써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평가받기를 즐기던 내가, 한때는 진지하게 전업 작가를 꿈꾸던 내가 책이나 글과 이렇게나 멀어진 순간이.


수험생 시기를 포함한 학창 시절에도, 대학에서 국어국문학과를 선택한 뒤에도, 심지어 군대에서도 개인정비 시간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해 주위 사람들로부터 '선비'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나. 그런 내가 글쓰기라는 행위에 점점 학을 떼기 시작한 것은 단언컨대 '취미가 직업이 된 순간'이었을 것이다.


필자는 기자다. 조선일보나 한겨레, JTBC처럼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메이저 언론사는 아니지만 경제지 중에서는 나름 역사가 있는 오래된 매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회사 크기야 어찌 됐건, 어쨌거나 필자는 취재와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경제' 기자다 보니 쓰는 글들이 썩 재밌거나 유쾌한 내용은 아니다. 네이버 뉴스 섹션을 잠깐이라도 둘러본 적이 있다면 그들 대부분의 논조가 우리 경제에 그렇게 호의적이거나 희망차지 않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잿빛 전망이나 절망적인 분석이 모두 옳았다면 우리나라 경제는 진즉에 폭삭 망했어야 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필자는 원래 기자로 밥벌이를 할 생각은 없었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필자는 국어국문학과를 나왔다. 그 흔한 복수전공이나 부전공도 없이 순수한 국문과,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도대체 무슨 배짱이었는지. 순수 국문과를 나와서 취업할 수 있는 길은 다소 제한적이다. 동기들 중 순수 국문학만 전공한 친구들의 길은 주로 한국어 교육 자격증을 따서 외국인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학원 강사로 나서는 정도가 그나마 전공을 살리는 케이스다. 나머지는 전공과는 무관한 광고대행사나 영업사원 등으로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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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렇다면 나는 무엇이 되고 싶었을까. 입사 1년 전까지 나는 소규모 영상제작 동아리에서 영상 연출이나 극본을 쓰는 일을 배우고 있었다. 그렇다. 이제 와서 보면 흔적만 어렴풋이 남은 나의 꿈은 시나리오 작가였다.


그 시절 그 동아리는 크거나 체계적이지는 않았지만 구성원 각자의 열정과 의지로 똘똘 뭉쳐 있었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고, 막대한 자본을 등에 업은 것도 아니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행위 자체가 즐거웠고 보람 있었다. 나름의 성과도 있었다. 크고 작은 공모전에 참여해 입상하거나, 청년들을 위한 행사에 참여해 지원을 받는 등 이런저런 이벤트도 겪었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나 그놈의 돈이었다. 아무리 공모전에서 입상을 한들, 아무리 청년지원사업에서 소정의 지원금을 받는다 한들,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드는 일은 하나부터 열까지 엄청난 돈을 필요로 했다. 장소 섭외, 소품 마련, 배우 캐스팅, 촬영장비 대여, 촬영 당일 팀원 및 배우들의 식사 및 촬영 로케이션 이동... 어느 하나 돈이 안 드는 곳이 없었다.


일부는 지원금이나 공모전 상금으로 메울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자금은 팀원 각자의 지갑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수입은 없는데 지출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그러다 보니 성과도 나오지 않는 악순환이 늘어나면서 모두가 지쳐갔다.


이는 이런 소규모 동아리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팀 활동을 하던 중 실제 방송 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는 일도 생기고, 관련 업계에 대한 생생하고 구체적인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도 많았다. 그렇게 접한 시나리오/방송작가계의 현실은 암담하기 그지없었다. 혀를 내두를 정도로 강도 높은 노동에도 불구하고 쥐꼬리만 한 월급, 그나마도 체불되는 경우가 일쑤라고 했다. 복지나 휴가는 연차가 쌓이기 전까지는 꿈도 꾸지 못한다나 뭐라나.


필자는 집안 사정이 그리 부유한 편이 아니다. 오히려 풍족함보다 부족함이 훨씬 더 큰 삶이었기에, 안정적인 직장과 수입이 무엇보다 필요했다. 철없이 꿈만 좇기에는 어깨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다.


4학년이 되면서 직업을 알아보던 중, 학교에서 기자 아카데미가 열렸다. 이 길이라면 나름 쌓인 필자의 글재주도 살리고, 잘 풀리면 사회적 위치도 안정적일 것으로 보였다. 기자 아카데미를 포함해 다방면으로 피나는 노력을 한 끝에 운 좋게 필자는 지금의 직장에 들어와 기자가 됐다.


Co1ivmFUMAAdkdC.jpg MBC <무한도전> 내 '무한상사' 상황극 중. 우리나라 직장인 99.9%가 매 순간 느끼고 있을 감정


3.

사실 기자가 된 직후까지만 해도 필자는 주말이나 비는 시간을 이용해 여전히 책을 읽고, 여전히 시나리오를 썼으며, 블로그를 통해 이런저런 글을 쓰고 소통하는 것을 즐겼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나고, 1년이 지나고, 연차가 쌓이면서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져버렸다. 주중 5일 내내 글을 쓰고 피드백을 받아 고쳐 쓰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그렇게 즐거웠던 글쓰기가 몸서리칠 만큼 지겨워졌다.


부담 없이 쓰던 소소한 글도 언젠가부터 '더 잘 써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쓰지 않게 됐다. 누가 딱히 내 글을 평가하거나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사실 브런치라는 플랫폼은 출시 초기부터 알았지만 이런 쓸데없는 부담 때문에 글 쓰는 걸 차일피일 미루고 망설여왔다. 하등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올해 필자의 나이는 스물아홉. 마지막 20대를 코로나19와 함께 보내면서 스스로에 대한 매너리즘이 그 어느 때보다 심해졌다. 직장생활 3년이면 '인생 노잼 시기'가 온다더니, 누가 만든 통계인지 정말 귀신같다. 요새처럼 인생이 재미없는 시기가 또 있었나 싶을 정도다.


그런 시기에 다시금 나의 가장 큰 취미였던 '글쓰기'를 돌아본다. 생각해보면 지금처럼 집에 틀어박혀 있는 시간이야말로 책을 읽고 글을 쓰기에 가장 적합한 시기가 아닌가. 어쩌면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머지않은 시일 뒤에 내가 쓴 이 글을 다시 읽어보면 스스로 부끄럽고 쪽팔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걸 두려워하면 다시는 이런 '쓸데없는' 글쓰기를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꾸준히 오래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 공간에서만큼은 당분간 '잘 써야겠다'는 부담 없이 대충대충 쓰고 싶은 글을 써보고자 한다.


아마추어는 즐기고, 프로는 즐기려고 노력한다는 말이 있던가. 비록 글쓰기의 프로가 되지 못할지언정 세미프로 정도는 될 수 있도록 노력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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