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트하우스에 사는 그들의 행복, 빌라촌에 사는 나의 행복
행복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어디에도 없으며 동시에 어디에나 있구나
우린 앞만 보고 살도록 배웠으니까
주위에 남아있던 행복을 놓쳐 빛나지 못하는 거야
2018년 방영됐던 Mnet <고등래퍼2>에 출연한 당시 고2 래퍼 김하온(HAON)은 이병재와 함께 꾸민 '바코드' 무대에서 이런 가사를 썼다. 당시 '명상래퍼'로 인기를 끌며, 압도적인 실력으로 최종 우승까지 거머쥔 김하온의 가사는 기존에 사람들이 힙합에 대해 갖고 있던 인식과는 정반대의 가사로 주목을 받았다. 행복, 긍정, 희망... 다른 대부분의 래퍼들이 돈자랑이나 불특정다수에 대한 분노(?)에 차 가사를 써내려갔던 것과는 참으로 대조적인 행보였다.
반면 김하온과 함께 이 무대를 꾸민 이병재의 스타일은 김하온과는 완전 정반대였다. 심한 우울증으로 자해까지 일삼았다는 이병재는 스스로의 우울함을 그대로 드러내며 어두운 가사를 주로 썼다. 이 '바코드'라는 무대 자체도 이병재가 자해를 하며 팔에 난 흉터가 마치 바코드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주제가 잡혔다. 김하온의 빛과 이병재의 어둠이 만나는 지점을 마치 바코드가 읽히는 모습을 연상시키게 연출되기도 했다.
필자는 이 두 사람 중, 사실 이병재의 가사에 조금 더 감정이입이 된다. 세상이 그렇게 행복과 희망으로 가득찬 곳이라는 생각은 안 든다. 물론 세상이 아예 인외마경이라거나 지옥같은 곳은 아니지만, 필자는 인간의 본성 자체가 그렇게 선하지 않다는 쪽에 생각의 무게추를 두고 있다.
그런데 그런 필자가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얼마 전 있었던 일 때문이다. 필자의 어머니가 갑자기 육회가 땡기신다고 하여 시켜드린 이 육회. 별로 비싸지도 않고, 2인분에 17000원쯤 한다. 요거 한 접시에 집에 있던 소주를 따서 어머니와 나눠마시는 도중 어머니가 '행복하다'고 말씀하셨다.
행복하다.
세세히 밝히기는 너무 길고 복잡하고 부끄럽기 때문에 밝히진 않겠지만, 사실 필자의 어머니는 참으로 힘들고 불쌍하게 살아오신 분이다. 열거하기도 벅찰 정도로 수많은 일이 있었고, 그 와중에 희귀병도 수두룩하게 얻으시며 건강도 그렇게 좋으신 편이 아니다. 그 많은 시련을 악착같이 넘어오셨고, 이렇게 필자가 한 명의 사회인으로써 제 몫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너무나 많은 것들을 희생해온 분이다.
그렇게 힘든 삶을 살아오셨던 어머니께서 '행복하다'고 하신다. 지금, 이 아무 것도 아닌 육회를 드시면서. 왠지 모르게 울컥한 감정이 들었지만 필자는 그걸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만 넘겼다.
그런데 세상에는 '더 갖지 못해서' 불행하다는 사람들도 있다. 아니, 있다 수준이 아니라 필자가 보기에는 거의 대부분이 그렇다. 필자도 거기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기자로 뛰면서 현장을 돌아다니다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기적인 욕심과 욕망이 내면에 그득그득 들어차있었다. 보험 담당 기자로 뛸 때도 그랬고, 건설부동산부로 넘어와서는 더더욱 그랬다. 먼저 출입하던 선배가 '부동산은 욕망의 소굴'이라고 말할 때 장난이라고 생각했는데 완전 진지한 얘기였다.
빈곤층 누군가는 단돈 만 원이 없어서 처절하게 굶어죽어갈 때, 누군가는 재개발 사업으로 수 억원의 차익을 남기면서도 몇 천만원의 세금을 아끼려고 발버둥치고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행복은 뭘까. 더 많은 돈과 더 좋은 집일까. 많은 돈이라면 대체 얼마나 많은 돈일까. 가족들과 육회 1인분에 소주 한 병 사마실 정도의 돈으로는 불충분할까.
행복과 불행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들 한다. 어느 정도 동의한다. 이제 30년 정도 살았지만 필자가 느껴왔고, 견지해온 삶의 모토 중 하나는 '좋게 생각하면 한없이 좋게 볼 수 있고, 나쁘게 생각하면 한없이 나쁘게 볼 수 있다'이다. 필자는 어떻게든 모든 상황을 좋게좋게 해석하려고 노력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운 일들이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으니까.
지난해, 상류층의 삶과 어두운 단면, 그리고 그곳에 올라가기 위한 인간 군상들의 추악한 다툼을 그려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펜트하우스> 시리즈를 떠올려본다. 재벌들이나 권력층 사이에서는 이 드라마보다도 훨씬 추악하고 더러운 암투가 오고가고 있을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재벌들은 나 같은 서민들이 상상도 하지 못할 고급스러운 삶과 좋은 인맥을 누리면서 살고 있으리라.
그렇다면 필자는 그들을 부러워해야할까.
뭐, 하지만 그들처럼 되지 못한다고 해서 스스로 자책할 필요도 없다. 그들 또한 나 같은 서민이 누리는 작은 행복에 대해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테니까.
중학교 생물시간에 배웠던 개념인 '역치'를 떠올려본다. 역치란 생물체가 자극에 대한 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도의 자극의 세기를 나타내는 수치를 말한다. 그들이 느끼는 행복의 역치와 내가 느끼는 행복의 역치는 분명 단위가 다를 것이다. 적어도 필자는, 삶의 사소한 것에서라도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다보면 또 모르지. 그들이 느끼는 행복을 나도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