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질의 역사 #1
<찌질의 역사 #1>
어디 가서도 쉽게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누구든 모두 각자의 '사랑의 역사'가 있었을 거다. 이러한 역사가 끝이 나고 현재 장기 집권체제에서 지내고 있는 분이 있다면 필자처럼 함부로 이런 역사를 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장기집권체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조심하자.) 다행히도 필자는 현재도 역사가 진행 중인지라 눈치 없이 글을 쓸 수 있다.(사실 다행은 아닌 것 같다) 뭐 어쨌든 아직 도 진짜 사랑 따위는 해본 적이 없는 놈이 쓰는 글이기도 하다. 그대들은 '진짜' 사랑을 해본 적이 있는가. 있다면 필자에게 한수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이란 게 한 수 알려준다고 해서 절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안다. 안다고. 아니까 슬픈 나를 내버려두어주기를. "첫사랑은 잊을 수 없다"라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되는 듯하다. 너무 좋았어서 잊을 수 없는 의미, 정말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의미 등등이 있다면 필자는 후자의 의미가 강한 듯하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다. 말 그대로 잊고 싶다. 일명 흑역사를 잊고 싶다는 말이다. 지금부터 줄줄 늘어놓는 사랑의 역사들은 친한 친구에게나 얘기했던 부모님에게는 절대 이야기하지 못했던 간지럽고 부끄러운 역사이다. 모조리 나의 시점으로 바라봤던 기억이기 때문에 팩트는 아니다. 그냥 나의 기억일 뿐이다.
고등학교 1학년때 겨울의 첫사랑이 다가왔다. 정말 낭만 있지 않은가요. 아는 여동생이 "괜찮은 친구 있는데 소개해줄까"라는 말을 듣고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Yes!! Yes!! Yes!!"를 외쳤다. 나는 그 시절 말라깽이에 안경잡이였다. 이덕에 여자들에게는 당연히 인기가 없었지만 학교에서는 마치 내가 유재석이 된 것 마냥 사람들을 즐겁게 했고 나를 지지해 주는 남성 팬들은 아주 많았다고 한다. 근데 아무런 짝에도 쓸모없는 어둠의 남자자식들보다는 빛 같은 그 소개녀가 더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첫 만남을 가졌다. 역시 쭈뼛쭈뼛 말도 제대로 못 하는 고등학교의 유재석은 남자들에게만 당당할 뿐이었다. 그래도 큰 실수 없이 첫 만남은 마쳤고 오손도손 카카오톡을 주고받으며 돈독해져 몇 번 더 만나다 보니 몽글몽글한 감정이 올라왔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 각자가 다른 공간에 있을 때 고백을 했다. 그렇다 일명 '카톡장문고백'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절대 받아주지 않을 고백이었지만 그때는 먹혀들었고 그날 나는 다시 외쳤다 "Yes...!!!" 그렇게 나의 첫사랑은 시작되었고 나름 남자가 된 것 같던 나는 그녀의 손을 스치고 스치다 손을 잡았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찌나 심장이 두근대던지. 첫사랑의 첫 손이라니 잊을 수 없었다. 그 기쁨도 잠시 낭만 있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했다. 돈이 없던 잼민이는 문방구에서 털장갑을 하나 샀다. 단돈 5천 원이었다. 절대 가격이 싸서 산 것이 아니었다. 예뻐서 샀다. (물론 가격표는 당연히 봤다) 어쨌든 그렇게 낭만 있게 포장을 해 그녀의 손을 따뜻하게 해 줄 털장갑을 선물했다. 선물을 하고 뿌듯했던 남자친구는 순간 뇌리를 스쳤다. 가격표를 보기나 봤지 가격표를 뗀 기억이 없었다.(텍을 떼지도 않고) 이 이야기를 친한 친구들에게 했더니 친구들이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깔깔깔깔깔깔깔" "꺽꺽꺽꺽꺽꺽꺽" 붸스트후렌드의 진정한 사랑을 비웃다니 정말 나쁜 자식들. 그렇게 아마 그 아이는 그 장갑을 보고 "어머 장갑이네"라고 말하고 가격표를 보고 "어머 5천 원짜리네"라고 말했을 것이다. 이 장갑의 가격만큼 내 마음도 얕았던 걸까 그 사랑은 그렇게 오래가지는 못하고 먼저 좋아한다고 고백했던 놈이 이별통보도 먼저 하고 말았다. 그렇게 나의 첫사랑인 듯 첫사랑이 아닌 사랑은 끝이 났다.
성인이 되어서는 대학교에 입학해 같은 과의 여동기를 좋아하기도 했다. 매일같이 친한 남동기에게 편의점에서 산 왕다리 오징어 안주에 순하리 사과맛(일명 맛소주)을 까며 그 짝사랑에 대한 고민을 새벽이 끝나도록 풀고 다음날 순하리의 머리가 깨질 것 같던 공격에 돼지국밥, 뼈해장국으로 수비를 했었다. 그 짝사랑에 대한 고민도 잠시 2월에 ot를 한 지 2개월 만인 4월에 동기들 중 처음으로 군대를 입대하며 "그 아련한 짝사랑이 끝난 줄 알았죠? 좋아하는 사람은 극한 환경에서 더 생각나는 법이랍니다."라는 핑계를 대면서 새벽에 불침번을 스며 복도에 있는 전화기로 몰래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주소를 묻기도 했다.(지금 생각하면 정신이 나갔었던 것 같다) 수첩에 정성스레 써놓은 그 주소로 진심이 담긴 몇 장의 편지를 보냈다. 그 장문의 편지들을 책상을 펴 열심히 편지를 쓰는 나를 보며 훈련소 같은 방에 있던 21살의 형들이 매일 놀려대기도 했다. 그 이후 그녀의 첫 인터넷 편지를 받았을 때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지만 그 편지의 내용을 보고 울상이 되니 옆에 있던 형들은 짝사랑하던 귀여운 동생을 더 놀려대었다고 한다.
"xx아 잘 지내지? 나 남자친구 생겼어"
"아니 잘 못 지낼 것 같... 흡..."
이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순하리 소주를 함께 깠던 친구도 그 당시 그녀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말에 그 친구도 울었겠지만 난 배신감에 너보다 두 배는 울었다 x자식아. 그래도 둘 다 잘 지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