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재고 있었다
<나 혼자 재고 있었다>
직장에서 받아야 하는 4주간의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추운 겨울, 경남 구석탱이에서 충남 아산이라는 곳으로 올라왔다. 촌놈이 촌으로 올라왔기 때문에 딱히 이질감은 없었다. 올라와 적당한 휴식과 적당한 교육을 받고 있었다. 사실 최근 필자가 가지고 있던 몇백만 원 상당의 카메라가 나의 재정적 위기를 창조하였음을 인지하였다. 취미랍시고 작품성 사진을 찍어보겠다며 고가의 카메라를 구입하였고 교통사고가 나면 카메라를 안전한 곳으로 던지고 내 몸이라도 던질 판으로 소중히 여겼다. 뭐 내 기준에 비싸니 당연한 일이었다. 비싼 차를 타고 돈이 없는 일명 '카푸어'는 이렇게 탄생하는 것이었나 보다. (생각해 보니 '카'메라도 카푸어네) 그저 "역시 사람은 분수에 맞는 차를 타는 게 맞다!"라는 나의 가치관을 더 확고하게 하는 계기만 되었을 뿐이었다. 어쨌든 내 몸보다 소중한 이 카메라를 부쩍 여유로워진 시간이 온 김에 온라인으로 적극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적극적인 홍보덕이였을까 중고거래 판매사이트에서 연락이 왔다.
"직거래 가능한가요?"
"네, 근데 충남 아산인데요"
"네 제가 직접 갈게요"
"어디신데요?"
"경북 안동인데요"
그렇게 이른 아침 충남 아산 '탕정역' 앞 공영주차장에서 만나 거래를 하기로 하였다. 거리에 눈이 쌓여있는 겨울 입김을 후후 불어대며 구매자를 만났다. 나이는 20대 초중반으로 보였다. 목소리는 중후하고 또렷했지만 동글 안경을 쓴 바가지 머리가 매치가 되지 않았다. 카메라를 주섬주섬 꺼내어 구매자에게 보여주니 자신이 가져온 카메라 렌즈를 결착시키며 상태를 보았고 자신이 가진 더욱 고가의 카메라를 보여주며 나에게 건넸다.
"필름카메라인데 한번 찍어보세요"
"아 그래도 되나요? 요즘 필름값이 비싸지 않나요"
"괜찮아요. 근데 날씨가 좀 춥네요. 저 앞에 카페 가서 이야기나 나누실래요?"
"네. 그러시죠"
원래는 카메라만 금방 팔고 다른 곳으로 이동할 참이었으나 그는 나와 진심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카페를 들어가 그 많은 카메라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메뉴판을 보던 중 그가 이야기했다.
"음. 여기 에스프레소는 안 먹어봤는데 어떤 맛일지 궁금하네요"
내가 느낀 그의 첫인상과 매치되지 않는 에스프레소 이야기를 들었고 그는 반전매력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멀리서 오셨는데 커피는 제가 사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생각해 보니 저희 이야기를 좀 나눌 건데 저 혼자 에스프레소를 먹으면 좀 그럴 것 같네요. 저는 카푸치노에 시나몬 가루를 추가해서 부탁드립니다."
그의 카푸치노는 그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원래 의미 없는 곳에 돈을 한 푼도 쓰지 않았던, 즉 돈이 아까운 곳에는 돈을 절대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한때는 정말 짠돌이의 삶을 살았던 적도 있었다. 이 바가지머리 구매자도 한번 보고 보지 않을 사람일 것을 알았기에 순간적으로 고민했다. 겨우 몇천 원밖에 하지 않는 시나몬가루가 뿌려진 카푸치노였지만 순간적으로 고민하는 나를 봤다. 기껏 2시간이 넘게 차를 타고 달려온 이 구매자를 위해 도리상 당연히 해야 할 일임을 알면서도 "다시 안 볼 건데 굳이?"라는 몇 초간의 고민을 하면서 재고 있었던 내가 스스로 부끄러웠다. 어찌 보면 난 짠돌이가 아니라 쫌생이였을까.
그렇게 테이블에 앉아 좁은 카페 테이블에 카메라 약 5대를 올려놓고 이야기를 하는데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을 만난 것이 처음이라서 그랬을까 그도 신났고 나도 신나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렇게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는 카메라를 이것저것 소개해주며 설명도 상세히 잘해주었다. 그리고 카메라 고수의 향기가 났던 그는 유용한 정보도 많이 공유해 주었다.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봐주세요"
그렇게 1시간 넘게 떠들었을까. 통성명도 하지 않고 우리는 카메라, 사진이야기에 빠져있었다. 제일 중요한 오늘의 거래는 하지도 않았다. 그도 몰랐고 나도 몰랐다. 헤어지기 직전 아 참 제일 중요한 걸 안 했다며 그가 나에게 송금을 해주며 거래는 끝이 났다. 거래만을 목적으로 나온 나는 그와 예기치 못한 좋은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고 그는 다시 안동으로 떠났다.
며칠 후 카메라를 팔고 여윳돈이 생겨 비교적 저렴한 다른 카메라를 구매하기 위해 약속을 잡았다. 평소 시세보다 싸게 올라왔고 약간의 하자가 있어 보여 싸게 구매를 하여 다시 시세대로 팔고 괜찮은 상태의 카메라를 사려고 했다. 장사꾼에겐 도움이 되는 행동일지 모르지만 일반인인 나는 그냥 싸게 올라온 것을 이용해 이득을 보려는 사람일 뿐이었다.(쫌생이에 이어 사재기꾼이라니 최악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를 크게 인지하지 못했다. 어쨌든 구매를 하기 위해 그가 있는 천안으로 20km 이상을 달려갔고 판매자를 만났다. 판매자는 검은 뿔테를 낀 40대의 남성이었고 나에게 천천히 카메라를 확인해 보라며 카메라를 건넸다. 사진으로 봤던 것과는 달리 하자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고 전체적으로 깔끔했다. 그렇게 추운 겨울밤, 그에게 카메라 값을 지불하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시 한번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렇게 재미가 없을 수가 없었다. 추운 밤이었지만 괜히 마음에는 온기가 돌았다. 그저 판매와 구매를 하기로 한 비즈니스 관계였지만 그는 순수했다. 그렇게 거래를 끝내고 아산으로 돌아가려는 찰나에 그가 나에게 말을 건넸다.
"필름카메라 최근에 입문하고 있다고 하셨죠? 그럼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주실래요? 제가 필름 2롤 가져다 드릴게요"
"아.. 네? 아 그럼 너무 감사하죠.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의 호의에 나는 많은 걸 느꼈다. 그는 커피 몇천 원짜리를 고민하던 나를, 카메라를 다시 팔아 이득을 볼 목적으로 거래를 하러 온 나를 참으로 부끄럽게 만들었다. 따뜻한 그를 보며 세상엔 좋은 사람들이 아직 많음을 느꼈다. 그렇게 3분쯤 지났을까. 그는 달려와 약 3만 원가량의 필름 2롤을 내게 건넸다. 너무 감사했던 나는 몸 둘 바를 몰랐다. 별 것 아닌 필름 2롤일지도 모르지만 이 필름들은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아까 이야기하던 중 내가 평소 관심 있어했던 카메라를 그가 가져와 한번 조작해 보고 찍어보라며 내게 건넸다. 괜히 그 바가지 머리 친구가 생각이 났다. 그렇게 실제 관심 있던 카메라를 실물로 처음 조작해 보고 신난 그의 부연 설명에 내 마음은 무언가로 꽉 채워짐을 느꼈다. 그와 헤어졌고 차를 타고 다시 아산으로 향하는 길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밤이었다. 난 손해를 보기 싫어했고 이득만을 쫓아온 사람이었다. 그들의 이유 없는 친절함, 베풂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고 반성했다. 그들도 거래를 위해 만난 것이지만 순수했고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 신나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들과는 달랐다. 어쩌면 난 세상을 실익만이 담긴 세상으로 바라보고 재고 있었던 것 아니었을까. 가끔은 손해 보는 사람이 되는 것이 틀린 게 아니라는, 가끔은 이름도 모르는 사람에게 베푸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사람들의 이런저런 점들을 보고 배우며 스스로 성장하는 것이 삶인 것 같다. 그대들은 어떤 사람인가. 그대들에게도 좋은 점들이 있다면 그 점을 보고 배우고 싶다. 그대들도 분명 좋은 점을 하나 이상씩 가진 사람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