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좋기도 나쁘기도
<한창 좋기도 나쁘기도>
필자는 친구들과 있는 것을 정말 행복해했다. '행복해했다'라는 말이 어찌 보면 서글프기도 해 보인다. 그대들도 그랬을 거라고 생각한다. 학창 시절을 못 잊는 이유가 그 친구들 때문이니까. 나는 어릴 때부터 소심한 성격이었지만 친구들이라는 집단 사이에서 중심에 있는 것을 좋아했다. 친구들이 나를 '관종' 또는 '또라이'라고 불러줄 때마다 나는 왜 기분이 오히려 좋았을까.(아 그런 류의 변태는 아니다. 오해는 말길) 그 말을 듣는 것 자체가 관심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못하는 뭐든 좋아하는 바보였다. 그래도 한 번씩 저 시절의 바보가 그리울 때가 있다.
이제는 똥인지 된장인지 먼저 가리고 있는 성인이 되어버렸다. 이것저것 따지며 편식하고 입맛에 맞지 않으면 먹지 않는 사람보다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잘 먹는 사람이 좀 더 예뻐 보이는 느낌이다. 원래 인생이란 게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면 행복한 법인데 다행히 그땐 거의 항상 중심에서 그 행복을 느꼈다. 중심에서 친구들을 웃기고 재밌게 해 주어서 친구들의 웃음이 터져 나올 때의 쾌감은 어떤 탄산음료보다 짜릿했다. 그때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한마디 할 수 있다면 "그때를 충분히 즐겨라. 아니 그 충분이상으로 더더더 즐겨라"라고 말해주고 싶다. 항상 맑은 날만 있는 법은 없으니까. 이런 행복한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도 있을 것이고 지옥 같던 학창 시절을 보낸 그대들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다. 필자도 학창 시절이 마냥 행복한 날들만 가득했던 건 아니었으니까.
내가 지냈던 학창 시절 중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일명 '양아치' '날라리'들이 난무하던 시절이 있었다. 더 옛 시절인 영화 '바람'정도의 파급력은 아니었지만 그때 너무 어리고 철없던 나에게는 '바람'이상의 파급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평생 갈 것만 같던 우리의 집단은 내 탓 또는 남 탓으로 깨져버린 때가 많았다. '그땐 전부 어려서 다 잘 몰랐으니까'라고 둘러대고 싶을 뿐이다. 그렇게 평생 지낼 수 있을 것 같던 둥지에서 내려와 또 다른 둥지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저 옛 추억이 담긴 비디오를 머릿속에 계속 재생만 하면서 말이다. 수업이 마치는 종이 울리고 너무 짧았던 쉬는 시간이었지만 언제부턴가 그 10분의 쉬는 시간이 나에겐 너무 길어졌다. 낯선 곳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바닥에 앉아 우는 어린아이처럼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던 나는 100분 같던 쉬는 시간을 잠도 오지 않는데도 계속 엎드려 있던 때가 있었다. 홀로 있는 먹잇감을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그 당시 잘 나가는 몇 애들은 먹잇감인 나를 툭툭 건들기 시작했다. 나뿐만 아니라 반 모든 애들에게 그랬지만 더욱 힘들었다. 원래 비참한 상황에서 더 비참하게 생각하는 법 아니겠는가.
엄마가 항상 이야기하시던 "맞고만 다니지 말라 상대방 병원비는 얼마든지 내줄 테니"라는 허풍을 믿고 한 번은 그중 한 명에게 못 참고 교복 조끼 멱살을 잡아 찢어버렸고 나의 제2의 눈은 날아갔다.(엄마 우리 돈이 더 들었으니까 진건가요) 그 이후로는 좀 잠잠해졌고 천천히 나의 암흑기는 지나갔다. 이후 운이 좋게 또 좋은 친구들을 만났고 현재까지 평생 가는 사이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행복했으니 됐다. '평생'이라는 말은 참 쉽지 않은 거 같다. 이런 암흑기를 누군가들에게 말하는 게 처음이다. 자신의 부끄러웠던 순간을 드러내는 것도 용기라고 생각한다. 분명 이 용기가 나에게 좋은 선물로 보상을 해줄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대들의 학창 시절은 어땠는가. 한창 좋았을지도 한창 좋지 않았을지도 모를 그 순간을 웃으며 이야기해도 울며 이야기해도 괜찮다. 그 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들이 되었으니까. 그대들은 이때까지 버텨온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다. 한창 좋은 날도 한창 나쁜 날도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