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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쟁이 Oct 22. 2023

프다맛

- 프리다이빙 1편 

      제주의 삶은 수많은 도시인들이 꿈꾸던 삶과는 사뭇 달랐다. 섬에 있다는 것만으로 갇혀 있다는 갑갑함에 날씨 확인을 하루에도 수십 번을 한다. 지하철과 대중교통의 감사함을 느낀다. 차려입고 나갈 곳이 없어 편안함을 추구하면서도 뭔가 점점 촌스러워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미친 듯이 쇼핑을 하기 시작했다.  백화점이 너무나 그리웠다. 나이트 라이프가 없는 무료한 제주 생활은 무엇보다 친구가 없는 외로움이 가장 컸다. 평소에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혼자서도 잘해요 하는 편이었지만 고립된 섬에서 소소한 일상을 나눌 친구 하나 없다 라는 것은 너무나 절망적인 일이었다. 친구를 만들어내어야 만했다.


          회사 사람들 한 명 한 명을 스캔하고 나와 나이가 비슷하고 친하게 지낼 수 있을 만한 성향의 사람을 목말라하다 크리에이티브 팀의 김 과장이 내 타깃이 되었다. 취미가 뭐냐고 물었던 게 시작이었다. 육지에서 스킨스쿠버를 해본 경험이 있다던 김 과장과 첫인사를 나누고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같이 가자고 덧을 쳐 놓았다. 며칠 뒤 김 과장은 앞에 앉아있던 한 과장의 새로운 취미를 듣던가 예의상 내뱉었을 것 같은 같은 그의 빈말을 얼른 낚아챘으니 같이 갈 채비를 하라고 했다. 기특한 김 과장님. 외로운 사람은 나 혼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게 프리 다이빙이었다. 막연히 바다수영 비슷한 것이라 생각하고 이 아름다운 제주 바다를 누군가 같이 가자고 해주는 것만으로 은혜를 받은 것 같던 나는 프리 다이빙에 프자도 모르고 무식하지만 용감무쌍하게 그들을 따라나섰다.


          첫 번째 장소는 그 유명한 함덕 해수욕장의 서우봉. 스노클링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 나는 그들이 시키는 데로 슈트를 렌트하고 그들이 시키는 데로 스노클링을 렌트하고 그들이 시키는 데로 준비 체조도 없이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몇 개월 동안 같은 사무실에 있어도 말 한번 붙여본 적이 없는 자들과 어색한 눈인사만 나눈 채, 바다로 입수… 혹시 젊은 사내들끼리 오고 싶은걸 눈치 없이 따라나서건 아닌가, 짐짝처럼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함덕의 바닷물을 500미리쯤 마셨을 때 인가? 우리는 바다 한복판에 있었고 그들의 첫마디는 이제 내 이름과 내 나이를 말해보라고 했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내 인생에 단 한 번도 이런 장면을 상상해본 적이 없다. 제주. 함덕의 바다 한복판에서 내 이름과 내 나이를 말해야 되는 순간이 오리라는 것을. 바다 위 통성명이 끝난 다음에는 튜브같이 생긴 부이라는 걸 나란히 잡고 바닷속에 끈을 설치해서 그 줄을 잡고 끝까지 들어갔다 나오면 된다고 했다. 왜 그렇게 해야 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내가 그 함덕의 바닷물을 체감으로 1.5리터쯤 마셨을 때인가 드디어 우리는 출수했고, 어색하게 라면과 김밥을 먹으며 얼마쯤 서로를 경계하다 회사와 상사 욕을 시작으로 급격하게 공감대를 형성했다. 역시 사회생활에서 제일 빨리 친해지는 방법은 공공의 적을 갖는 것이다.


         동호회의 진수는 뒤풀이. 호방한 성격의 한 과장은 친히 본인 집의 거실을 내주겠다고 했다. 김 과장과 함께 그의 집에 도착했을 때 또다시 상상해 본 적이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 큰 덩치의 사내들이 쪼그리고 앉아 휴대용 가스버너에 소라를 굽고 있었다. 제주도 원룸 건물의 손바닥 만한 거실을 마치 해운대 미포 조개구이집으로 변모시킨 그들의 도전정신과 그 어마 무시한 연기와 냄새까지도 감수하겠다는 그들의 포용력. 섬세하게 손질해서 갓 구워 낸 담백한 소라의 맛 앞에서 그들은 내가 오키나와 바다 앞까지 떠내려가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겠구나 하는 두터운 신뢰가 쌓이는 순간이었다.  


        그들은 이 모임을 ‘드림 오션’이라는 무언가 원대하고 거창한 이름을 갖다 붙이고 나는 그렇게 원년 멤버가 된 것 마냥 몇 차례 더 그들을 따라다녔다. 그들은 너무나 착해서 예의상 같이 가자고 물어보는 게 아닌가 계속 의심하면서도 나의 재미를 위해 눈치 없는 나의 입수는 계속되었다. 또한 그들은 친절하고 상냥하게 계속 나에게 무언가를 가르쳐 주려고 했지만 나는 도통 받아들이지 않았다.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너무나 공포스러운 일이었고, 천혜의 제주 바다 위에 두둥둥 떠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나의 진심을 믿어 달라고 읍소했다.


        내가 바다에 익숙해지고 있는지 알아보는 척도는 오늘 내가 바닷물을 얼마나 마셨느냐였다. 부끄러워 말은 못 했지만 나는 꽤나 바닷물을 마시고 있었고, 서귀포 쪽 바다보다는 제주시 쪽 바닷물이 좀 더 짜다는 나름의 평가도 가능할 정도였다. 네 번쯤 따라갔을 때였던가.


        드디어 물속의 아름다음을 느끼는 순간을 경험하게 되었다. 나의 부족한 표현력을 탓할 수밖에 없겠지만 이것은 마치 내가 디카프리오가 출연했던 로미오와 줄리엣. 그들이 첫눈에 사랑에 빠졌던 아름다운 어항 씬. 바로 그 어항에 내가 들어가 있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김 과장 말에 따르면 스노클을 물고 있어 알아들을 수 없는데도 나는 한참 동안 괴 소리를 질러 데고 있었다고 한다. 내가 했던 말은 우와. 와.. 이거 보세요. 저거 보세요. 오 마이 갓. 너무 좋아요. 신기해요. 아름다워요. 어떻게 미쳤어… 이것 봐…. 등등. 이제 막 말문이 트인 유아 3세 수준의 온갖 미사여구를 뇌의 어떤 필터도 거치지 않고 따발총 쏘듯 내뱉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프리 다이빙의 ‘프’ 정도의 맛을 보게 된 것 같았다. 격무에 시달리던 나의 고단한 마음이, 혼란스러운 나의 나이가, 70살까지 빚을 갚아야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는 나의 채무상황이, 끊임없이 경쟁해야 되는 이사회가, 이 지긋지긋한 역병에서, 온전히 자유로워지는 순간이었다.


치유와 힐링의 프다 맛! 레드 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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