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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쟁이 Oct 22. 2023

지구촌 영상 음악

- 글쓰기편 

         나에게 남은 마지막 비상구! 

90년대 유명한 광고 문구가 아니더라도, 살면서 도망갈 구멍 하나는 있어야 된다. 나를 깊게 위로해줄 수 있는 무언가.  음악이 나의 전부이고, 세상의 중심이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시발점은 서태지였다. 왠지 모르겠지만 그 시절 나는 어른들이 즐겨 부르던 성인 트로트가 너무나 싫었다. 모든 방송 길거리 리어카에서 트로트만 나오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에 서태지의 등장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왠지 모르게 묘한 쾌감을 불러일으켰고, 나의 그의 초종자가 되었다.  


        서태지는 락밴드 시나위의 출신답게 라디오에 나와서 몇몇의 락음악을 추천했는데, 그 시절 그가 추천했던 첫번째 곡은 에어로 스미스의 crying이었다. 크라잉의 초반부 시작을 글로 설명하기가 너무 어렵지만 설명해보겠다. 


쾅쾅쾅 쾅~~~ 앙 

쾅쾅쾅 쾅~~~ 앙 


        아무래도 직접 들어보는 게 좋을 거 같다. 웅장한 드럼 소리와 일렉기타의 연주는 시작할 때 와는 사뭇 다르게 락발라드로 흘러간다. 에어로스미스는 입이 엄청나게 큰 보컬로 유명한 스티븐 타일러가 만든 70년대 미국의 하드락 밴드이다. 아마겟돈의 주제곡을 부른 밴드로 더 유명한지 모르겠으나… 크라잉으로 시작한 나의 락사랑은 12살. 13살 무렵 퀸의 히트곡 모음집을 시작으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내 속의 답답함을 긁어주는 것 같은 청량함. 속 시원함. 뭔가 다 삼켜버릴 것 같은 큰 사운드들에 매료되어 하루 용돈 천 원을 모아 5천 원이 되는 금요일마다 카세트테이프를 구입했다. CD가 사고 싶은 날은 2주를 모았다. 

         

        음악과 나. 이 세상에서 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위로해주는 건 음악뿐이었다. 

내 가난과 집안의 불화. 엄마의 고단함을 피하고 싶었던 시절, 그렇게 나는 평생 음악만 듣고 살고 싶었다. 하지만 음악만 듣고 서는 밥벌이가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내가 연주자가 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나의 장래 희망은 팝 칼럼니스트가 되는 거였다. 음악 듣고 글 쓰고. 


         그다음 나의 액션은 팝 칼럼니스트가 되는 법이라는 책의 구매였다. 그 시대에 잘 나가는 팝 칼럼니스트들이 어떻게 업계에 들어오게 되었고, 어떻게 직업인으로 변모하게도 이었는지 세세하게 적혀있었다. 

그 시절 나의 결심은 전쟁에 나가는 군인보다 더 결기 있고 단단하고 목표가 또렷해 보였다. 


        당시에 지구촌 영상 음악이라는 GMV라는 잡지가 있었다. 잡지책 구입의 삶의 유일한 낙이였고, 결심이 섰으니 이제 다양한 음악을 듣고 분석하는 일의 시작이 되었다. 록음악이 그러니까 밴드가 실제로 연주하는 음악만이 고결하고 진정한 음악이라고 새뇌받아왔다. 본 조비는 상업적인 밴드이며 상업적이다 라는 건 타도의 대상이었다. 다양한 음악을 듣던 나에게 무척이나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나는 사실 귓가에 오래 남는 본 조비의 음악도 좋았고 머라이어 캐리를 보며 내가 저렇게 멋진 고음역대를 표현할 수 있는 싱어라면 이라는 공상을 즐겨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노래를 들으며 멜로디에 내 마음을 실어 너무나 큰 위로를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90년대의 팝 칼럼니스트들의 평가라는 건 유달리 가혹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다 두 번째 결심을 했다. 팝 칼럼니스트가 되지 않겠다고. 

음악을 듣고 내가 느낄 수 있는 그리고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무한대의 자유가 그들에게 침범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가사는 이런 뜻이고 이 시점의 이 코드는 이런 의미가 있고 이 곡은 철저하게 상업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그들의 권위적인 잣대가 트로트만큼 속을 메스껍게 만들었다. 


        모든 게 자연스러웠으면 좋겠고 내가 들었을 때 좋은 음악이 가장 좋은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가끔은 내가 팝 칼럼니스트가 되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지금은 음악과는 전혀 상관없는 서비스 업계에서, 감정 노동자 산업군에서 근면 성실하게 밥벌이를 하고 있는 내가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힘들면 언제든 도망갈 수 있는 구멍 하나 만들어 놓은 점은 꼭  칭찬해주고 싶다. 음악으로 돈을 벌지 않게 된 나에게 감사하다. 


먼 훗날 내가 더 자유로워진 어는 날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는 나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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