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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쟁이 Oct 22. 2023

한결같이 1시간 17분

- 마라톤편 

       평생을 숨쉬기만 하다가 수영을 조금 시작하고 자신감이 붙었는지 생뚱맞게 마라톤에 나가기로 결심했다. 마라톤은 정적인 나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기록은 어떻게 측정하는건지 중간에 화장실이 가고싶으면 어떻게 하는지 가다가 길을 잃으면, 혼자 남겨지면 또 어떻게 해야되는지… 그리고 10키로는 얼마만에 들어와야되는지 모르는것 투성이었고 사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았다.  단순히 내 직장 생활의 1회성 이벤트에 불과했다. 뛰는건 너무 숨이 차고 숨차는 일을 당최 왜 돈까지 지불하면서 해야되지는지 이해 할수없었다. 


       첫번째 마라톤 참가. 이른 아침 도시는 수천명의 파이팅 넘치는 사람들의 에너지를 뿜어냈고, 세상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뜀뛰기를 좋아하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내 키와 생활 습관이 비슷한 직장 동료 K 양은 나보다 훨씬 튼실하고, 몇번의 참가 경력이 있었지만 하필 발바닥을 다쳐 쉬엄쉬엄 가자고했다. 잘됐다 싶었다. 뛰고싶은 마음도 없었으니. 우리는 그렇게 뛰다 걷다 뛰다 걷다를 반복하다 1시간 17분을 찍고 완주했다. 끝도 없을 것 같은 길을 완주했다는 성취감은 생각보다 놀라웠고 올해 내 10대 뉴스중 하나를 채웠다는 생각에 뿌듯하기까지했다. 


       너무 오랜만에 느껴보는 흥분과 성취감이 사라지기 전에 페이스북에 글을 남겼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선수마냥 마라톤 완주 메달을 깨무는 포즈의 사진과 함께 제목은 나의 첫번째 마라톤. 5분뒤 첫번째 댓글이 달렸다. 런던에 사는 친한 언니의 영국인 남자친구 톰이었다. 

“ 키미, 10키로는 마라톤이 아니야.. 그것은 조깅이라고 부르는거야 ”

매일 같이 뜀박질을 하는 유럽피언들에게 10K 마라톤이라는건 있을 수 없는 일인것이다. 

잠시 부끄러웠지만, 내가 걷는거 뛰는거 움직이는 걸 싫어하는지 수년간 지켜본 친구로서 10K를 완주했다는게 얼마나 큰 도약이냐 되물었고 톰은 마지못해 잘했다며 수긍했다. 


        두번째 마라톤은 광안대교를 달리는거였다. 살면서 광안대교를 언제 달려볼 수 있겠냐는 직장 동료들의 권유에 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사실 광안대교 마라톤은 뛰는 사람들보다 사진 찍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도 그럴것이 뉴욕같은 고층 건물이 즐비한 마린시티를 뒤로하고 바르셀로나를 방불케하는 요트 경기장 뷰와 거대한 바다. 그리고 다이아몬드 브리지 (광안대교의 별칭). 나도 족히 백장은 남겼으리라.. 그렇게 수많은 사진을 찍고, 쉬어 쉬어 도착 지점에 왔을 때 계획이라도 한듯 1시간 17분을 찍었다. 


        그렇게 또 한해가 지나고 제주도로 이직한 나는 회사가 스폰하는 마라톤 대회에 프리오프닝 멤머라는 명목하에 인생 세번째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게되었다. 이쯤되니 회사는 정말 마라톤을 좋아하는게 아닌가 싶다. 10K 완주에는 총 6명의 참가자가 있었는데 그중에는 철인삼종 경험도 있는 시설부 부장도 있었다. 그는 호기롭게 기록은 중요하지 않다며, 호텔 오픈을 앞두고 끝까지 함께 하는게 중요하다고 모두를 격려했지만, 시작한지 10분쯤 지났을까. 3분 이상 뛰지 못하는 나를 버리고 모두 다 앞질러 가 버렸다. 


      처음으로 동반자도 없이 혼자 뛰기 시작했고 제주의 햇볕은 육지의 그것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뜨겁고 강렬해서 무언가 생각할 힘도 없었다. 하지만 많은 이가 꿈꾸는 제주의 푸른 바다를 옆에 두고 혼자 고독하게 뛰다 걷다를 반복하면서 뜻밖에도 지난 경험들이 큰 위로가 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가다보면 반듯이 끝이 있다는 믿음이 아닌 팩트. 도심속에서 수많은 인파와 함께 달리고, 바다위에 놓인 다리를 달리고 그리고 내 눈앞에 펼쳐진 제주의 풍광. 이미 반바퀴를 돌아 맞은 편에서 달려오는 사람들의 파이팅 넘치는 소리. 이미 완주를 마친 동료들은 내가 보이지 않자 중간에 포기한줄 알았다고한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달려 결승점을 찍고 인증샷도 남겼다. 1시간 17분이라는 한결같은 기록을 남기며….


       달리기 애호가들이 느끼는 도취감을 러너스 하이 (Runner’s high)라고 부른다고한다. 신체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하는 행복감. 미친듯이 뛰다보면 하늘을 나는 느낌과 같은 희열을 느낀다는 것이다. 내가 러너스 하이를 느껴볼 수 있는 경험은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없을것 같다. 그리고 뜀박질은 여전히 내 취향이 아니다. 


    하지만, 일년에 한번 내 의지와 상관업이 출전하게 되는 이 마라톤 대회에서 한결같은 기록으로 가늠할 수 있는 나의 건강 상태와 파이팅 넘치는 수천명의 에너지를 한번에 느껴볼수 있는 이 경험은 어느 덧 내 연례 행사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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